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 앉은 연이, 조수석에 앉은 엄마
운전석에 앉은 연이, 조수석에 앉은 엄마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7.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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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믿는 만큼 아이는 자란다

◇ 엄마가 운전할 때

“원래 이렇게 운전해?”

미국 생활을 하는 대학 선배가 잠시 귀국해 우리집에 찾아왔다. 아이들이 모두 유치원에 가 있는 평일 한낮.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그동안의 안부를 한참 늘어놓았더니 배가 고팠다. “언니~ 나가요. 근처에 맛집 있어요” 하며 자신 있게 운전대를 잡았다. 지하주차장을 조심히 빠져나가고 있는데 조수석에 타고 있던 언니가 웃으며 물었다. “원래 이렇게 핸들을 꽉 붙잡고 운전해?”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핸들에 몸을 바짝 대고 있었다. 누가봐도 긴장한 거라 생각할 법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 반 년, 초보 티가 나는 걸까. “아유~ 걱정 마요. 동네는 자신 있어요” 하며 짐짓 여유 있는 척 등받이에 허리를 대었다. 대답은 아니라고 했지만 언니는 영 불안한 눈치였다. 십수년 ‘뚜벅이’였던 나를 봐온 언니에게는 운전하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했을 것이다. 맛집까지 가는 짧은 길에 내가 차선을 바꾸거나 방향을 바꿀 때마다 언니는 수시로 사이드 미러를 확인했다. “괜찮아요. 옆에 앉아서 남편도 언니처럼 두리번거려요” 하며 나는 털털하게 웃었다.

장 보러 마트에 가는 길(집 주변에서는 주로 내가 운전한다). 조수석에 앉아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는 남편을 보니 며칠 전 선배 언니가 생각났다. “아직도 불안해? 선배 언니야 처음 타보니 그런 거라고 해도. 언제까지 그럴 거야?” 웃음을 참는지 남편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참나, 애들 태우고 다니는 엄마라고. 조심이 몸에 착~ 배였어” 하며 못마땅함을 슬쩍 내비쳤다. 남편도 말로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고개는 무조건반사를 하는 듯 자꾸 차창 밖으로 향했다. 마트에 도착했다. 마지막 관문, 주차가 남았다. 남편을 의식하니 그날따라 긴장됐다. “옆 차가 비뚤하게 주차를 해 놓았나봐!” 사이드 미러와 후방 카메라를 번갈아 확인하며 몇 번의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차 문을 열고 자신만만하게 나와 보니 잘못 대놓은 줄 알았던 옆 차는 모범생처럼 반듯하게 서 있었다. 경차라 주차 칸을 벗어나지 않았을 뿐 사선으로 놓여있는 건 내 ‘흰둥이’였다. “아이들 태우고서는 한 번에 선 맞춰 잘 하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네”라는 말을 그저 뱉었다. 남편은 말없이 웃었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흰둥이가 “삑” 차문 잠그는 소리로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 연이가 춤을 출 때

지난봄부터 연이는 문화센터에서 벨리댄스를 배우고 있다. 친한 친구따라, 주말에 시간도 때울 겸 해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토요일 오후에 무언가를 배우는 건 엄마의 의지가 꽤 필요한 일이었다. 결혼식이 생기거나 나들이 계획이 있으면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문화센터 수업을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트 문화센터는 보통 석 달을 한 학기로 묶어 수업을 하는데, 벨리 수업에서는 한 학기 동안 두어 곡을 마스터하게 된다. 매주 같은 춤을 반복해서 석 달 동안 추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을 빠지다 보면 동작을 익히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결혼식도 많고 가족 행사도 많은 봄에 연이는 수업을 자주 빠졌다. 별 일 없이 친구 집에 놀러가느라 빠진 날은, 아무리 문화센터 수업이라도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벨리 선생님이 모래알 같은 아이들을 작은 무대에 세워도 되겠냐고 물었다. 다른 엄마들도 놀란 눈치였지만 특히 놀란 건 연이 엄마, 나였다. ‘연이가 동작을 다 알까?’ 싶었던 것이다. 공연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연습을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일주일에 한번 연습하면 공연까지 끽 해봐야 서너 번인데 서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공연은 안 하는 걸로 할까, 마음이 춤을 췄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검색해 틀어놓고 연이에게 춤을 춰보라고 했다. 아는 동작이 반, 모르는 동작이 반이었다. “연아, 이번에 벨리 수업 가면 선생님 보고 잘 따라 해야 해!”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업에 가서도 연이는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은 동작을 이미 마스터했다. 거기에 제법 ‘흥’까지 붙은 상황. 비교가 되니 더 불안했다. “공연 할 거야?” 하고 물으니 연이는 그런다고 했다. “그럼 선생님 잘 봐야 해. 모를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가 늘어갔다.

음악을 틈틈이 틀어줬다. 그러면 연습을 하긴 하는데 연이는 점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엄마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을 의식하는 순간,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동작에 힘이 없어지는 연이를 보고 있자니 ‘B사감’ 같은 내 모습이 스스로 불편해졌다. 혹시 내가 연이의 조수석에 앉아 선배 언니처럼, 남편처럼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건가. 초보라고,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낙인’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건가. 연이가 애쓰고 있는 ‘보통의 시간’을 몰라주고 있는 거라면 연이도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벨리댄스 공연 날, 연이. ⓒ신은률
벨리댄스 공연 날, 연이. ⓒ신은률

◇ 우리가 함께 할 때

“엄마, 공연 하고 나니 재미있어!”

공연 날, 한 곡의 무대를 위해 일요일 이른 시각부터 우리는 분주했다. 연이는 난생처음 눈화장을 하고 속눈썹도 붙였다. 연이도 신기한 듯 화장품을 구경하고,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제 얼굴을 확인했다. 한 걸음 앞에 서서 보면 불안한 일 투성이인데 뒤에서 밀어주고 있으니 마냥 즐겁기만 했다. 엄마로서 딸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어 기뻤다. ‘그래, 이게 내 역할이지!’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연이가 최고야. 제일 예뻐”라는 말을 귓가에 속삭여주며 응원해주었다. 이제 나머지는 연이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더워 더워 너무 더워, 더울 때는 우리들이 있잖아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연습했던 대로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연이가 말했다. “엄마! 공연하고 나니, 이제 벨리가 조금 재미있어!”라고 말이다. 그동안 재미있어서 하는 건지, 친구 따라 배우는 건지, 엄마 때문에 하는 건지 무척 궁금했었다. 내 불안의 근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공연을 준비하는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연이는 연이만의 재미를 찾았고 엄마는 ‘불안’이 우리 사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믿는 만큼 아이는 자란다. 자주 잊게 되지만, 한결 같은 정답이다. 운전석에 앉은 연이, 조수석에 앉은 엄마. 믿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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