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초보엄마 당황하게 만든 '이유식 거부 사건'
[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초보엄마 당황하게 만든 '이유식 거부 사건'
  • 칼럼니스트 여상미
  • 승인 2018.03.15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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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초기이유식 #중기이유식 #이유식거부 #자기주도이유식 #음식놀이

수유하던 시절에는 외출이라도 한번 하려면 아기 짐만 한 보따리였다. 오죽하면 브랜드마다 ‘기저귀 가방’이라는 닉네임을 붙이며 수납이 넉넉한 가방들을 판매했을까 싶을 정도로 기저귀뿐만 아니라 물티슈, 손수건 등(분유 먹는 아기는 젖병에 분유까지)을 챙겨 다니며 진땀을 빼느라 얼른 내 아이도 밥 먹는 날이 왔으면 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초기 이유식을 시작하던 날. 좀 더 다양한 음식을 맛봤으면 하는 마음에 재료는 넘치고 또 그것들을 다듬고 삶느라 부엌은 엉망이 됐지만 정작 아기에게 먹을 이유식은 눈곱만큼 짜낸 정도였다. 아기는 분유만 먹다가 새로운 음식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신기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조그만 입으로 맛을 음미하는 듯했다. 아기가 잘 먹어주니 고맙고 보람 있었지만 아무리 소분을 해서 냉동 보관을 한다고 해도 식재료가 너무 많이 남았고 결과에 비해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중기 이유식부터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사서 먹이겠다 만들 때마다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게 이유식 밥솥이며 계량컵 같은 재료들을 하나둘씩 구매하곤 했다.

이유식 거부! 배불리 먹기 바라는 엄마 욕심 대신 아기는 낯선 것들에 익숙해 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상미
이유식 거부! 배불리 먹기 바라는 엄마 욕심 대신 아기는 낯선 것들에 익숙해 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상미

그 즈음 만났던 아기 엄마들의 고민도 매한가지였다. 아기가 아무리 잘 먹어도 반 이상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면서 차라리 시중에 파는 이유식으로 좀 더 다양하게 먹이면 어떨까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또다시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고 엄마표 맘마를 만들고 있다고.

그러나 곧 다가올 ‘이유식 전쟁’에 비하면 초기 이유식을 만들며 고민한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중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아기는 갑자기 이유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배운 대로 입자 크기도 서서히 늘렸고 딱히 과감히 시도한 음식도 없었는데 왜 그럴까 싶어 당황하기 시작한 초보 엄마는 아기 의자도 사서 앉혀 보고 매끼 시간을 맞춰 먹여보기도 하고 일부러 아기 친구들과 만나 함께 맘마 먹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내가 만든 이유식이 뭔가 잘못된 걸까 싶어 시중에 판매하는 이유식을 먹여 보니 잠깐 잘 먹어주나 싶다가 돌아서면 또 거부하기를 반복! 그쯤 되니 우리 아기가 다른 아기에 비해 영양이 부족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애가 타기 시작했다. 괜스레 신경도 예민해지고 일상의 모든 초점이 아이 먹이기에만 집중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일단 상황을 멈추고 갑자기 새롭고 낯선 음식들을 접하게 된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그러다 보니 아기는 지금 먹어서 배를 불리는 행위 자체보다 낯선 음식들과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시도한 방법은 어느 책에서 본 ‘자기 주도 이유식’이라는 방식과 유사한데 이제 이가 막 나기 시작한 중기 이유식 시기에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 최대한 무르고 삼키기 쉬운 것들(예를 들면 바나나, 고구마, 삶은 양배추 등)로 식사 시간을 ‘놀이 시간’으로 바꿔 보았다.

그리고 그전에 내 마음부터 굳게 먹었다. 혹 아이가 가지고만 놀고 오늘은 먹지 않더라도 음식과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 아이를 배불리 먹이고 싶은 내 욕심을 조금만 내려 놓고 음식의 색깔과 모양 촉감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야기해주자. 그렇게 우리 아기는 중기 이유식 시절 하루 한 끼 먹을까 말까 하며 재료를 가지고 놀기만 하는 식사 시간을 가졌다. 어떤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우리 아기는 아무것도 안 먹기 때문에 편식도 안 해요'라고 하던데 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날들이었고 내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의 변화는 아주 서서히,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릿느릿 찾아온다. 매번 느끼지만 모든 육아의 마지막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는 것이라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결국 무언가를 해내었지 싶다. 지나고 보면 그 순간들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싶으면서도 막상 그 시기를 겪어내는 동안 엄마의 시간은 참 더디게도 흐르더라.

후기 이유식. 드디어 엄마 아빠와 비슷한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기는 이런저런 음식에 호기심을 가지며 뚝딱 뚝딱 밥그릇을 잘 비워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가 나고 유아 식판식을 하게 된 지금도 매일이 그렇진 않다. 어느 한 끼를 잘 먹나 싶으면 다음 끼는 또 죄다 남기기 일쑤이고 내일은 다시 잘 먹을까 전전긍긍하는 날의 반복이다. 이건 정말 엄마가 돼 보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중 하나이지만 아이가 밥 안 먹는 것만큼 엄마를 힘들게 하는 일도 없다.

오늘도 아이가 남긴 밥을 한숨으로 넘기며 유난히 길었던 중기 이유식 시기를 떠올린다. ‘무언가 낯설었을 거야, 어딘가 불편했겠지.’ 그렇게 변덕스러운 네 마음을 다시 또 천천히 헤아려 보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다리면 봄이 오니까.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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