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어린 시절 즐겨 놀았던 곳을 떠올려보세요. 우리가 기억하는 장소는 예외 없이 답이 같습니다.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는 바깥’이었을 겁니다.”
영국에서 온 팀 길(Tim Gil) 놀이 컨설턴트는 놀기 좋은 곳으로 우리가 떠올렸던 장소를 “자유를 맛 볼 수 있었던 곳”, “책임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정의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의 놀 권리를 보장하려면 어른들은 통제와 간섭이 아닌 다른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일, 유니세프와 서울 성북구의 공동주최로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 : 놀 권리, 지역에 뿌리내리기’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놀이 전문가와 활동가 등 600여 명이 참석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영국의 팀 길(Tim Gil) 놀이 컨설턴트와 일본의 아마노 히데아키 플레이워크 협회 이사, 한국에서는 편해문 놀이 활동가가 발표를 맡아 놀 권리 증진을 위한 방안을 제안했다.
이번 포럼은 지난해 성북구에서 추진한 ‘2017 놀 권리 확산을 위한 심포지엄’을 잇는 행사다. 성북구는 2011년 아동친화도시 조례를 제정하면서 한국에서 첫 번째로 아동친화도시에 선정됐다. 아동친화도시 조례에는 아동의 놀 권리를 명시했고, 놀이전문가를 양성하며, 놀권리 거점 공간 조성에 힘쓰는 등의 노력으로 성북구는 지난해 아동친화도시 재인증을 받았다.
◇ “어린이를 위한 도시는 모두를 위한 도시”
한국에서 아동의 놀 권리는 각종 학원과 책임에 우선순위가 밀려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한국 정부에 ‘어린이에게 놀 권리를 보장하라’는 권고사항을 전했다. 한국 어린이들이 “대한민국 교육제도 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극심한 경쟁과 이로 인한 사교육”으로 제대로 놀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초등학생 80%는 사교육을 받고, 초·중·고등학생의 54.3%는 평일 여가 시간이 2시간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어린이들을 위한 놀 권리 바로 세우기’를 주제로 발표를 맡은 팀 길 놀이 컨설턴트는 10km였던 아이들의 활동 반경이 수십 년에 걸쳐 집 근처 도로 끝까지로 좁아졌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는 어른들의 간섭과 통제 때문에 “아이들은 모험을 하면서 책임이 발전하는데, 아이들의 삶에서 모험이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현대 도시 안에서 어린이가 원하는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는 팀 길 놀이 컨설턴트는 놀이보다는 ‘어린이 일상 속 자유’에서, 놀이터 같은 개별 놀이공간보다는 ‘어린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시설’에서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위한 도시는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아이들에게 도시 개선 의견을 받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자전거나 대중교통 사용을 유도하는 벨기에의 겐트 등 아동친화적인 도시로 거듭나려는 선진국 사례를 들었다.
◇ 쓰나미 피해로 얻은 상실감, 아이들은 놀면서 회복한다
“어린이들은 스마트폰에 열중하면 살아있다는 실감을 할 수 없습니다.”
아마노 히데아키 플레이워크 협회 이사는 ‘아동의 놀이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주제로 발표했다.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특히 강조한 그는 “아이들 정체성은 어렸을 때 스스로 쌓은 기억에서 본질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도전이나 즐거움 등의 장기 기억은 어른들의 평가가 없는 주체적인 판단, 즉 놀이 경험에서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에서 전문가들은 놀이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하면서 어른들이 통제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아마노 히데아키 이사는 “어른은 자신이 커왔던 것을 기억하며 가르치지 말고 아이가 온전히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어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놀이방식을 “아이는 높은 곳을 보면 기어 올라가고, 기어 올라간 아이들은 뛰어내리고 싶어한다”며 “아이들은 그 높이를 스스로 결정한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놀이가 아이들에게 회복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세타가야 지역 어린이들의 사례를 들어 소개했다. 쓰나미 피해를 입어 상실감에 빠져 잘 움직이지도 않던 아이들은 “놀이터가 생기면서 기분을 표현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논다는 것은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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