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 휴직했는데, '칼퇴' 하려는 이유
남편 육아 휴직했는데, '칼퇴' 하려는 이유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4.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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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엄마 아빠 역할 바꾸기

지난 2월 초인가? 후배랑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선배, 둘째 초등학교에 가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설마 육아 휴직 쓰는 거예요? ㅠ.ㅠ"

"그러게... 그러면 니들 어쩌냐."

"설마요, 설마요..."

"(웃으며) 걱정 마. 그래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지." 

"뭔데요?"

"아직은 비밀."

달랑 3명이 팀원인 부서에서 나까지 육아 휴직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나. 사실이면 정말 걱정되는 일이었을 거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겠지. 대체인력이라는 게 없는 부서니까.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 때문이다. 나 대신 육아 휴직이란 걸 썼다. 

2월 중순, 부서 회식을 하던 중에 비밀을 공개했다. 

"남편이 3월부터 육아 휴직을 쓰기로 했어."

"정말요? 대단하시네요. 그게 가능한 회사라니."

"그러게 나도 가능할 줄 몰랐는데 그게 되네."

"그래도 선배 좋겠어요. 편하겠다. 늦게 들어가도 되고..."

이제 20여 개월 된 아이를 부모의 도움 없이 맞벌이로 키우는 후배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올 법한 말이다. 후배의 지금 상황은 '저녁이 없는 삶'이니까.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심정, 나도 안 겪어본 게 아니니까. 그런데, 말이다. 과연 내가 맘 놓고 집에 늦게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둘째를 낳고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 휴직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매일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남편이 와야 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으니까. 만날 찬밥을 데워서 이거 저거 넣고 마시듯 비벼 먹는 밥이 아니라, 반찬 몇 가지라도 예쁜 접시에 담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좀 더 인간답고,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

허리가 뻐근하게 애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남편이 둘째를 보는 동안 온전히, 오로지 큰애와만 눈맞춤 할 수 있으니까. 그밖에 셀수없이 많은 이유로, 불안하게 요동치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저녁 6시쯤, 예고되지 않은 회식이 잡혔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을 때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서러웠다. 

막내가 만든 시계. 남편의 육아휴직과 나의 칼퇴근으로 '저녁 있는 삶'이 되었다. 아이들 행복지수가 더 높아졌다. 우리 부부 행복지수도 조금 높아졌다고 믿는다. ⓒ최은경
막내가 만든 시계. 남편의 육아휴직과 나의 칼퇴근으로 '저녁 있는 삶'이 되었다. 아이들 행복지수가 더 높아졌다. 우리 부부 행복지수도 조금 높아졌다고 믿는다. ⓒ최은경

내가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해도 칼퇴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애들이 아니라, 집에 있는 남편 때문이다. 그때의 나처럼 남편도 내가 오길 기다리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제법 커서 목욕도 알아서 하고 밥도 알아서 먹는다. 남편이 그때 나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별로 없을 거다. 

그래도 아침마다 애 둘을 깨워서 씻기고 입혀서 아침을 먹여 등교를 시키고, 시간 맞춰 학원에 데려다주고 또 집으로 데려와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거다. 거기서 일이 끝나나? 천만에. 애 둘을 데려오면 또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그다음 날 준비물까지 챙겨야 하니 남편이라고 왜 내가 빨리 집에 오길 바라지 않겠는가. 게다가 내가 퇴근해서 오기 전까지 저녁식사 준비도 해야 한다.

물론 남편은 나와 달리, 힘들다고 빨리 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해봐서 그 마음 아니까, 알아서 일찍 가는 거다. 남편이 차려준 밥을 "맛있다, 맛있다" 하며 먹고, 설거지라도 하는 시늉을 하는 이유다. 이래서 부부가 모두 육아휴직을 써봐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부 관계에 있어 서로를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육아휴직'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된 부부라면, 상대방을 '돕는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육아든 살림이든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주체성을 좀 더 갖게 되지 않을까.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그러니 아빠들이여, 제발 정시에 퇴근해 집에 좀 갑시다. 집에 가서 스스로 할 일 좀 찾으시고요. 하다못해 설거지라도 하세요. '함께 육아'는 그렇게 시작되는 거니까요.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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