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는 오늘도 시차 적응 중입니다
나의 육아는 오늘도 시차 적응 중입니다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8.08.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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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아이와 나, 우리의 시차(視差)
밤 10시를 맞이하는 아이와 나의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베이비뉴스
밤 10시를 맞이하는 아이와 나의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베이비뉴스

"시차 적응 중이세요?"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꾸벅꾸벅 졸음의 유혹에서 헤매는 동료들이 있다. 여름휴가 때 다녀온 해외여행의 후유증으로 업무 적응에 힘들어하는 이도 있고, 연이은 폭염 때문에 부족한 밤잠을 낮잠으로 보충하려는 이도 있다.

그중 유독 오랫동안 시차 적응 중인 이가 있어 물었다. "휴가 다녀온 지는 벌써 2주가 지났는데, 아직도 힘들어 보여요"라고. 그랬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계속 영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8시간 차이 나는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매일 새벽(영국은 저녁) 통화를 하고 있어 신체 리듬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가족과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그는 아이들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한 몸으로 두 곳의 표준시에 적응하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다크서클로 변해가는지도 모른 채….

그날 밤 10시. 더운 날, 더운 밤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방학인데 놀이터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거의 감금된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에너지를 남겨두고서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모양이다. "나랑 같이 레고 놀이할 사~람?" 하며 빈이가 목소리를 높인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남은 우리들. "왜 내 말을 안 들어. 나랑 같이 놀 사~람?" 하며 다시 소리친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잖아"라고 최측근인 엄마가 달래보지만, "난 아직 다 안 놀았다고~!"라는 외침이 돌아올 뿐이다.

땀이 흐를까 조심조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벌써 이불에 누웠던 나는, 절규에 가까운 신호를 보낸 빈이를 향해 김밥이 말리듯 데굴데굴 구른다. 바로 앉지는 못하고 옆으로 몸을 누인 채로 녀석과 함께 레고 블록을 만지작거린다. 블록을 만지는 자그마한 손가락과 오물오물 주문을 외듯 움직이는 조그마한 입술을 가진 아이를 보니, '우리도 시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며 반응하는 '시차'

아이와 나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니 동일한 표준시를 사용한다. 그러니 시차(時差)는 아니다. 하지만 밤 10시를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이것이 우리의 시차(視差)가 아닐까?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며 반응하는 그런 시차(視差) 말이다.

그러고 보니 육아하다 보면 '모험과 안전'이란 선택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종종 시차(視差)를 느낀다. 예를 들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제 살이 발갛게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바깥으로만 가면 여기저기 뛰노는 아이. 언니, 오빠들이 뛰노는 놀이터 구름다리를 보고서 따라서 턱 하고 매달리려는 아이. 그럴 때마다 녀석의 뒤를 쫓으며 "그늘에서 놀자. 구름다리 대신 그네를 타자." 하며 달래보지만, 나의 목소리는 그저 아이의 얼굴을 일그러트릴 뿐이다.

아차, 더 큰 시차가 떠올랐다. 하원 후 일과의 우선순위다. 당연히 나는 아이가 하원하면 잠시 놀이터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와 씻고 밥 먹고 책 읽고 잠을 자는 순서로 일과가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빈이는 하원 후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집으로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낸 후에서야 비로소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귀가해선 언니와 놀고, 혼자 놀고, 또 언니, 엄마, 아빠 모두와 또 놀고, 잠들어서도 놀이하는 꿈을 꾸기를 바란다.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와의 시차 문제로 아옹다옹하지만, 타지에 가족을 두고 새벽잠을 설쳐가며 영상통화 하는 이들은 이 또한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 자녀와 나의 "면벽한 두 세상"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최영미 시인의 시 '사랑의 시차' 중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밤일 때 그는 낮이었다

그가 낮일 때 나는 캄캄한 밤이었다

(…)

곁에 두고도 가고 오지 못했던

너와 나, 면벽(面壁)한 두 세상

언제 끝날까, 하는 여름도 곧 지나고 서늘한 가을이 올 것이다. 때론 정신도 육체도 탈탈 털리는 육아가 언제 끝날까, 하겠지만 우리의 아이는 곧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친구가 좋아지는 사춘기를 맞이하고 이내 독립할 것이다. 그때 자녀와 나의 면벽한 두 세상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오늘 밤부터 내려오는 눈꺼풀에 힘주어 추켜올려본다.

"그래~ 빈아! 또 놀자!"

그동안 나의 육아는 자녀들이 부모의 시선에, 세상의 시선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우리 아이들의 시선에 적응해보려 한다. 그렇게 나의 육아는 오늘도 시차 적응 중이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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