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8.06.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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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아기 약병 이제 그만 닦고 싶다

얼마 전 둘째 경진이가 아팠다. 아침에 좀 보챈다 싶더라니, 어린이집 등원 시키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니 경진이가 열이 오르고 있어요”라고. 그때 나는 막 일을 시작한 참이었다. 아기가 아프다고 당장 덮어놓고 아기에게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천만다행으로 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었다. 남편이 경진이를 데리고 자주 가는 소아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열이 오르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병원에선 우선 중이염이 재발될 여지가 보인다며 항생제와 해열제를 처방해줬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해열제를 먹이면 열이 떨어졌지만 6~8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38~39도로 열이 다시 올랐다. 열이 오를 때마다 수건에 물을 적셔 경진이의 온 몸을 닦아줬다. 이 미온수 마사지를 열이 날 때마다 해야 하는 건지, 얼마나 오래 해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마냥 닦아줄 뿐이었다. 삼일이 지나도 열이 올랐다가 해열제를 먹어야 떨어지는 패턴이 끝나지 않았다. 남편이 결국 하루 휴가를 더 내고 경진이를 근처 대학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열감기로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해줬다. 경진이의 열감기는 그제야 끝이 났다.

둘이 뽀뽀라도 한거니 왜 감기가 옮아버렸니…

돌아가며 열감기 앓은 쌍둥이들. 열 내린다고 몇 날 며칠 홀딱 벗고 지냈다. ⓒ전아름
돌아가며 열감기 앓은 쌍둥이들. 열 내린다고 몇 날 며칠 홀딱 벗고 지냈다. ⓒ전아름

 “역시 사람은 큰 병원을 가야하나벼” 경진이의 열이 더 이상 오르지 않자 남편이 신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기뻤다. 드디어 물수건 마사지와 아기약병 닦는 일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잠을 잔 것 같지 않는 피로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또 문자가 왔다. “어머니 경빈이가 열이 높네요”라고…. 열이 이렇게 높으면 어린이집 등원보다는 가정보육을 권한다고.

남편은 더 이상 평일에 휴가를 낼 수도 없고 나 또한 아기 병원 간다고 자리를 비울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다가 감기가 옮았는지, 감기 옮지 않게 깨나 신경쓰고 있었는데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뽀뽀라도 한 모양이다. 경진이가 아팠을 때 보다 더 신경 써 줄 수 없는 상황에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까지 아팠다. 경진이와 경빈이를 간호하다가 옮은 것인지 나도 몇날 며칠 몸살에 시달렸다.

그러나 내가 아프다고 드러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또 다시 미온수에 수건을 적셔 경빈이의 몸을 마사지 해 줬다. 장난꾸러기 경빈이는 열이 나도 팔팔하게 놀고 싶었던 모양인지 수건 적신다고 떠 놓은 물그릇만 보이면 기어가 냅다 엎어버리고 그 물 위에서 첨벙거리고 놀았다. 혼낼 기운도 없어서 겨우 방바닥을 닦아놓고 다시 물을 떠 오면 그새를 못 참고 저지레를 떨었다. 경빈이의 열감기는 삼일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둘의 열감기가 끝나고 남은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아기약병과 너덜너덜해진 나의 체력이었다.

돌아가며 열감기 앓은 쌍둥이들. 열 내린다고 몇 날 며칠 홀딱 벗고 지냈다. ⓒ전아름
돌아가며 열감기 앓은 쌍둥이들. 열 내린다고 몇 날 며칠 홀딱 벗고 지냈다. ⓒ전아름

아기는 앓으면서 큰다고 하니, 앓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기가 아플 때마다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린다. 아기를 낳고 죄책감과 자괴감을 너무 쉽게 느끼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비슷한 월령의 아기를 키우는 친구가 SNS에 “우리 딸, 안 아프고 건강하게 잘 커줘서 고마워~”라고 쓸 때마다 한 달에 최소 두 세 번씩 소아과를 들락날락거리는 내가 너무 못난 엄마같이 느껴져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먼저 아기를 키운 엄마들이 “아기는 앓으면서 커요. 한 번 앓고 나면 어른들이 상상도 못 할 만큼 성장해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 없어요”라고 말 해 줄 때마다 죄책감을 핑계로 나약해지는 스스로를 다잡기도 한다.

쌍둥이들의 열감기는 끝났지만 아직 가끔 밤마다 마른기침을 한다. 기침할 때마다 저 작은 것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약국에서 받아온 약병을 버리지 않고 배즙을 직접 끓여 일일이 담아놓고 기침할 때마다 먹이고 있다. 아기 약병은 젖병보다 닦는 것이 더 번거롭고 귀찮다. 쌓여있는 아기 약병은 내 죄책감과 자괴감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도 또 아기들이 성장하고 있는 증거라고. 아, 그래도 아기 약병은 정말 그만 닦고 싶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용산에서 남편과 함께 쌍둥이 형제를 육아하고 있는 전업주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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