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 혼자다? "그럼 결혼은 왜 했어?"
인생은 결국 혼자다? "그럼 결혼은 왜 했어?"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8.06.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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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결혼 10년 만에 되돌아본 결혼의 의미

“엄마, 뭐 먹을 거 없어? 엄마, 과일 깎아줘. 포크도 챙겨주고. 엄마, 이따 나 씻으면 머리도 감겨줘” 하며 아내의 정신을 쏙 빼놓는 은이. 둘째 빈이는 언니를 따라 “엄마, 나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저기서 꺼내줘”라고 합니다.

동시에 쏟아지는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그동안 누적된 피로감이 폭발했는지, 남편에 대한 불만이 터져버린 것인지, 웬일로 아내가 아이들을 보며 “인생은 결국 혼자야. 너희가 직접 해야지”라고 단호히 거절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물론 이에 굴복할 아이들이 아니죠!

“혼자라고? 그럼 결혼은 왜 했어”라고 은이가 쏘아붙입니다. 잠시 스치는 침묵의 틈 사이로 빈이가 “그러게 결혼은 왜 했어” 하며 저를 쳐다보네요. 저는 뜨끔하고 놀랍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결혼을 했으면 짝이 있으니 혼자가 아니다. 좋아서 결혼했고 짝이 생겼는데,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말은 애초 성립하지 않는다.’ 뭐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아차. 빈이의 눈빛에는 ‘아빠,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모르나요? 엄마가 못한다면 아빠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먹을 것을 챙겨줘야 하잖아요?’ 뭐 이런 의미가 담겼을지도 모르겠네요.

생각이 이렇게 흐르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과일과 아이스크림을 챙겨주고는 자문해봅니다. ‘왜 결혼을 했을까’ 하고 말이죠.

예식장에서 변함없이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리라 맹세를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시작엔 좋았습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힘든 일도 있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했고요. 그런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던 아내의 목소리로 “인생은 결국 혼자야”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지난 10년의 성적표 같아 씁쓸합니다. 아이들이 생기고, 녀석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 나눌 시간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웃음꽃을 피우지 못하면 제 마음의 평화는커녕 짧은 미소도 기대할 수 없죠. ⓒ베이비뉴스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웃음꽃을 피우지 못하면 제 마음의 평화는커녕 짧은 미소도 기대할 수 없죠. ⓒ베이비뉴스

이쯤에서 “아니야. 부부는 누가 뭐래도 반쪽과 반쪽이 꼭 들어맞는 하나지”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혼자라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읽은 마크 트웨인의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이가서, 2011) 중 “인간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일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을 위해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네”라는 문장 덕분입니다. 혼자라는 현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란 점을 인정하니 외롭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동안 저의 생활을 반추해 보니, 가족을 위한 희생이란 커튼 뒤에 숨겨진 저 자신의 욕망이 쨍쨍하게 드러났거든요. 또 경제적인 욕망은 물론 육아와 가사의 역할분담에서 아내와 다르게 생각했고, 또 아내에게 많이 의지하고 기대했다는 점은 인정하게 됩니다. 인생은 결국 혼자인데 말이죠.

이제는 아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 합니다. 물론 남처럼 서먹하게 지내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연애 시절의 긴장감을 꺼내 보려고요.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설렘, 혹여 나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공유하는 일상이 확대되자 저의 고단함을 알아달라는 이기심이 자랐고, 급기야 제가 언제 행복해지는지를 잊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는데 말입니다.

회사에서 아등바등 일한다고 그래서 승진을 한다고 제 얼굴에 미소가 생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웃음꽃을 피우지 못하면 제 마음의 평화는커녕 짧은 미소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죠.

다시 묻습니다. “왜 결혼하고 출산했느냐고요?”

씩씩하게 답합니다. “행복해지려고요.”

또다시 묻습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을 하진 못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요. 거창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는 거랍니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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