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심하지만 나가자, 아빠랑 사진 찍으러
미세먼지 심하지만 나가자, 아빠랑 사진 찍으러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9.03.08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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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아이들 클수록 게을러진 사진 정리

한 잡지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자녀와 함께 하는 아빠’가 콘셉트라 가족사진을 찍어야 했다. 둘째 빈이가 유독 사진 찍기를 싫어해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일단 촬영해보기로 했다. 빈이의 돌 사진 후 처음 사진관을 찾은 것이니, 얼추 4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찰랑찰랑 출입문에 달린 종이 춤추며 노래하자, 스튜디오 사장님과 촬영팀이 우리 가족을 맞았다. 간단한 인사 후 곧 촬영이 이어졌다.

”아빠는 이쪽으로 서시고, 첫째가 여기 앞으로 살짝 나오고 둘째는….“

낯선 이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오자 예상대로 빈이는 엄마 품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동안인 녀석이 급기야 두 살이나 더 어려 보일 정도로 엄마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인지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잠시 촬영을 미루고 아이들과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숲속에 온 것 같은 인디언 텐트, 알록달록 레이스가 달린 고깔모자, 팔뚝 크기의 나무 연필 등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지작거렸다. 삼대에 걸쳐 15명이 넘는 대가족 사진과 아들딸과 엄마아빠가 앙증맞게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우리 가족의 추억을 꺼내기도 했다.

이번 봄, 온 가족이 서로에게 보내는 다양한 표정을 사진 속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베이비뉴스
이번 봄, 온 가족이 서로에게 보내는 다양한 표정을 사진 속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베이비뉴스

공간에 익숙해지자 우리는 당초 사진 촬영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촬영팀은 아빠와 둘째가 나란히 서고 첫째가 살짝 앞에 서서 다 같이 웃는 장면을 기대했겠지만, 우리는 해낼 수 없었다. 급기야 나는 아이들과 고깔모자를 머리 위에 올리고 누가 오래 버티는지 경쟁하며 놀았다. 우리가 눈치 없이 노는 사이 능숙한 촬영팀은 찰나를 포착해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첩을 찾았다. 아내를 만나 인연을 이어가던 시절부터 첫째 아이가 태어나 일어서고 걷는 순간, 또 둘째가 첫째의 길을 따라 웃고 울며 성장하던 몸짓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러다 2016년 12월에서 딱 멈췄다.

우리는 하루에도, 아니 수 분 내에도 수십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기 없이도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기만 하면 선명한 화질로 횟수의 제한 없이 다양한 형태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생각난김에 스마트폰 화면 잠금을 해제하고 갤러리를 열어보니 사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양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자그마한 입에 한가득 음식을 넣고는 오물오물 움직이는 모습, 어른에게선 찾을 수 없는 토실토실한 볼살의 건강미를 사진으로, 때론 영상으로 온전히 담으며 즐거웠는데.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아빠 폰의 앵글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했고, 아빠의 렌즈가 아이들을 향하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다.

그래서일까. 사진 정리도, 인화도 모두 멈췄다.

우리는 그동안 가족사진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컴퓨터를 이용했다. 연도별로, 월별로 폴더를 만들고 특별한 여행이나 사건은 별도로 구분해 저장했다. 사진이 급격히 증가하던 초기에는 분기별로 정리해 인화하다가, 점점 반기별로, 연도별로 길어졌다. 이제는 파일 더미 속에 묻어두거나 각자의 휴대전화에 쌓아두고 정리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둘이 소파에 앉았다. 서로의 휴대폰에 잠들어 있는 사진과 영상을 컴퓨터로 옮긴 후 하나씩 넘기며 선명하고 예쁘게 찍힌 모습과 익살스러운 표정을 중심으로 선별했다. 사진 찍기를 거부하며 양 볼에 바람을 가득 넣고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 뚱한 얼굴도 함께 인화하기로 했다.

탭에서 전자파일로 확인하기보다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며 추억을 꺼내는 옛날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의 사진을 두고도 서로 다른 기억으로 옥신각신하는 맛은 전혀 예스럽지 않다.

봄날!

잦은 미세먼지로 인해 야외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며 웃기가 쉽지 않겠지만, 온 가족이 서로에게 보내는 다양한 표정을 사진 속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 웃고, 때로 울고, 가끔 외면하는 모습도 있겠지만, 내년 겨울, 내후년 봄날에 오늘의 사진을 본다면 ‘그땐 그랬지’ 하며 함께 미소 짓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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