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는 평등...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준비되셨나요?”
“어른과 아이는 평등...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준비되셨나요?”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03.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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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도 참여권이 있어요②] 참여권 보장 위해 노력하는 어린이집 탐방

【베이비뉴스 최규화·권현경 기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4대 기본권은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이다. 하지만 국내의 영유아 인권 논의는 생존권·보호권에만 치중돼 있고, 특히 참여권에 대한 논의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영유아 참여권의 의미와 중요성을 짚어보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개선 방향을 알아본다. -기자 말

[기사 싣는 순서]
① 투표 못하는 아기도 ‘참여권’이 있습니다
② “어른과 아이는 평등...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준비되셨나요?”
③ “영유아 참여권 보장? 교사 대 아동 비율부터 낮춰야”

14일 오전, 경기 용인시 고기동에 위치한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의 올해 첫 숲 활동에 동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14일 오전, 경기 용인시 고기동에 위치한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의 올해 첫 숲 활동에 동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4일 오전, 경기 용인시 고기동에 위치한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의 올해 첫 숲 활동에 동행했다. 나뭇잎을 줍는 아이, 나뭇가지를 가지고 노는 아이, 잔디가 깔린 비탈에서 미끄럼을 타는 아이… 아이들은 숲에 들어갈 때도 손을 잡고 줄을 서지 않았다. 교사들은 안전을 위해 활동 범위를 정해줄 뿐. 아이들은 놀잇감을 발견하고 놀이를 만들고 규칙도 정하며 ‘스스로 선택’해서 놀았다.

한 아이는 긴 나뭇가지를 주워 휘두르며 놀고 있었다. 위험해 보였다. 그때 교사가 다가가 “나뭇가지가 너무 길어서 다른 친구가 다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잘라도 돼?” 하고 아이의 의견을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교사는 나뭇가지를 반으로 잘라줬다. 뛰어놀다보니 더워졌는지 한 아이는 옷을 벗어 허리에 묶어달라 하고, 또 다른 아이는 묶지 않고 손에 들고 있을 거라고 했다.

산내들생태어린이집은 영유아들의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관 중 하나다. 교육학 박사인 주혜영 원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한국열린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국내외 영유아 인권사례와 영유아의 놀 권리’를 주제로 사례발표를 한 바 있다.

4~5세는 일주일에 2회, 6~7세는 3회 숲 활동을 한다. 6~7세의 경우 숲에서 놀다보면 더 놀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아서, 화요일에는 김밥이나 주먹밥을 챙겨 가 더 오래 놀다 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많이 뛰어 놀게 해주려고 한다”는 게 주 원장의 설명이다.

주혜영 산내들생태어린이집 원장.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주혜영 산내들생태어린이집 원장.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영유아 참여권은 의사결정권… ‘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

주 원장은 영유아의 참여권을 의사결정권이라고 봤다. “아이의 참여는 스스로 무엇인가 결정해 활동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된다. 하지 않겠다는 것 또한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주 원장은 교사들에게 늘 “하기 싫다는 애는 억지로 하게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

주 원장이 숲 활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숲 활동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하는 것도, 숲 활동 시간은 곧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활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놀거리가 많고, 같은 공간이라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숲은 아이들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스스로 놀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한편 주 원장은 딱 짜인 교육 프로그램을 원하는 부모들의 요구에 초창기에는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들을 설득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부모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일단 많이 놀리자는 것과 아이들도 느긋하게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짜준 스케줄을 따라 하는 아이들은 다음 선택을 하지 못한다. “엄마, 나 이제 뭐 해야 돼요?”라고 묻는 아이들이다. 어떻게 놀지, 뭐 하고 놀지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 선택할 수 있도록 빈둥거리는 시간, 느긋하게 쉬는 시간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이상 부모를 초대해 발표회를 연다. 발표회 준비를 위해 1~2개월 전부터 아이들에게 연습을 시킨다. 주 원장은 아이들에게 연습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발표회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좀 아쉽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 최근에는 부모 초대 없이 아이들끼리 평소 배운 것들을 서로 보여주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주 원장은 “궁금해 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작은 음악회) 동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했는데, 그냥 서 있는 애들도 있다. 좋아하는 아이는 참여하고, 하기 싫은 아이는 하지 않고 저랑 같이 있다”며, “아이들에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항상 한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어릴 때 (의견이 존중받는)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주도적이고, 자기의 인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력할 수 있다”며, “내 인권이 중요한 만큼 상대의 인권도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권도 존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쟁은 협력을 배울 기회라는 생각에 한 달에 한 번씩 공동작품 만들기 미술활동을 한다. 공동작품 활동을 하면 아이들은 서로 ‘내가 할 거야’를 외치며 갈등을 빚는다. 결과보다는 아이들이 같이 참여하고 협력하며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니까 분쟁을 겪을 기회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 원장은 참여권 보장과 관련해 “인권 감수성을 가진 교사·운영자·부모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인권은 힘의 평등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원장이 교사를 억누르면서 아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냐. 교사의 인권이 보장되는 분위기에서 선순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참여권 보장을 위한 외부적 조건으로 “교사 대 아동 비율이 낮아져야 한다”고 짚었다. 교사가 아이들의 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면 인권이 들어설 자리도 없다는 말이다. 주 원장은 “현재 법적으로 교사 한 명이 20명까지 돌볼 수 있는데(만 4세 이상)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7 정도로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사들의 처우 문제와 운영의 자율성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16일 오후,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공동육아 또바기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16일 오후,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공동육아 또바기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일반가정주택의 어린이집 앞마당에서 아이들은 흙놀이에 한창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부모-교사-아동,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존중’의 관계”

“랄라뿅 왔어? 나 오늘 보물 찾았어, 이것 좀 봐.”

봄비가 내리던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공동육아 또바기어린이집 입구. 조영실 전 교육이사가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 뛰어놀던 한 아이가 한 말이다.

아이의 조그만 손에 들려 있는 건 작은 단추 하나. ‘랄라뿅’이라 불리는 조 전 이사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는 기자들을 향해 “쟤, 누구야? 왜 왔어?”라고 묻는다. 해맑고 거침없는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어린이집 마당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은 모래놀이, 우산 돌리기 놀이에 한창이다.

이곳에 두 아이를 보낸 조 전 이사는 공동육아 5년차로, 2년 동안 교육이사를 맡았다. 박정은(짱구) 씨는 공동육아 2년차. 일반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를 지난해 이곳으로 보내고 있다.

또바기어린이집은 아이·교사·부모 세 주체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다. 이곳에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랄라뿅’, ‘짱구’, ‘다람쥐’, ‘토란’ 등 별명을 부르고 평어를 쓴다. 모두가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 구조. 아이들이 어른이란 존재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조 전 이사는 “교사를 채용하긴 하지만 교사 역시 협동조합의 일원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며 “환경과 관계라는 것을 떼어 놓고는 아이들의 권리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데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뿐 아니라, 어른과 어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부모 대 교사, 부모 대 부모 등의 관계를 아이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부모도 교사를 존중하고, 교사도 아이들을 존중하고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린 관계다.

조 전 이사는 “일상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 아이가 말을 했을 때 어른이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공동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연 속에서 놀면서 배우고, 어른과 아이는 평등하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이에게 ‘놀 권리’를 주는 것. ‘충분히 몰입하고 놀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조 전 이사는 “‘엄마, 예전 어린이집은 우리를 동물원처럼 가둬놨어’라는 아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여기로 옮기고 한 달 만에 아이가 활발해졌다. 까불이가 돼서 행동한다”고 전했다. 또바기어린이집은 방과 방을 넘나들 수 있다. 정해진 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실이든 방이든 놀고 싶은 곳에 가서 놀 수 있다.

(왼쪽) 조영실 전 이사는 공동육아 5년차로, 2년 동안 교육이사를 맡았다. 박정은 씨는 공동육아 2년차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왼쪽) 조영실 전 이사는 공동육아 5년차로, 2년 동안 교육이사를 맡았다. 박정은 씨는 공동육아 2년차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두 어린이집 모두 “교사 대 아동 비율 낮춰야” 한목소리

박 씨는 최근 ‘아마’(부모가 돌아가면서 교사 역할을 하는 것)를 했을 때 겪은 일을 들려줬다.

“교사가 아이들을 둥글게 앉혀 놓고 일주일 일정을 함께 짜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저게 가능할까’ 했다. 5세는 잘 안 듣고, 6세는 반반, 7세는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얘기했다. 어른들이 하는 토론 문화를 접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에 들었다.”

이어 그는 “여기선 거의 자유놀이를 한다. 안전교육이나 (정해진) 활동이 있긴 하지만 하기 싫은 아이들을 따로 교사가 봐주고,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또바기어린이집 아이들이) 똑같은 놀이터에 매일 가서 노는 게 재미있을까?’ 했는데 놀이터에서도 놀고 운동기구에서도 놀고 낙엽과 같은 걸 보물이라고 발견해서 매일 주워온다.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이 그걸 보고 이상해한다”고 말했다.

조 전 이사는 “아이들 보물상자가 있는데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총알, 병뚜껑, 단추, 큐빅 등 자기한테 보물인데 엄마는 쓰레기라고 한다고 속상해 한다. 이런 것들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씨는 이곳의 발표회를 보고도 이전 어린이집과의 극명한 차이를 경험했다. 박 씨는 “이곳은 놀랄 정도로 룰이 없었다. 순서는 있지만 아이가 갑자기 무대로 뛰어올라간다든지, 외부에서 보면 개판이다(웃음). 이전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을 줄 세워 통제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이곳은 애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인 것 같아 남편은 여기가 맘이 편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바기어린이집의 교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들 사이에 생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박 씨는 “만약 아이들이 싸우면 일반 어린이집은 빨리 사과하게 해서 해결하려 하지만 여기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편이다. 각자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준다”고 말했다.

부모와 교사는 ‘날적이’에 아이와 주고받은 대화, 즉 ‘마주이야기’를 기록해 공유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심코 하는 말도 귀하게 듣고 기록하는 어른들을 보며 ‘어른들은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가진다.

조 전 이사는 “아이들이 말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아이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어른들이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아이들이 먼저 눈치를 챈다. 들을 준비 없이 ‘너 말해봐’ 한다고 아이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영유아 참여권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시간과 권리를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한편 이를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교사 대 아동 비율과 교사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왔다. 조 전 이사는 “저희는 (한 연령에) 10명 이상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아이들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은 교사 대 아동 비율이 낮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교사들을 국공립 어린이집 수준으로 대우하고 있다. 3년 근무하면 안식월을 주기도 한다. 조 전 이사는 “교사들이 푹 쉬고 왔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것을 실현시키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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