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부모 총회 날 "아빠는 없네 ㅜ.ㅜ"
초등학교 학부모 총회 날 "아빠는 없네 ㅜ.ㅜ"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3.2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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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남편, 학부모 총회에 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1학년이라서 휴가를 내고 갔고, 2학년 때는 2학년이라서 휴가를 내고 갔다. 3학년, 4학년 때도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올해는 작은 아이가 입학했지만, 휴가를 내지 않았다. 처음으로 불참했다. 학부모 총회 이야기다.

보통 초등학교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 총회와 상담, 공개수업이 부모의(라고 쓰고 엄마라고 읽는다) 필수 참여 코스가 된다. 학부모 편의를 고려해서 총회와 공개수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 아이들 학교는 다 따로 한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라면 적어도 3, 4, 5월 동안 3번의 휴가를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한두 번을 빼고는 내가 다 갔다. 큰아이 3학년 때 학교 상담은 남편이 갔다. 일부러 보냈다. 나는 그걸 큰 맘 먹고 보냈다고 소셜에 올렸는데, 여기저기서 아빠들이 "나도 갔다"는 댓글을 달았다. 여러 번 간 아빠도 있었다. "뭐야? 우리가 특별한 게 아니잖아?" 그랬다. 왜 난 그제서야 남편에게 가라고 했을까 후회도 했다.

올해 총회는 남편이 갔다. 육아휴직 중이니까 당연한 건 아니었다. 남편도 이런 것까지 가라고 할 줄은 몰랐을 거다. 학부모 총회 참석 여부를 묻는 안내장을 내밀면서 "이건 어떻게 해?" 하고 묻는 걸 보면.

"이번 총회 난 못 가니까 그냥 당신이 가."

"내가 가도 되나?"

"왜, 뭐 어때서. 큰애한테는 못 간다고 했으니까 둘째 윤이 반에만 가면 될 것 같아."

"총회 끝나고 엄마들과 커피 한 잔 안 해?"

"응. 안 해. 안 해도 돼."

남편은 학부모 총회를 '엄마들'이 가는 행사라고 선긋기를 한 상태였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따져보니 사실 나도 이거 때문에 매년 휴가를 내고 총회에 갔다. 나만 빠지기 싫어서(많이들 빠진다).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어서(참여한다고 모두 폭풍 대화를 하는 건 아니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소외될까 봐(그런 일은 없었다, 나만의 생각인가? ㅠ.ㅠ). 그랬는데 한두 번 해보니, 별 거 없더라.

총회 끝나고 커피 한 잔 먹는다고 없던 관계가 생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대화보다 피로감이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대신 아이가 평소 자주 말하는 친구 엄마의 전화번호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다. 가끔 만나서 놀게 해주면서 그 친구 엄마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게 나는 더 좋았다). 예비 초등 엄마들이 꼭 "1학년때 사귄 엄마들이 계속 간다면서요?" 하고 묻는데, 그건 복불복이라 꼭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마 고학년이 될수록 총회 참석률이 떨어지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더 힘들다고 들었다. 어쨌든 총회를 통해, 학교에서 학부모들이 해줬으면 하는 역할들을 분담해야 하는데, 참석자가 적으면 선생님들이 사정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일정 역할을 하고, 운영에 의견을 내는 등의 일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학부모나 선생님이나 모두 부담스럽게 느끼는 일은 학교에서 시스템적으로 바꿔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가장 말이 많이 나오는, 등교 시 아이들 교통지도를 하는 녹색어머니회가 그런 경우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다 참여한다. 강제 사항이다. 해보니 일 년에 한 번 정도 돌아온다(정 사정이 있는 가정은 따로 또 조치를 취하는 걸로 안다). 녹색어머니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학교 앞이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고 해도 신호 안 지키고 규정 속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내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되니 1년에 한 번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 걸 깨닫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한 번씩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1년에 한 번이면 크게 부담도 없으니까.

남편이 학부모 총회에 가서 찍은 사진. 누가 딸바보 아니랄까 봐 전체 컷 대신 이거 하나 달랑 찍어 보냈다. 윤이의 꿈은 발레리나. ⓒ최은경
남편이 학부모 총회에 가서 찍은 사진. 누가 딸바보 아니랄까 봐 전체 컷 대신 이거 하나 달랑 찍어 보냈다. 윤이의 꿈은 발레리나. ⓒ최은경

어쨋든 그렇게 학부모 총회에 간 남편. 오후 1시 40분경 날아온 메시지가 "까톡까톡" 하고 운다.

"아직 총회 시작 전... 교실에 왔는데... 많이 없네. 아빠는 없네요. ㅜ.ㅜ. 나 때문에 사람들이 어색해하는 거 아닌가?"

속으로 "아니요, 아버님!"을 외친다. 내가 가봐서 아는데 아빠가 있어서 어색한 게 아니다. 총회가 원래 그렇다. 아는 엄마라도 있으면 좀 반갑긴 하겠지만, 다 처음이라(특히 1학년은)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렇다. 선생님이라고 안 그렇겠나. 남편도 처음이라 그렇게 느껴진 것뿐이다. 속에 없는 말이었지만 '정 불편하면 적당히 눈치껏 빠지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로 어쩌고 있는 건지... 좀 궁금했지만 맡긴 만큼 믿어보기로 했다. 2시간여를 훌쩍 넘긴 시간, 다시 "까톡까톡" 울며 날아온 메시지.

"웅. 끝났어. 다행히 아무것도 안 맡았어. ^^"

"담인 선생님한테 '어떻게 아버님이 오셨어요?' 그런 소리도 못 들었어?"

"나 투명인간 같았어. 별로 개의치 않으셨어. 엄마들이나 선생님 모두 다."

아빠 총회 참석이 우리한테만 특별한 일이었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렇게 이날의 빅이벤트가 끝나고, 남편에게 '학교 방과후 돌봄 교실'에서 받은 문자를 하나 전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학교에서 보내는 각종 알림 문자는 엄마들에게만 오는 걸까. 부모에게 다 보내면 어떨까. 회사에서 일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너 몇 날 며칠에 현장체험학습 간다며?" 하고 알아주면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학교에서조차 부모 모두 알고 있어야 할 일들을 너무 엄마들에게만 치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남편 휴대폰에는 알림장 앱이 있다. 저학년 때는 남편이 챙기다가 4학년때부터는 아이가 알아서 체크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아빠 혹은 나에게 말한다. 알림장을 챙기는 건 주로 남편의 역할이다. 이번 둘째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커뮤니티 밴드를 개설해서 알림장 내용과 애들 사진을 공유한다. 물론 아빠들도 가입할 수 있다. 남편도 입학식날 바로 가입했다.

학교든 보육 기관이든 엄마아빠 모두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최근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아빠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다. '저녁이 있는 삶'이 엄마들에게 '남편 저녁 밥을 차려야 하는 삶'이 되지 않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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