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산타는 없는 것일까?
정말 산타는 없는 것일까?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8.12.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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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크리스마스 4일 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나는 점심 식사 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등원을 준비하며 아이들이 아내 속을 긁지는 않았을까, 조마조마 하며 ”점심은 먹었어?“라며 말을 건넸다. 다행히도 아내의 목소리는 밝았다.

알고 보니 아내는 아이들이 등원한 후 문구점에 들렀다. 평일 아침이니 아이들이 없어 조용할 거란 예상과 달리 엄마들이 꽤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문구나 장난감, 서적 판매대 쪽이 아니라 포장지가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포장지가 필요해 문구점을 들른 아내는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눈치 없는 나는 집에도 포장지가 있을 텐데 왜 새것을 사러 갔는지 물었다. 그러자 ”알아. 그건 우리 아이들도 모두 알고 기억하고 있어.”라는 말이 이어졌다. ‘응? 응? 그런데 왜 또 사지?’ 하는 나의 반응은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고, 아내는 ”그 포장지에 선물을 담으면 아이들이 산타가 엄마, 아빠라고 의심, 아니 확신할 것 같아.”라고 입술을 앙다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첫째 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크리스마스가 휴일인지 물었다. 너희도, 엄마랑 아빠도 모두 집에서 함께 보낼 거라고 말하니, 그럼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에는 밤새 잠자지 않고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고, 굴뚝 없는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왔으며, 또 왜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안 주냐고 묻고 싶다며 질문을 쏟아내다가, 뜬금없이 "산타할아버지가 영어로 말을 하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했다.

5분이 지났을까. 첫째는 언어장벽에 대한 고민은 날려버리고, 엄마가 어렸을 땐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타에 대한 추억이 없던 아내는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첫째는 괜찮다고. 엄마가 착하지 않고 자주 울어서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산타할아버지가 그땐 할아버지가 아니어서 선물을 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했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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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의 주위엔 이미 산타의 부재를 눈치채고 부모에게 원하는 선물을 요구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런 상황을 몰랐던 나와 달리, 아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포장지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다.

그 날 통화의 끝자락에 아내는 ”우린 아이들에게 언제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지?“ 말하는데… 나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이나 고민했다. 정말 산타는 없는 것일까, 하고.

산타클로스는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에서 출생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남몰래 많은 자선 행위를 베풀었고, 이를 기념하는 날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 루돌프를 타고 집집마다 방문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하는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3년 전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이 산타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 한 신문에 실렸다. 그는 만 10세 이후 아이들에겐 산타가 허구의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편이 낫다고 했다. 다만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의 유래를 설명하며 엄마와 아빠가 아이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메시지까지 함께 전하기를 추천했다.

맞다. 전문가의 조언도 수긍이 되니, 아내의 물음에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런데 자꾸 망설여진다. 내 입으로 산타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정말 이 세상에서 산타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비록 내가 지금껏 보지도 못했고, 선물도 받은 적이 없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내가 정말 울지도 않고 착한 일도 많이 하면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짠’ 하고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산타의 부재를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언제부턴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산타할아버지를 내 마음속에 다시 모셔오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온몸을 웅크리게 만드는 매서운 추위에도, 왠지 오늘만큼은 매번 지나치던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 잠시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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