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느린 아이’라는 가요가 있다.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내용이지만 나에게는 우리 아이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됐다. 통상 아기들은 첫돌을 전후로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래서 돌잔치를 앞두고 내심 아이가 제 첫 생일에는 스스로 걸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진작부터 물건을 잡고 서있거나 걸음마 보조 장난감을 이용해 발을 떼기도 해서 당연히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즈음 또래 아기들은 그간 엄마와 하나가 됐던 아기띠를 벗어나 어설프지만 하나 둘 걸음마를 시작했고 나도 머지않아 아기띠로부터 자유로워지겠구나 생각하니 괜히 설레기도 했다.
아기들은 발달 시기에 따라 병원에서 영·유아 발달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게 된다. 이것은 전국 아기들의 평균에 대비한 신체 발달 사항을 수치화 한 것으로 우리 아기의 현재 발육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검사이다. 평균에 대한 결과 값이 정확한 숫자로 나오다 보니 엄마에게는 마치 그간 육아에 대한 성적표처럼 느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 결과가 평균에 못 미치면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낸다. 몸무게가 평균보다 적게 나오면 아기를 좀 더 먹여 살을 찌우려 애쓰고 주위에서 몸집이 큰 다른 아기들을 보면 부러워하거나 괜히 위축되기도 한다.
우리 아기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좀 큰 편이라 생후 6개월경에 받았던 1차 영·유아 발달 검사에서는 상위 5%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 검사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 떨리고 긴장되던지 결과가 나오고 한참 들떠서 가족들에게 자랑하기 바빴다. 정말 성적표를 받은 학생처럼 이 결과가 그간 힘들었던 육아에 대한 보상인 양 들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평균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양쪽 값의 중간일 뿐인데 이 수치를 가지고 아기가 잘 자란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일 뿐만 아니라 이후 아이를 키우면서 몸소 느낀 바로 시기에 따른 발달 검사 결과쯤은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 결과는 형식적인 숫자에 불과할 뿐 엄마가 뿌듯해야 할 일도,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아이는 돌이 지나도 걷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두었던 운동화가 민망해졌다.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주변 아기들이 부러웠고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며 만에 하나 있을 법한 걱정들을 떨치려고 애썼다. 나는 여전히 아이는 나에게 안겨 다녔고 아이의 체격이 큰 편이라(당연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 엄마 힘들 것 같으니 내려서 걸으라고 하시는 주위 어른들 말씀에도 괜히 속상해졌다. 기대했던 시간들이 실망으로 바뀌고 친정 엄마 말처럼 ‘언젠간 걸을 건데 좀 천천히 걸으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체념할 무렵 아이는 한 발씩 떼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기다리면 때는 오지만 엄마의 바람과 기대에 맞춰 아이의 시간이 흐르진 않더라.
천천히 자라도 좋다는 말,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내 아이만 볼 수 있으면 100% 진심이련만 이미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어른 엄마는 자꾸 1등 성적표를 받아 보고만 싶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과 비교하고 자책하고 부러워하게 될까? 이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네가 스스로 성장하고 엄마에게 다가올 때까지 좀 더 느긋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다시한번 코앞으로 다가온 영∙유아 발달 검사. 엄마는 달라질 수 있을까? 언젠가 ‘그것들은 참 별게 아니었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만큼 자라게 된다면 모를까, 무엇보다 아이의 건강만큼은 최고이고 싶은 엄마 욕심! 이건 정말 쉽게 버리기 힘든 문제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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