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있나요?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있나요?
  • 칼럼니스트 김정은
  • 승인 2018.07.0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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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림 엄마글] 말 트임이 늦었던 딸의 그림이야기

“와! 잠자리 많이 잡았네!”

네 살 수린이가 그린 그림에 잠자리가 가득합니다. 잠자리채 안에 세 마리, 아직 못 잡은 잠자리가 한 마리 더 있습니다. 얼마나 좋으면 잠자리를 자신보다 더 크게 그렸을까요? 알록달록 색칠도 꼼꼼하게 했습니다.

잠자리(4세). ⓒ유수린
잠자리(4세). ⓒ유수린

엄마가 되면서부터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수린이가 잠자리를 좋아하니까 저도 잠자리를 좋아해보자 했습니다. 마트에서 잠자리채와 곤충채집함을 샀습니다.

“수린아, 잠자리 잡아서 키울까?”

네 살 수린이가 어서 말문이 트이기를 바라며, 잠자리를 마주칠 때마다 신난 아이처럼 저는 “와! 잠자리다. 잠자리!”를 외치면서 호들갑을 떨곤 했습니다.
 
“엄마, 이 그림 왜 그렸게요?”

네 살에 그린 ‘잠자리’를 보고서 열 살 수린이가 묻습니다.

“그야, 잠자리가 좋으니까 그렸겠지?”

열 살 수린이가 ‘잠자리’ 그림에 대해 설명합니다. 네 살 적 수린이는 잠자리가 싫었답니다. 유모차에 달라붙어서 자신을 노려보는 잠자리가 무척 무서웠답니다.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 떼가 아이 눈높이에서 유독 잘 보였을 겁니다. 유모차 덮개로 날아와 부딪히는 잠자리가 무서워서, 아이는 세상의 모든 잠자리를 잡아다가 잠자리채 안에 가두고 싶었답니다. 자기 눈앞에 잠자리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담았답니다. 

엄마는 자기 맘도 몰라주고, 잠자리를 잡아서 키우자고 하질 않나... 곤충도감을 들이밀며 잠자리 사진을 보여주질 않나... 네 살 수린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만회할 기회를 엿보다 ‘비눗방울’ 그림에 눈이 갔습니다. 아이 눈치를 살피며 다시 알은 체를 했습니다.
 
“우리 수린이, 비눗방울 정말 좋아했지? 이 그림 좀 봐!”

비눗방울(4세). ⓒ유수린
비눗방울(4세). ⓒ유수린

동글동글 비눗방울이 그림을 가득 채웁니다. 그림 속 네 살 수린이는 비눗방울을 불고 있습니다. 수린이가 네 살에 ‘비눗방울’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서 마트에서 큰 사이즈 비눗방울 용액 한 병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릇에 비눗방울 용액을 담습니다. 플라스틱 빨래를 동그랗게 말아서 고정시킨 다음, 용액을 묻혀서 후후 붑니다. 보글보글 비눗방울이 생깁니다. 색색이 빛을 내던 비눗방울이 톡톡 터지며 사라집니다. 다시 비눗방울을 붑니다. 큰 사이즈 비눗방울 용액 한 병이면 여름 내내 비눗방울 놀이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건 엄마 마음이잖아요!”

네 살 수린이와의 비눗방울 놀이를 추억하던 차, 난데없이 열 살 수린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자신은 비눗방울이 좋았던 게 아니라, 비눗방울로 총 싸움을 하고 싶었답니다. 비눗방울이 뿜뿜 쏟아서 나오는 돌고래 비눗방울 총이 갖고 싶었답니다.

네 살 수린이는 동네 오빠들처럼 칼싸움이나 총싸움이 하고 싶었지만, 자칫 몸싸움으로 이어지는 오빠들의 놀이에 끼기가 두려웠습니다. 네 살 수린이는 고민 끝에, 물총 놀이를 생각해냈습니다. 하지만 물총 놀이는 옷이 젖고 축축해져서 불편했습니다. 한번 발사하면 비눗방울이 계속 나오는 비눗방울 총이라면 자신도 총싸움 한번 할 만하겠다 싶었답니다.

“아, 엄마가 수린이 마음을 몰랐네.”

말 못하는 네 살 수린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당장 돌고래 비눗방울 총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열 살 수린이와 마트에 갔습니다. 막상 수린이는 엉뚱한 물건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이게 웬일일까요?

“수린아, 돌고래 비눗방울 총 갖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엄마는 총 싫어하잖아요.”

“비눗방울 총은 괜찮아.”

머뭇거리던 아이가 작은 사이즈의 비눗방울 용액 한 병을 집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두 눈만 끔뻑이는 저에게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삼천 원 넘는 거 싫어하잖아요.”

돌고래 비눗방울 총 가격표를 들여다보니 칠천 원이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해야지 맘먹고 나름대로 실천했다고 생각했는데, 삼천 원이 넘는 장난감을 단 한번 사 준적이 없다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혹시 아이가 여태 엄마 눈치를 살피며 엄마 마음에 드는 것만 골랐던 건 아닐까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습니다.    

“수린아, 돌고래 비눗방울 총 사자. 큰 병으로 비눗방울 용액도 한 병 사고.”

집 근처 공원에서 하루 종일 비눗방울 총 싸움을 했습니다. 오랜 바람을 이룬 수린이의 표정이 유난히 밝습니다.

비눗방울 총을 들고 있는 열 살 수린이. ⓒ김정은
비눗방울 총을 들고 있는 열 살 수린이. ⓒ김정은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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