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쓸까, 말까?... 시간 vs 돈, 둘 사이의 선택
육아휴직 쓸까, 말까?... 시간 vs 돈, 둘 사이의 선택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8.03.2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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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아빠에게

첫째 은이가 다섯 살이던 어느 날, 고요하던 거실에서 ”우당당 쨍그랑“ 하는 소리가 굵게 울렸다. 안방에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뛰쳐나왔고, 홀로 의자에 앉아 놀던 은이는 바닥에 덩그러니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칼 사이엔 유릿가루가 가득했고 죽 하고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응급실에 갔고 천만다행으로 피부만 찢어져 봉합술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아이를 키우면 이런 사고 외에도 독감에 걸려 끙끙 앓거나, 수족구병에 걸려 어린이집 등원 중지라는 날벼락이 수시로 발생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상처에 가슴을 쓸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출근하는 우리 부부에겐 일요일 저녁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이 가장 난감했다. 

‘괜찮겠지? 괜찮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보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39℃를 찍는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고 간호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 누군가는 출근을 목전에 둔 아내와 나, 둘뿐이었다. 이럴 때면 아이도 지키지 못하면서, ‘나는 무엇을 하려고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한여름 한겨울을 가리지 않고 뜨거워지는 빈이. ⓒ윤기혁
한여름 한겨울을 가리지 않고 뜨거워지는 빈이. ⓒ윤기혁

 은이와 함께 이태준 님의 <엄마 마중>이란 책을 읽었다.

 

한 아이가 전차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우리 엄마 안 오?” 하고 차장에게 물어보지만,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그렇게 전차가 오고 가고, 또다시 오고 가는 사이, 해는 지고 그리움은 눈이 되어 소복소복 쌓이는데······.

 

담담한 글과 따뜻한 그림을 통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전해 받은 나는, 아내가 일이 생겨 아이의 아침 등원을 챙겼던 날을 떠올렸다. 외출복을 입고서 잠들었던 녀석이 눈을 뜨기도 전에 우린 이미 어린이집 앞에 섰다. 문을 여는 선생님께 도망치듯 맡기고 돌아선 나는 등 뒤로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돌아보지 말자! 그래야 아이도 잊고 빨리 적응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스웨덴 국립교육청에서 일했던 황선준 박사는 아내 황레나 씨와 함께 쓴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예담프렌드, 2013)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 부모들의 희생은 다르다. 그들은 자녀에게 부모의 시간을 기꺼이 선물한다. 물질적인 지원은 그다음 일이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간이 더는 부모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중략)그리고 이를 희생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 물질은 아이들에게 줘버리면 그만이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부모 자신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 함께 하는 순간을 희생이 아니라 즐거움이라 느낀다는 것, 그것이 단지 선언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담고 싶었다. 

그 후 몇몇 사람들은 육아휴직을 한 내게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며 용기 있다고 했다. 사실 휴직했다고 행복이란 녀석이 떡하고 내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금세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 잔액을 보며, ‘이대로 복직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수시로 했다. 또 시간이 많으면 아이들과 여유롭게 일상을 즐길 것 같지만, 삶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생활의 교집합이 커질수록 아이들을 향한 나의 잔소리는 늘었고, 나를 향한 아이들의 눈물도 잦아졌다. 

그럼에도 혹 누군가 ‘다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같은 결정을 하겠다’고 답할 것이다. 이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함께 행복하기 위해 같이 궁리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대여, 이제 선택할 시간이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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