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유치원' 사태, 이 아이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리 유치원' 사태, 이 아이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 기고=진유경
  • 승인 2018.10.22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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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유아교육·보육 정상화를 위한 모두의 집회' 발언문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20일 ‘유아교육·보육 정상화를 위한 모두의 집회’를 열고, 최근 비리 유치원 사태와 관련해 ▲한유총 및 교육당국 책임자 처벌 ▲에듀파인 무조건 도입 ▲국공립 단설 유치원 확충을 요구했습니다. 5세·1세 두 아이의 엄마인 진유경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가 집회 현장에서 발언한 발언문을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20일 ‘유아교육·보육 정상화를 위한 모두의 집회’를 열었다 ⓒ정치하는엄마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20일 ‘유아교육·보육 정상화를 위한 모두의 집회’를 열었다 ⓒ정치하는엄마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5세, 6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작년 가을 첫째 아이가 4세일 때의 일입니다. 다음 해 유치원 진학을 앞둔 부모들을 위한 유치원 설명회가 열리는 시즌이었습니다. 유치원진학을 알아보던 중 ‘유치원 집단 휴업예고’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들어보니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세 가지 주장을 내세우며 압박용으로 내민 카드가 '휴업'이었더군요.

무슨 주장인지 들여다보니 ▲법정 지원금을 올려 학부모에게 직접 줄 것 ▲2022년까지 국공립유치원의 원아 비율을 40%로 확대하려는 국정과제를 중단할 것 ▲설립자가 원비와 시설사용료를 자유로이 쓸 수 있게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할 것. 저는 이 주장들을 보며 기가 막혔습니다. 결국 정부의 지원은 어떤 형태로든 받되 관리감독은 받지않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죠.

휴업을 하려 했던 사태는 학부모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고 저 역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교육기관이, 자신의 이익과 충돌하는 일이 생기면, 아이들의 등원을 거부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힐 수 있구나!’

◇ 정치인들, 비리 집단은 두렵고 부모들은 두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1년 후 올해 가을, '비리 유치원' 사태가 터졌습니다. 유치원 원장들의 교비지출 내역을 보니 외제 자동차 두 대를 빌려 가족들과 쓰면서 유치원 차량 임대료 명목으로 지출하기도 했고, 원장 개인의 휴대폰 요금, 사적 경조사비, 후원금, 명품백, 노래방, 숙박업소, 종교시설 헌금, 아파트 관리비, 자녀 대학등록금 등의 항목이 있다고 하더군요.

누구든 보신 분이라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교비로 180만 원짜리 김치냉장고를 사 집에서 쓰다 적발되기도 했죠. 저도 1000원짜리를 주고 아이에게 과자를 사오라고 시키면, 뭘 샀는지 거스름돈은 남았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연간 2조 원을 주면서도 그게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감사를 안 받겠다? 혹은 감시하지 않겠다면요?

감사 안 받겠다는 유치원도, 감시할 수 없다는 정부도, 그러도록 방기하는 학부모도 바보입니다. 어떤 유치원 원장님은 유치원 교비로 본인집 냉장고 사며 사은품까지 야무지게 챙겼을텐데, 매년 혈세 2조 원을 지원하는 정부는 사립유치원 회계를 전혀 들여다보지 않는다면요. 이 사태의 첫 번째 책임자는 혈세를 지원하면서도 그에 대한 감시는 소홀히 한 정부입니다.

유치원 비리, 하루이틀 일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국회를 거쳐간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두려워 아무도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어린이집 연합회, 유치원 연합회를 정치권에서 건드리지 못했던 것은 유치원 원장들의 단합된 힘을 정치인들이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교사들이 원장 눈밖에 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어려운 것처럼, 정치인들도 한유총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묻고 싶습니다. 이익단체 하나의 영향력은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수십만 명의 학부모는 두려워할 줄 모릅니까? 집단휴원과 공청회 방해 등 막가파식 실력행사, 수백억 원대 공금 횡령 등 비리를 저지르는 집단은 두려워하면서, 이 땅의 미래인 아이들을 낳아 키워내고 있는 부모들은 두렵지 않습니까?

이번에 한 국회의원이 용기를 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정치인들이 나와야 하고, 그렇지 못한 분들은 표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우리의 작은 귀찮음과 침묵이 도둑을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우리 부모들에게도 있다고 봅니다. 유치원 원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있지만 참여율이 낮아 유명무실하다고 합니다. 유치원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2009년부터 유치원 운영위원회가 생겼고, 원 운영을 심의 및 자문하고 유치원의 주요 규칙을 제정 및 개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결산 자료도 요구해 검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치원 운영위는 학부모의 무관심 속에 형식적으로 운영되지요. 우리의 작은 귀찮음과 침묵이 도둑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원장의 부도덕과 정부의 방만함만 탓하기 전에,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 유치원 운영위원회에 더 많은 부모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출산률이 낮다고 합니다. 2017년 신생아 수는 35만 명이었고 올해는 30만 명 선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답니다. 올해 태어난 그 귀한 아이 중에 한 명을 지금 제가 안고 있습니다. 제가 수능 볼 때 80만 명 정도가 함께 수능을 치렀던 걸 생각하면 인구감소가 정말 가파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미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지를 보면서 결혼·출산 여부를 결정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불행해보인다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아이 낳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겠죠.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거기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비리 유치원 이슈에서 보여진 것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며 교육하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제일 크지 않을까요?

저출산(저출생) 문제에 새로운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지금 지원되고 있는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이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부모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노인으로 가득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이 아이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가 응답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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