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유치원·어린이집의 공공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라도 비리 기관 명단공개는 최소한의 조치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비공개 처분은 취소돼야 합니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조정실과 인천교육청을 상대로 비리 유치원·어린이집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국무조정실을 비롯해 전국 180여 개 교육지원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전남교육청 산하 22개 교육지원청 등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기관으로부터 비공개 답변을 받았다”며 행정소송을 진행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국무조정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은 2016년 10월부터 교육부·보건복지부·시도교육청·시도와 합동으로 회계집행 및 급식·위생 등에 대한 점검을 실시한 바 있다. 유치원·어린이집이 집중해 있는 9개 지역(8개 특별·광역시 및 경기도)을 중심으로 규모가 크거나 여러 개의 기관을 운영하는 95개소(유치원 55, 어린이집 40)를 선정해 특정 감사를 실시했다.
2017년 2월 국무조정실에서 공개한 감사 결과, 95곳 중 91개 시설에서 609건의 위반사항과 부당하게 사용한 금액 205억 원이 적발됐다. 구체적으로 유치원 55개소 중 54개소에서 위반사항 398건, 부당 사용금액 182억 원이 적발됐고, 어린이집 40개소 중 37개소에서 위반사항 211건, 부당 사용금액 23억 원이 적발됐다.
장하나 공동대표는 “지난 4월 국무조정실·교육부·복지부를 상대로 ‘2017년 2월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발표한 특정감사 결과 적발된 기관 명단’을 정보공개청구 했으나,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사와 수사에 관한 사항’이며 ‘개인정보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려 96%에 달하는 적발률은 우리 사회의 유아교육·보육의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행정 당국의 무능과 의지박약을 반증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95곳 특정감사에 91곳 적발… '친인척 채용 후 고액 지급' 다수
감사 적발 기관명을 비공개함에 따라 양육 당사자들은 내 아이가 비리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정보공개를 거부한 것일까. 우리 아이들의 안전권과 생명권보다 유치원·어린이집 소유주의 영업권이 더 중요한 것일까.
이날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비리 기관 적발 내용에는 ▲기관 운영과 무관한 사적 선물구입 ▲친인척 해외 여행경비 ▲기관장의 자녀 학비 ▲노래방·유흥주점 이용 ▲교재·교구·식재료 등 각종 물품 구입 ▲시설공사 등 용역 계약 시 증빙자료를 누락 ▲허위 증빙자료로 구매한 것처럼 위장해 부당이득을 취득 ▲일부 설립자들은 다수의 유치원·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자녀·배우자 등 친인척 명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교구·교재·식재료 등을 일괄 구매로 시중보다 고가로 계약해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있음이 밝혀졌다.
설립자나 원장의 친인척을 직원으로 채용한 후, 실제 근무 여부 등의 증빙 없이 고액의 보수를 부당하게 지급하는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원아의 부모가 부담한 급식비에서 교직원의 급·간식비를 충당하고 있는 위반사례도 확인됐고, 일부 유치원·어린이집은 유통기간이 경과한 식재료를 사용할 목적으로 보관하고 있거나, 식품종사자의 건강검진 및 위생교육 등을 소홀히 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김신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인천교육청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180여 개 지원청을 대상으로 소송할 수 없기에 어린이집·유치원 아동학대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나오는 인천교육청 산하 5개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 “적발 유치원·어린이집 명칭은 불법업체 정보일 뿐 개인정보 아니다”
소송대리인을 맡은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행정당국의 비공개 처분에 대해 ‘해당 감사와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문제 기관에 아이를 계속 맡기라고 국가가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감사 적발된 유치원·어린이집의 명칭은 불법을 저지른 업체의 정보일 뿐 개인정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류 변호사는 “(비리 기관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을 때 불법행위자 소수가 얻을 이익보다 국민이 입을 불이익이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기 때문에 이익 형량의 원칙에 따라 위 정보는 공개되는 것이 정보공개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며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특정 감사를 실시한 목적이 무엇이냐, 아이들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이 목적을 잊어선 안 된다. 범죄자가 길거리를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예방하지 않는 것과 같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장하나 공동대표는 “선거철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사립기관 원장들의 단체는 막강한 조직력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회에서도 민간교육기관의 공정성 등에 대해 굉장히 미온적이다. 정치적, 선거 공학적 접근이 아닌 아이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소수지만 당사자인 엄마들의 목소리에 관심 가지고 귀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임기 내 국공립어린이집 유치원 재원률을 40%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는데 현재 민간 사립기관이 거의 80% 차지하고 있다. 이 기관을 어떻게 강제로 문을 닫게 할 것이냐, 공약 이행을 위해서도 비리 기관 명단 공개가 필요하다. 부모로부터 문제 기관이 선택받지 못하고 현장에서 퇴출당해야만 공정성이 재고될 수 있고, 이는 국공립 확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날 “국무조정실 특정감사에서 온갖 부정부패와 위생 불량이 드러난 것을 보고 대체 해당 기관이 어디인지 의문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우리 아이들의 인권을 지키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리 기관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은 양육 당사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법원이 헌법과 정보공개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 원칙을 천명하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상식적인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회견 직후 류하경 변호사는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행정법원에 해당 소장을 접수했다. 류 변호사는 한 달 안에 재판이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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