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치원 혹은 학교에 가는 아이의 마지막 표정이 어땠나요?”
얼마 전 ‘엄마의 감정 다스리기’라는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강사가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했다. 한참을 생각해봤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유독 신나게 웃으며 갔거나 울고 보채며 갔다면 기억에 남았을 텐데. 평소와 다름없이 등원한 것 같은 오늘, 아이의 표정은 어땠을까. 내 품을 떠나 팔랑팔랑 선생님에게로 뛰어가던 뒷모습만 떠오를 뿐이다.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복사해 간다고 한다. 내가 웃으며 아이를 보냈다면 아이도 웃었을 것이고, 내가 찡그리고 화를 내며 보냈다면 아이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그런데 나는 내 모습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나는 웃으며 배웅을 했을까, 아니면 인상을 쓴 모습으로 배웅을 했을까? 확실한 것은 그런 것 자체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야단을 치거나 울음을 터뜨리게 한 날은 종일 아이도 나도 서로 뭔가 꼬여서 썩 유쾌하지 못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반면 일어나는 순간부터 즐거웠던 날은 종일 웃을 일도 많더라. 꼭 매일이 그렇진 않아도 돌이켜보니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고 행동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을 처음 보낼 당시, 나는 아직도 한참 어린 아이를 엄마 품에서 떼어 놓는 것이 못내 미안하면서도 그런 티를 많이 내면 아이가 더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 더욱 매몰차게 굴었다. 세수며, 옷 갈아입는 일상생활조차 서툰 아이를 매번 재촉하기 일쑤였고, 등원하는 내내 선생님 혹은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자주 울었고 그러다 제 풀에 지쳐 할 수 없다는 듯 돌아서곤 했다. 아직 말이 서툰 아이는 “빠이빠이, 안 돼요!”라는 표현으로 제 마음을 전했고, 그 즈음 유독 누군가와 헤어지는 상황을 못 견뎌 했던 것 같다.
그때 돌아서는 아이의 표정을 한 번만이라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면. 그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를 보내고 있는지 살필 수 있었더라면 매일 전쟁 같은 아침이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강의를 듣는 내내 내 마음은 그런 후회로 가득했다.
◇ 한국 엄마들의 강박 ‘무엇이든 내가 해결해야 해!’
감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의 특징 중 유독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엇이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란다. 특히 한국 엄마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하는데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이걸 할 수 없어, 내가 챙겨줘야 해, 내가 준비해야 돼’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고. 나 역시 그렇다. 아직 모든 것에 서툰 아이를 믿고 맡기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
하지만 내가 편하려고 미루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장난감 정리를 맡기면 아이는 아무 위치에 제멋대로 쑤셔 넣는 일이 다반사다. 당연히 아이가 잠든 후에 내가 정리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계속해서 그렇게 해왔더니 놀다가도 스스로 장난감을 정리하던 아이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더라. 나의 자만이, 성장할 수 있는 아이를 오히려 퇴보하게 만든 결과를 낳은 셈이다.
감정코칭 전문가의 말에 따르자면 엄마는 오직 엄마의 역할에만 충실해도 아이가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려고 하지 말자. 규칙과 규율은 앞으로 사회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배운다. 방관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금 내려놓으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사실 엄마가 내 아이의 마음보다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은 현관 밖으로 아이를 내보낼 때 일부러 애를 써서라도 더 많이 웃고 다정하게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한다. 등 뒤에서 비추는 엄마의 햇살로 아이가 기를 펴고 더 힘차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엄마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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