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가 불편한 당신에게
구세군 자선냄비가 불편한 당신에게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12.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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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기부에 대한 또 다른 생각
서울 명동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서울 명동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연말이 되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구세군 자선냄비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딸랑딸랑 종을 치는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은 경험, 부모라면 모두 해봤을 것이다.

아이의 고사리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빨간 냄비에 돈을 넣게 한다. “아이~ 착하다” 칭찬을 해보지만, 사실 마음이 썩 달갑지는 않다.

꼭 언론에 보도된 구호단체들의 비리나 후원금 낭비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내가 기부하는 1만 원 중 과연 얼마가 실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지 석연치 않다. 물론 그 단체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를 이야기한다면 할 얘기가 없지만.

그리고 미혼모, 결손가정 아이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 등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대대적인 방송과 홍보를 해대면서, 정작 세금으로 그들에게 나누는 데에는 인색하다 못해 '하지 못하겠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국회의원들과 국가를 보면 구세군 냄비쯤은 그냥 '쿨하게'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시설 내 한부모 가정을 위한 아이돌봄서비스 지원금을 삭감하겠다고 생떼를 부리거나, 국공립어린이집 확대에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해대던 국회의원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나아가 명분 없이 남의 나라 내전에 무차별한 생화학무기를 동원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전쟁고아들을 지원하자는 유니세프 같은 민간의 노력(물론 의미가 없지는 않으나)이 과연 그 어린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을 비추며 왜 착한 서민들의 죄책감을 충동하는가.

이렇듯 세상을 바라보는 내 ‘삐딱’한 시선은 기부문화에 대한 불편함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의 아이 둘은 어릴 적부터 기부를 해왔다. 정확히 말하면 ‘시켜왔다’.

큰아이는 대북 지원과 북한 어린이 후원 등을 하는 ‘어린이어깨동무’에, 둘째 아이는 국제구호와 해외아동 결연사업 등을 하는 ‘굿네이버스’에 소액이지만 기부를 하게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릴 때부터 나누고 연대하는 것을 배우면 좋겠다'는 엄마의 소박한 바람. ‘기부’ 이외에 아이가 나눔과 연대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다른 정보가 나에게는 딱히 없기도 했고.

그런데 아이가 머리가 커지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우선 큰아이는 자신이 기부를 하는 곳에 대해, 월마다 배송되는 소식지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외에 특별히 기부행위를 자각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이후 용돈의 씀씀이가 커진 아이는 적은 돈이나마 자신의 세뱃돈 통장에서 매월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둘째 아이는 더 문제였는데, 굿네이버스 후원 최소액은 3만 원이었다. 꽤 큰 돈이었기 때문에 아이의 이름으로 부모인 내가 돈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내 후원인 건지, 아이의 후원인 건지 헷갈렸다. 내가 후원하는 곳은 이래저래 많이 있었는데, 거기에 보태 이름만 아이로 한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아이 용돈으로 직접 내도록 할까?' 하지만 월 3만 원은 아이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결국 둘째의 기부는 중단하고 첫째의 기부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언젠가 첫째의 기부행위도 온전히 아이의 판단에 의해 유지하든 중단하든 선택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자선단체의 비리 소식은 아이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부모의 안내는 끝이 나고 언젠가 그 선택은 아이의 판단에 맡겨지겠지.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이에게 이런 설명을 곁들이고 싶다.

“얘들아, 불우이웃을 돕는 기부행위도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엄마는 너희들이 이 사회를 더 따뜻하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 직접 실천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전쟁을 반대하는 행동에 참여하고, 빈곤층의 구제를 위해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예산을 복지에 투입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활동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북녘의 어린이들이 치료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반입을 금지하는 어떠한 국제적 힘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돌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라.“

‘딸랑 딸랑’ 소리가 정겨운 연말,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으면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하는 나눔과 후원 말고도 우리가 살면서 일상적으로, 그리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누고 연대하는 다양한 방식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

그것은 거리의 자선냄비일 수도 있고, 용돈통장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후원금일 수도 있고, 길가다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서명용지 위일 수도 있고, 광화문 광장의 촛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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