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숨 막히는 세상, 숨 쉬며 살고 싶어요"
[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숨 막히는 세상, 숨 쉬며 살고 싶어요"
  • 칼럼니스트 여상미
  • 승인 2018.05.10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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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호흡기질환 #황사 #미세먼지 #아기병치레

최근 들어 보기 드문 맑은 하늘과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 자주 환기를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창문조차 마음 놓고 열 수 없는 봄철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도 나도 답답하지만 실내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지만 정말 변해도 너무 변했다. 특히 대기 환경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악조건으로 순식간에 달라진 것만 같다. 어렸을 때 상상으로만 미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그렸던 그림에는 간혹 마스크를 끼고 산소통을 맨 우주인 같은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세먼지에 대해 이렇게까지 예민해지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이다.

하필 그 시기에 내가 아이를 갖고 낳았다는 사실이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물려줄 맑은 공기조차 없는 세상이라니! 원래부터 비염이 있었던 나는 임신 중 환절기가 되면 황사와 더불어 어김없이 찾아오는 호흡기 질환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었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약들로 처방을 받았지만 막상 약을 앞에 두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히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 아프고 스트레스인 상태로 있자니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아이 아빠도 비염이 있어 아이도 거의 100% 비염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비염은 상대적으로 유전의 영향이 강해서 엄마 아빠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비염이 있는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1/2이며 둘 다 있을 경우는 대부분 비염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살아가며 겪는 많은 질병 중에 비염은 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남들보다 감기 등 호흡기질환에 조금 취약할 수 있고 온도, 습도에 따라 코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정도이니까.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첫돌이 지난 후부터 잦은 잔병치레가 이어지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공기 탓에 부모로서 완벽하고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상상만 해 보았던 미래의 우주인 같은 삶. 그것은 곧 현실이 됐다. ⓒ여상미
상상만 해 보았던 미래의 우주인 같은 삶. 그것은 곧 현실이 됐다. ⓒ여상미

대부분의 아기들은 모체로부터 기본적으로 받은 면역력, 모유 등으로 태어나 백일 정도까지는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 같은 경우에도 첫돌 이전에는 약간의 감기 증세와 일시적인 장염 등 전혀 아프지 않고 지나간 것은 아니었으나 비교적 무탈하게 잘 지나간 편이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돌이 다가올 무렵 감기가 심해져 중이염으로 이어졌고 돌이 지난 뒤에는 또다시 장염으로 난생처음 병원에 누워 수액까지 맞아야 했다.

어린이집을 다니고 단체 생활을 막 시작한 봄에는 기관지염이 심해져 폐렴 직전까지 간 적도 여러 번, 밤새 기침과 고열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적 또한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즈음 또래 친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한 명이 나아지는가 싶으면 또다시 다른 아이가 아프고 마치 돌림노래처럼 이어지는 병치레에 엄마들의 한숨도 끝이 없었다. 그러나 아파도 마냥 해맑은 아이들은 날이 밝으면 창밖을 가리키며 나가자는 시늉을 했고 온갖 애플리케이션을 총동원해 살펴본 미세먼지 상태는 좋은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더 많았다. 아이는 점점 더 활동적으로 변해 가고 한참 햇볕 아래 뛰어놀 나이가 되어 가는데 더 이상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조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 앞에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먼저 아이를 키운 엄마들은 아이가 다섯 살쯤 되면 스스로 면역력이 강해져 잔병치레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다고들 말한다. 그럼 그저 아이가 어서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나이 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걸까? 내가 해결하고 정리할 수가 없는 문제라 더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다 날이 좋은, 오늘 같은 날에는 뿌옇던 어제가 거짓말 같은데 이제 공기청정기 없는 집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미세먼지가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유독 호흡기질환으로 고생이 심한 아이를 볼 때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참을 되짚어 보곤 하는 것이다.

언젠가 어른들께서 살면서 정말 큰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물질이 최고인 세상 같아 보이지만 정말 커다란 문제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간과한 것들에 있지 않았을까. 마치 다른 세상 언어처럼 느껴졌던 ‘후손’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아프게 박힌다. 지금 나는 나의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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