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부모됨’… 혼인 상관없이 아이 키우게 해야”
“위험천만한 ‘부모됨’… 혼인 상관없이 아이 키우게 해야”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8.05.29 08: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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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아닌 권리로 비혼출산을 말하다③]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저출산연구센터장 인터뷰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미혼모·미혼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비혼출산 이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양육을 선택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아동의 인권과 부모의 권리라는 새로운 가치로 비혼출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미혼모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내 아이 내가 키우면 안 되나요?’라는 주제로 제8회 싱글맘의 날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미혼모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내 아이 내가 키우면 안 되나요?’라는 주제로 제8회 싱글맘의 날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장 문재인 대통령)는 “모든 아동과 가족 지원”을 4대 핵심 정책방향 중 하나로 설정했다. 한부모, 비혼·동거, 입양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정책적으로 포용하겠다는 뜻. 지난 2월에는 위원회 안에 ‘가족다양성 T/F’도 출범했다.

오랜 시간 동안 미혼모·부 가정은 정책적으로 ‘보호대상’ 수준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초저출산’ 시대의 위기감 때문에 단순히 ‘저출산 대책의 수단’으로 미혼모·부 가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고, 여전히 ‘미혼모 지원=미혼모 조장’이라는 식의 비난과 편견도 존재한다.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 ‘가족형태 다양성 논의를 위한 사회적 운영방안 연구’(홍승아 외)에 따르면,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동의 수준은 2008년의 21.5%에서 2014년 22.4%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국제결혼, 이혼, 재혼, 동거 등 여러 가족구성에 대한 태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양성 존중’을 선언한 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지난 23일 서울 불광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저출산연구센터장을 만나 새로운 시대의 가족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Q. 우리나라 미혼모 지원 정책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합니다.

“현행 한부모가족지원법의 모법이 1989년 모자복지법입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미혼모 지원에 대해서는 ‘미혼모를 조장하는 거냐’라는 식의 비판이 있었고 ‘적절하지 않은 가족’이라는 관점이 분명히 있었어요. 미혼모에 대한 정책적 관점은 한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불쌍하긴 하나 장려할 가족은 아니다.’ 이 틀이 뒤바뀐 게 2010년인데, 사실 저출산 때문이거든요. 애들 하나하나가 귀해지다 보니 ‘미혼모의 아이들 역시 귀하고, 그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죠. 하지만 그때도 부정적인 여론은 분명 있었습니다.”

Q. 대통령직속 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며 ‘어떤 가족형태라도 아이와 함께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공언했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방향 설정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지난 정부에서는 맞춤형 지원이 강조됐어요. 수요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나름의 장점이 있죠. 한편으로는 너무 좁혀서 들어가다 보니까 포괄적으로 차별을 보거나 하는 부분은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번 정부에서는 차별 개선이 중요한 핵심 중 하나라서, 가족정책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정책에서 혼인관계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 부분에서 (현 정책에는) 개선할 지점이 많다고 봅니다. (기자 : 저출산 패러다임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지난 18일 베이비뉴스가 만난 20대 미혼부의 아들 준이(가명). 생후 26개월 된 준이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아무런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8일 베이비뉴스가 만난 20대 미혼부의 아들 준이(가명). 생후 26개월 된 준이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아무런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열심히 일할수록 불이익… 지원제도 합리화 덜 됐다”

Q. ‘다양한 가족 형태의 존중과 지원’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부모나 미혼모 가정 지원에 예산을 조금 더 쓰겠다’는 수준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정책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까요?

“혼인 지위를 가지고 발생하는 민법상의 차별 문제 등을 발굴하는 흐름이 있어요. 여러 정책에서 실질적으로 발생하는 혼인관계에 따른 차별을 발견하는 건, 주류는 그대로 두고 비주류에 대한 정책을 막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류 자체를 조정하는 거죠.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맞춰서 시설을 개선하면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한부모같이 요구가 가장 큰 가족에 맞춰 변화를 시키면 모든 가족에게 득이 되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될 수 있는 거죠. 배우자 없이 애를 키우는 것이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죠.”

Q. 과거 미혼모 지원 정책 수립의 과정에서도 ‘미혼모를 조장하는 거냐’는 식의 저항은 항상 있어왔습니다.

“이제 혼인관계에다가 이익을 주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혼인관계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으로 두고 부모의 혼인관계와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이야기돼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Q. ‘저출산 대책의 수단’으로 미혼모 가족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미혼모가 낙태보다 출산을 선택하게 해서 출산율을 높이자’는 시각인데요, 이런 관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촛불혁명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지금 젊은 세대들은 굉장히 자기성찰적이에요. 애를 낳고 키우는 과정도 수동적으로 하기보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하면서 자기 생애를 기획하거든요. 그런 시민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낙태를 해라 말아라 하는 것도 국가가 할 일은 아닌 거죠. 다만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키우기 어려운 사람에게 기본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역할인 거죠. 하지만 그 이상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한참 지난 것 같아요. 저출산 극복 정책 역시 시민권의 보장 관점에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Q. 하지만 저출산 정책도 대부분 결혼-임신-출산이라는 ‘정상’ 경로를 그어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아동빈곤율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낮아요. 빈곤할 가능성이 있으면 애를 안 낳는다는 거죠. 전체 유자녀가족 빈곤율에 비해 한부모가족 빈곤율은 또 높거든요. 결혼관계의 안정성이 떨어지면 굉장히 쉽게 빈곤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회, 위험천만한 ‘부모 됨’인 거죠. 혼인관계와 상관없이 빈곤하지 않게 아이를 키우게 하는 건, 개인과 국가,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서 필요한 거죠.”

Q. 미혼모·부들이 초기에 한결같이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정보 부족입니다. 어떻게 개선해가면 좋을까요?

“기본적인 복지전달체계 내에서, 동사무소까지 여성가족을 전담하는 공무원이 배치될 필요가 있어요. 지금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업무가 너무 많아서 모든 정책의 변화를 꿰고 있기가 힘들고, 업무피로도가 높아서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거든요. 개인의 문제로 볼 게 아니고 전달체계 확충의 문제로 봐야죠.”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10일 오후 2시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 기념행사 및 정책세미나 현장에 깜짝 등장해 한부모가족과 미혼모들을 응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10일 오후 2시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 기념행사 및 정책세미나 현장에 깜짝 등장해 한부모가족과 미혼모들을 응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모든 아동에 대한 보편적 지원, 그것이 ‘진화’된 국가의 방식”

Q. 차상위 계층을 위한 한부모가정 아동양육비가 12만 원에서 13만 원으로 1만 원 올랐습니다. 좀 박하다는 기분도 드는데요., 나라에 정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쓸 마음이 없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현금 지원은 서비스 지원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초생활보장과 한부모 아동양육비를 동시에 받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금액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제도의 합리화가 덜 돼 있다고 봅니다.

한부모들은 애를 키우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남달라요. 그런데 이분들을 단절적인 ‘기초보장 또는 양육비’란 트랙으로 나눠서 지원함으로써, 일을 열심히 할수록 (소득이 많아지면 기초보장을 받지 못해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는 게 현실이죠. 약간의 소득변경으로도 혜택이 크게 늘거나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원 제도가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질 필요가 있는 거죠.”

Q.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 개원 이후 지난해 9월까지 양육비 이행의무 이행률이 40%에 불과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양육비 대지급제도를 공약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양육비이행관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육비라는 건 미룰 수 있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국가가 대지급 제도를 도입해야 된다고 봐요. 국가는 강제력이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훨씬 더 있죠. 물론 국가도 다 받을 수 있지는 않을 거예요. 일종의 한시적인 복지제도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Q.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참고할 만한 국가는 어디가 있을까요? 그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시사점이 있다면 짚어주시죠.

“영국과 미국은 미혼모 지원을 많이 확대했어요. 그런데 그 나라에선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낙인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편하게 먹고산다.’ 미국에서 복지라고 하면 주로 흑인/저소득/여성에 대한 낙인과 바로 연결돼요. 영국과 미국의 방식으로 저소득 미혼모한테만 초점을 맞춰서 가시화된 지원을 많이 늘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정치적으로 공격받아서 축소될 수 있어요.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가치를 크게 여겼죠. 아동 하나하나가 소중하기 때문에 부모의 혼인지위에 관계없이 아동에 대해서 충분히 지원한다는 것. 그런 관점으로 정책을 보편적으로 펼쳐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후퇴가 없어요. 저는 우리나라처럼 열악한 정책환경에서 아동수당이 도입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고소득층 일부를 제외하겠다는 방식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Q. 마지막으로 비혼출산에 대한 정책 변화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으신 말씀 있다면 해주십시오.

“모든 아동에 대한 보편적인 지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쌓는 것. 미혼모에게만 지원을 몰아주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저소득층의 미혼모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안전하고 진화된 방식, 책임 있는 방식으로 아동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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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rod**** 2018-05-29 11:31:54
국내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좋으니까요...
사실 진짜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엄마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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