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는 올케가 시누이를 반긴 이유
베트남 사는 올케가 시누이를 반긴 이유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1.24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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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해외에서 ‘독박 육아’ 한다는 것

아이들은 한낮의 수영을 즐기고 있다. 나는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책을 폈다가 도로 접었다. 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눈에 더 담아두고 싶어서. 저 둘이 저렇게 신나게 놀 때가 언제였나. 한 달 살기 계획으로 베트남에 온 지 일주일, 두 아이의 관계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한 침대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 운동을 하고 수영을 했다. 수영이 끝나면 큰아이가 동생이 씻는 걸 도왔다. 동생의 젖은 머리도 말려주었다. 방학 숙제를 봐주기도 했다. 집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너희가 이곳에서 비로소 자매애를 알게 되는구나' 하는 기쁨에 취해 있을 무렵 내 눈에 들어온 건 아기띠를 한 아기 엄마들이었다. 쓸쓸한 걸음이었다. 소란스러운 수영장의 BGM 따위는 삭제된 듯한 외롭고 쓸쓸한 걸음걸음. 올케도 이런 시간을 보냈겠구나, 혼자 괜히 울컥했다.

내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한 달을 살기로 한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바로 오빠네 식구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오빠가 이곳에서 일한 지 2, 3년이 되었을까. 루이(올케의 닉네임)는 이곳에서 오빠와 두 돌 넘은 조카를 키우고 있다.

베트남의 한 키즈카페. 모래놀이를 할 수 있어서 조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이라고. ⓒ최은경
베트남의 한 키즈카페. 모래놀이를 할 수 있어서 조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이라고. ⓒ최은경
베트남 키즈카페 내부 모래놀이 시설. ⓒ최은경
베트남 키즈카페 내부 모래놀이 시설. ⓒ최은경

두 달간의 방학 동안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알아보고 있다는 말을 들은 루이가 ‘마침 한 달간 빈 집이 나왔다’고 알려줘서 ‘전격’ 결정된 베트남행이었다.

사실 내심 아이들 영어 공부도 할 겸 말레이시아 등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 내 야심 찬 계획은 진이(큰아이 가명)가 “어학원은 싫다”라고 단번에 거절하는 바람에 틀어졌다. ‘그래 한 달 동안 영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하겠어…. 그냥 따뜻한 곳에서 수영이나 하고 오자’ 하고 마음을 고쳐 먹은 것. 마침 한 달간 렌트한 집에는 넓은 수영장도 있었다.

남편 여동생이 한 달이나 살러 오겠다고 하면 싫을 법도 한데, 루이는 시누이의 한 달 살기를 열심히 준비해줬다. 심지어 내가 아이들이랑 와서 좋다고도 했다. 처음엔 그 말을 100% 믿지는 않았는데, 여기 오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간 많은 아이 엄마들을 봤다. 아침이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후에는 학원을 보내고…. 이곳도 방학이지만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매일 틈틈이 수영을 하는 것만 빼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한국에서 많이 보던 거였다.

하지만 베트남은 여러모로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 같진 않았다. 우선 인도 상태가 너무 좋지 않거나 심지어 없는 곳도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에 정말 최악의 환경이다. 인도가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했더니, 베트남 사람들은 거의 걸어다니지 않아 인도란 게 필요 없다는 오빠의 귀띔.

짧은 기간 동안 내가 본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서인지 아파트 단지가 아닌 거리에서 유모차 끌고 다니는 걸 자주 못 봤다. 오빠네가 살고 있는 7군의 경우 집 앞 쇼핑몰에 가려면 신호등이 2개나 있는 대로를 건너야 하는데, 파란불 신호등 시간조차 짧아서 아이를 안고 뛰어야 할 때가 많았다고 루이가 말했다. 그늘 하나 없이 햇빛이 작렬하는 도로를 말이다.

또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많아 위험하고 공기도 좋지 않았다(7군은 시내 중심가보다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그렇다). 이번에 루이랑 '떤미'라는 로컬 시장에 마실 삼아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짧은 거리인데도 매연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다녀와서 속이 좋지 않아 누워서 쉬어야 할 정도였다. 큰아이는 첫 시내관광에서 더위와 공해로 숨 쉬기가 너무 힘들다며 아파트로 가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베트남에서 걸어 다니는 건 개와 외국인뿐이라는 농담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어른인 나도 이 정도인데 애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주로 택시나 그랩을 통해 이동하고(정말 싸다, 가까운 거리는 거의 우리 지하철 비용 수준), 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루이도 이곳에서 1년 넘게 살았지만 시내 관광은 고사하고 그 유명한 콩 카페 코코넛 커피도 못 먹어 봤다면서 웃었다. 심지어 베트남에 오면 꼭 먹는다는 반쎄오나 반콧도 이번에 우리와 함께 먹어본 거라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그렇게 없이 살았다니…. 괜히 오빠가 미웠다.

반쎄오는 반달 모양의 부침개고 반콧은 동그란 새우가 들어간 찹쌀전. 바삭하고 고소하다. ⓒ최은경
반쎄오는 반달 모양의 부침개고 반콧은 동그란 새우가 들어간 찹쌀전. 바삭하고 고소하다. ⓒ최은경

회사에서 독박육아 하는 후배들의 어려움을 여러 차례 지켜봐 온 나다. 그래도 한국은 친구나 가족, 그밖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라도 있지. 여긴 말도 안 통하고 모두가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아닌가.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카톡이겠지.

이곳에서 마음먹고 친구를 사귀지 않았으면 대부분이 외롭고 쓸쓸할 시간들이었을 게다. 거기다 애라도 아픈 날이면… 울고 싶은 날들이 많았을 거다. 해외에 사는 엄마들의 독박육아가 얼마나 힘들지 말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엄청나게 많은 단톡방(각종 정보 공유 단톡부터 중고물품 거래, 반찬 가게, 과일, 수산물, 카페, 베이커리, 식당 등의 단톡)과 키카(키즈카페)가 있고, 같이 육아하는 친구들이 있고, 살림을 도와주는 내니가 있다는 거다. 적어도 그 시간 동안은 쉴 수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다 다행이었다. 루이는 내니를 통해 베트남 말도 조금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서의 한 달 살기가 끝나기 전, 오빠 내외에게 조카는 내가 볼 테니 호찌민 시내에 있는 루프탑 바에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한국에서 없던 계획이 하나 생겼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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