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낸다는 말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휴가 낸다는 말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04.20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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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자녀 둔 워킹맘의 고군분투기①] 워킹맘의 등교 전쟁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경력단절의 마지막 절벽이라 부르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들은 자녀의 입학으로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전쟁 같은 3월 한 달을 보낸 5명의 워킹맘을 만나봤다. -기자 말

<기사 싣는 순서>
① “휴가 낸다는 말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②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게 맘 아파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늦게 등교하고 일찍 하교한다. 워킹맘들은 이 때문에 휴직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이 컸다. ⓒ베이비뉴스
초등학교 1학년은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늦게 등교하고 일찍 하교한다. 워킹맘들은 이 때문에 휴직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이 컸다. ⓒ베이비뉴스

“아파트 앞에 친구들 기다려. 빨리 먹어. 어제 기억 잊었어? 늦어.”

경기도 파주시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김태은(42) 씨는 3월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김 씨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5명의 워킹맘과 예비소집일 전부터 메신저 단체대화방을 만들면서 ‘품앗이 육아’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1학년은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늦게 등교하고 일찍 하교한다. 워킹맘들은 이 때문에 휴직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이 컸다. 비교적 출퇴근 시간 조율이 가능한 자영업자인 김 씨가 나서 아이들을 매일 등교시켜주기로 했다.

매일 아침, 간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7시 40분 출근길에 아이를 김 씨네 집으로 데려다준다. 그럼 김 씨는 아이 아침을 같이 챙겨 먹이고 8시 40분쯤 집을 나서 두 명의 아이를 더 태워 학교 앞까지 데려다준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벨라시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씨는 “저희 경우는 신규아파트가 들어서고 특수상황을 잘 활용한 거예요. 기존 아파트단지 모임에선 (워킹맘을) 잘 끼워 주지도 않아요. 1학년 자녀가 있으면 삶의 패턴이 다 바뀌어야 해요. 친정 부모님, 시댁 어르신들 도움이 없이는 이웃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라고 말했다.

◇ “할머니·할아버지 안 계셨으면 못 키우겠다 싶어요, 정말”

워킹맘 이현지(가명·38) 씨는 '입학하자마자 병원에서 ‘학교 못갑니다’라고 하는데 더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인데 할아버지, 할머니 없으면 애 못 키우겠다 싶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워킹맘 이현지(가명·38) 씨는 '입학하자마자 병원에서 ‘학교 못갑니다’라고 하는데 더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인데 할아버지, 할머니 없으면 애 못 키우겠다 싶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서울시 동대문구에 사는 워킹맘 이현지(가명·38) 씨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병원 교직원이다. 맞벌이에 아이가 8살, 5살, 3살 셋.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미 2월부터 계획을 짜고 적응 연습을 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씨는 “첫째 임신했을 때 주말부부여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분가는 생각지도 못해요. 첫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첫 주에 남편 2일, 저 2일 휴가를 썼어요. 아침에 9시까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세요.”

그러던 아이가 얼마 전부터 이 씨가 출근하는 시간에 같이 나온다. “7시 30분 출근길에 도서관으로 데려다주면, 책 보고 빌리고 9시에 교실로 수업을 가요. 처음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고 힘들다고 말렸는데 애가 학원 다 돌고 집에 오면 6시가 넘어요. 아침 시간이 아니면 (책 볼)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아이가 입학하자마자 열이 나서 병원을 데려갔더니, 병원에서 ‘학교 못갑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더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인데... 할아버지, 할머니 없으면 애 못 키우겠다 싶더라고요. 2주 후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어요. 회사에 휴가 낸다는 말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차마… 한 달에 3일이나 빠졌는데”라고 말했다.

이 씨는 전날 밤, 거실에 다음 날 세 아이가 입을 옷을 준비해놓고 잔다고 했다. “겉옷 상의부터 바지, 속옷, 양말까지 다 챙겨놔요. 그렇지 않으면 출근 준비하면서 아침밥 먹여 데려가려면 아이들을 다 챙길 시간이 없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도요.”

이 씨는 2월에 친정 부모님 없이 남편과 세 아이와 보낸 3일 동안 있었던 일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3월 아이 입학 전에, 고생하시는 친정 부모님 일본 여행을 보내드렸던 때 이야기였다.

“2월에는 둘째 아이(5세) 유치원 적응기라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상태였고, 큰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이라 3일 정도면 남편이랑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저는 5시 반 퇴근인데 큰 아이 태권도는 6시에 마쳐요. 칼퇴근하고 달려갔는데도 6시 40분쯤 데리러 갔어요. 첫째 데리고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가면 7시가 넘는 거예요. 첫날부터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다음 날에는 근처에 사는 임신한 동생이 5시쯤 둘째 아이를 데려가고요, 셋째는 베이비시터가 보고 있으니 가능했지, 감기 걸리고 열나고 하면 학교, 어린이집도 못가고 쉬어야 하는데 어휴, 누가 돌보겠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듯 이 씨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때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4월 공개수업도 있고 휴가 나눠 써야 하니까, 따로 휴가계획이라는 게 없어요. 아이가 있어 정말 행복하긴 한데 너무 힘들어요. 엄마·아빠 도움 없이는 어려워요. 부모님 안 계셨으면 회사 그만뒀어야 했을 거예요, 정말.”

◇ “9시 출근인데 계속되는 지각에…”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벨라시타에서 워킹맘 (왼쪽) 김태은(42) 씨와 권혜경(38) 씨와 전쟁 같았던 지난 3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벨라시타에서 만난 워킹맘 (왼쪽) 김태은(42) 씨와 권혜경(38) 씨. 전쟁 같았던 지난 3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권혜경(38) 씨는 공공기관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9시까지 출근인데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자 등교시키고 출근하니 계속 지각을 했다.

권 씨는 “과감히 아이 아빠한테 8년 만에 임무를 줬어요. ‘등교는 아빠가 시키자’ 아빠 출근 시간이 10시 넘어도 되니까, 그동안 제가 아이를 데리고 직장어린이집을 보내고 데려오던 일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빠에게 맡긴 거죠. 저는 도와줄 친정도, 시댁도, 이웃도 없어서 오롯이 혼자 다 해야 해요”라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권 씨는 “내 자식 제가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는 데까지 어떻게든 우리 안에서 해결하려고 해보고 안 되면 그땐 방법을 찾아야죠. 돈만 가지고 따지면 일을 그만해야겠지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20년 차 은행원 안주현(가명·43) 씨도 올해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등교는 늦고 하교가 빨라져 일정을 짜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10일 저녁 전화인터뷰에서 안 씨는 “처음 입학했을 때는 할머니께서 등교를 시켜주셨고 지금은 아이돌봄센터랑 연결해서 하루 5시간, 돌봄 도우미 선생님께서 등하교 시간 맞춰 오셔서 도와주고 계세요. 비용이 들긴 해도 아이들이 안정적이니까,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결국 할머니께서 근처로 이사를 오셨다. 안 씨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전염병에 걸리거나 하면 (할머니께서) 데리고 있어 주세요. 저녁에 오셔서 아이들 밥 먹는 것도 도와주시고, 돌봄 선생님 퇴근 시간을 맞춰주시고요. 저는 아침 7시 즈음 집에서 나오고 퇴근은 집에 도착하면 8시 반 정도 돼요”라며 “시어머니께 죄송스럽긴 해도 아이들에게 무한애정을 쏟아주시니 안심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 워킹맘들에게 또 하나의 시련, 학부모 총회·상담

워킹맘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있었다. 그건 바로 3월 입학 후 연달아 있었던 학부모 총회와 담임선생님 상담이 그것.

이현지 씨는 “다행히 토요일로 배려해줘서 상담했지만, 평일 5시 반이 마지막 상담 시간이라 휴가 안 내고는 갈 수 없는 상황이었죠”라고 말했다.

학부모 총회는 반 회장 엄마가 메신저 단체대화방을 만들었고 점심 모임이 한 번 있었다고 했다. 워킹맘들이 ‘저녁 모임도 해주세요’하고 요청해 키즈카페에서 한 번 모임을 했었는데 이 씨도 그때에는 다녀왔다고 했다. 이 씨는 “(참여)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윤소영(36) 씨는 휴가를 쓰고 학부모 총회와 상담에 참석했다고 했다.
 
윤 씨는 공무원 중에서도 특수직에 속한다. “입학식, 학부모 총회, 상담, 급식 도우미 등 그때마다 휴가를 내다보니 3월에는 근무 일수가 15일밖에 안 되더라고요.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반 대표를 맡았어요. 급식 도우미로 가보니 99% 전업맘이라서 좀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윤 씨는 반 대표 엄마로서 “학부모 모임을 조직하고 밴드에 반 엄마들을 초대했어요. 반 엄마 첫 모임을 낮에 했는데 참여율이 굉장히 높았어요. 참석 못한 워킹맘들이 저녁 모임도 열어달라는 요구가 있어 계획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권혜경 씨는 “지난해부터 공무원 자녀돌봄휴가가 생겼는데요, 1년에 2일(16시간)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 공식적인 행사나 상담에 참여할 때 시간 단위로 쪼개 쓸 수 있어요. 이번 학부모 총회 때 3시간을 사용했는데 제도 하나하나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더라고요”라며 설명했다.

이어 “총회 때 다른 엄마들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한 엄마가 ‘일하세요?’하고 묻더니, ‘그렇다’고 하니 ‘바쁘시겠어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시더라”며 “전업맘들과도 잘 어울리고 싶은데 시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상황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안주현(가명·43) 씨가 근무하는 은행지점에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엄마가 3명이다. 같은 날 휴가를 써야 하니까 모두 자리를 비우기도 힘들고 조율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안 씨는 “(은행 창구 업무가)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시스템이라 직원들 간에 시간을 조율해서 외출을 다녀오는 방법 등으로 상담이나 학부모 총회를 다녀오고 그러고 있어요. 상담을 3월 말에 했는데 너무 빨리해서 아이의 특성을 살펴 볼 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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