보편복지=사회주의? “한국경제 역동적 발전에 영향”
보편복지=사회주의? “한국경제 역동적 발전에 영향”
  • 김재희·최규화 기자
  • 승인 2018.02.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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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국가가 키워라③] 보편복지 체제의 경제·사회적 효과

【베이비뉴스 김재희·최규화 기자】

‘상위 10% 제외.’ 아동수당 추진에서 보편복지-선별복지 논쟁이 재연됐다. 보편복지의 확대는 저출산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복지의 성격과 역할을 살펴본다. - 기자 말

<기사 싣는 순서>
① ‘나는 왜 못 받아!’ 유리지갑 피해가는 보육지원
② “금수저-흙수저 해체하려면 복지 통한 재분배 필수”
③ 보편복지=사회주의? “한국경제 역동적 발전에 영향”
④ ‘왕자도 아동수당 받는다’ 스웨덴식 보편복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박 장관은 지난 1월 초 ‘아동수당 100% 보편지급 재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보수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나 철회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박 장관은 지난 1월 초 ‘아동수당 100% 보편지급 재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보수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나 철회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왜 이건희 손자한테도 공짜밥을 먹여야 하나요?’ 2011년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많이 통용되던 말이다. 누구에게나 고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복지와 지원이 필요한 곳에 복지자원을 집중하는 선별복지. 지난해 말 아동수당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간의 논쟁이 재연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100% 보편지급’ 공약은 지난해 12월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여야 합의로 무산됐다. 지급대상에서 소득상위 10%를 배제하기로 한 것. 올해 1월 정부는 아동수당법 입법을 앞두고 100% 보편지급 재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보수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나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동수당 보편지급에 대한 논쟁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김광림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퍼주기, 소득주도성장의 이름을 내걸고 쓰기 시작하는 돈을 철저히 막아서 나라가 사회주의 초입에 서지 않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 복지제도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포석일까. 하지만 보편적 복지제도가 ‘시장경제’ 체제의 한국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 “보편주의 복지체계, 경제적 유연안정성 확보와 기회 평등에 유리”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보편복지는 한국경제의 유연안정화 구조 확립에 도움을 준다는 분석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3년 ‘한국 사회복지의 현 단계와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과제’를 주제로 한 제13회 국가리더십포럼 강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개방도를 갖고 있는 한국은 최첨단 산업이 경쟁하는 세계경제의 변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적응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며, “이 때문에 유연안정화 구조의 확립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국경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에게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보호장치를 제공하는 보편주의 복지체계는 일부의 계층에게만 사회적 보호장치를 제공하는 선별주의 체제보다 유연안정성 확보에 유리함은 물론”이라며, “동시에 시장탈락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에도 매우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메디치, 2012)에서 보편복지가 한국경제의 역동적 발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편적 복지의 실질적 부실로 인해 필요한 복지의 대부분을 시장에서 취득하는 ‘시장복지’ 의존성이 높다”며, “우리나라 복지의 ‘탈상품화 수준’이 극도로 낮은 것이 신자유주의 성장 체제에서 강화되는 ‘경제와 소득의 양극화’ 추세와 맞물려 민생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보편복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해주고, 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해주며, 경제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역동적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연명 교수는 사회투자전략(Social Investment Strategy) 차원에서도 보편복지 체제에 장점이 있다고 봤다. 앞서 언급한 국가리더십포럼 강연에서 김 교수는 사회투자전략에 대해 “사회정책이 지식기반경제하에서 인적자본의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키고 시장에 대한 노동공급량을 높여줌으로써 사회정책이 좋은 경제적 성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복지의 대상자를 포괄적으로 설정하는 보편주의적 복지체제는 제한적인 복지할당원리보다 경제에 순기능을 미치는 데 있어서 유리하다”며, “특히 복지비 지출의 최종 수요처가 국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 상품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 상품이나 자영업의 수요 촉진 그리고 중소기업의 고용활성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 “소득재분배 안 되면 사회 전체 구매력 낮아져 경제 순환 끊긴다”

보편복지가 갖는 또 하나의 경제적 장점은 소득재분배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우선 소득재분배는 왜 필요할까. 이상이 교수는 또 다른 저서 ‘이상이의 복지국가강의’(밈, 2016)에서 “(개인의 자산과 소득은) 국가의 공적 시설들과 각종 지원, 그리고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도움이 작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산과 소득의 일부를 다시 공동체로 환원시키는 것은 정의에 합치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소득재분배의 문제는 정의의 차원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으로 연결되는데, 이 교수는 그 이유를 “특정 사회에서 부가 집중되면 결국 그 사회 전체의 구매력이 낮아져서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지고, 경제의 순환이 끊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보편복지의 소득재분배 효과에 대해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재분배의 역설(paradox of redistribution)’이다. 1998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발테르 코르피 교수와 스웨덴 웁살라대학 요아킴 팔메 교수가 내놓은 이론이다. 이들은 저소득층에 더 집중해서 복지제도를 실시할수록 재분배 규모가 작아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5세 이하 대한민국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퍼주기’ 논란 끝에 여야는 소득상위 10%를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재분배의 역설 그래프. 가로축은 저소득층 집중화 지수를, 세로축은 재분배 규모를 나타낸다. 집중화 지수는 음수일수록 저소득층에 더 집중해서 복지제도를 실시한다는 의미다. 그래프를 통해 저소득층에 집중할수록 재분배 규모가 작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Korpi and Palme, 1998) ©베이비뉴스

코르피 교수는 2011년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선별적 복지는 고소득층과 중산층을 복지 혜택에서 배제하기 때문에 이들이 복지정책과 관련해 빈곤층을 제외한 계층연합을 형성하게 된다”며, “이것은 세금과 복지국가 거부로 나타난다”고 선별적 복지로 인해 생기는 중산층의 복지 거부감을 설명했다.

또한 “반면 보편적 복지를 하면 대부분 계층이 혜택을 입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모두 복지정책을 지지하게 된다”며, “이런 계층연합은 정치적 차원에서 복지예산 규모 자체를 키우게 된다”고 밝혔다.

팔메 교수 역시 2011년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혜택을 확대하면 세금징수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국가 재정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재분배의 역설을 설명했다.

재분배의 역설은 ‘열등처우의 원칙’과 만나 더 강해진다. 열등처우의 원칙은 “국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의 처우는 스스로 벌어서 생활하는 최하위 노동자의 생활보다 더 높지 않아야 한다”(서강훈 ‘사회복지용어사전’)는 복지 원칙. 그렇지 않으면 차상위 계층이 차라리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를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별복지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를 집중한다고 해도 그들을 차상위 계층보다 더 부유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선별복지에 집중할수록 전체적으로 재분배 규모가 작아지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5세 이하 대한민국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퍼주기’ 논란 끝에 여야는 소득상위 10%를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5세 이하 대한민국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퍼주기’ 논란 끝에 여야는 소득상위 10%를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 “보편복지, 동등한 배려와 존중의 법칙 지키며 사회적 규범 증진”

그렇다면 사회적 측면에서 보편복지는 어떤 장점을 가질까. 우선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별복지의 수요자가 가지는 ‘열패감’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바티스트 밀롱도는 저서 ‘조건 없이 기본소득’(바다출판사, 2014)에서 이러한 열패감을 ‘심리적 비용’이라 불렀다.

최근 논쟁의 대상이 된 아동수당 역시 보편적 수당 정책으로서 기본소득과 유사한 점이 있다. 밀롱도는 소득 수준을 조건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예산을 줄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수령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비용은 높아질 것”이라며, “어떤 이들은 소득을 받기 위해 통제나 심사를 당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비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누려야 할 정당한 소득을 포기할 것”이라고 봤다.

선별복지에 따른 열패감은 사회적 규범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2016년 발표된 논문 ‘복지수혜가 복지태도에 미치는 영향’(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송혁)은 선별적 제도와 보편적 제도의 경험 차이에 따라 복지 수혜자들이 정부지출 확대와 증세 등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논문은 “선별적 제도는 수혜자를 선별적으로 선택해내는 과정에서 제도 바깥의 사회구성원과 제도 수혜자를 구분하게 된다”며, “둘 사이의 구분은 수혜자들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낮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낮은 자아존중감은 수혜자가 자율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며, 이런 자율성의 부족은 공동체의식 등의 사회적 규범을 저해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스웨덴의 정치학자 로스슈타인의 이론을 인용해 “선별적인 제도는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연대와 같은 사회적 규범을 저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보편적 제도의 경우 동등한 배려와 존중의 법칙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규범을 증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부연했다.

한편 선별복지 단점은 행정비용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이 문제는 최근의 아동수당 100% 보편지급 재추진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 바 있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잠정적으로 집계한 ‘아동수당 선별지급 행정비용’에 따르면, 소득상위 10%를 제외한 지급 대상자를 가리는 데만 한 해에 최대 1150억 원이 든다. 여야가 합의한 2018년 아동수당 예산은 모두 7096억 원. 선별지급에 따른 행정비용이 예산의 7 분의 1에 가까운 셈이다. 당연히 복지 담당 공무원의 업무량도 증가해, 보건사회연구원은 약 500명의 공무원이 더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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