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때 되면 하겠지"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엄마
"할 때 되면 하겠지"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엄마
  • 칼럼니스트 권정필
  • 승인 2019.03.22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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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의 동반 성장기] 아이의 선택을 기다려주기

“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사춘기 딸아이와 학원문제로 갈등이 계속 되다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서로에게 비수가 돼 결국 터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내가 너를 포기한다’고 내질렀고, 아이는 ‘마음대로 해라’로 응수했다. 서로 붉어진 눈으로 대치하다 결국 내가 돌아섰다. 머리를 식히러 카페에 가 차가운 커피를 벌컥이며 마음을 다스렸다. 차츰 이성이 되돌아오니 후회만이 남았다. 아이의 말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학원문제로 아이에게 소리를 벌컥 지르고 혼자 카페에 왔다. ⓒ권정필
학원문제로 아이에게 소리를 벌컥 지르고 혼자 카페에 왔다. ⓒ권정필

“내가 싫다잖아”, “힘들어”, “재미없어”, “다른 걸 하고 싶어”…

아이의 재주가 아까워 이것 저것들을 밀었고, 곧잘 따라오는 딸아이는 나의 자랑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욕심이 났다. 분명 처음에는 아이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펼치기를 바랐는데, 어느 새 그건 내 욕심이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은 없었다. 모두가 내가 먼저 아이에게 제시한 일들이었다. 어리니까, 아직 잘 모르니까, 내가 엄마고 어른이니까 잘 알려줘야지, 좀 더 많은 걸 가르쳐 줘야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아이니까 모든 것이 새로울 테니 기다려줘야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살펴봐야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시간을 줘야지.. 이렇게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이렇게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늘 엄마가 생각난다. 줄줄이 연년생 세 딸을 키우시느라 엄마는 늘 분주하셨고 그 중 막내인 난 무관심 속에서 자랐다 생각했다. 단 한번도 무언가를 ‘이루라’한 적이 없으셨던 엄마였기에-물론 어린 시절엔 섭섭함도 느꼈지만-난 늘 내 마음껏 선택할 수 있었다. 단 한번도 내가 배우고 싶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신 적이 없었고, 결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다. 선택은 늘 나의 몫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나의 것이었다.

예전 엄마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엄마는 나 어렸을 때 왜 학원 안보냈어?”

“네가 싫다고 해서.”

“그럼 공부하라고는 왜 안했어?”

“잔소리 한다고 네가 공부하겠니? 할 때 되면 하겠지 했어.”

믿음. 엄마의 믿음은 언제나 나를 지탱해 주었고 그 안에서 난 마음껏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내가 선택했으니까.

결국 난 딸아이를 믿기 보다는 내 아쉬움에, 내가 못 이뤘던 것을 아이에게 미뤘나 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이에게 미안했다. 먼저 아이의 생각을 묻지 않은 것이, 아이의 선택을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이, 내 바람을 아이에게 미룬 것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얼른 가서 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엄마가 기다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너의 선택을 믿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엄마가 변하겠다고, 네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엄마가 절대 해서는 안될 ‘포기’라는 말을 해서 잘못했다고 말해야겠다.

어쩌면 아이의 선택은 내 기준에서는 믿음직스럽지도, 만족스럽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리고 활짝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 아닐까. 혹 아이가 그 선택을 후회하고 실망하더라도 그건 아이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테니 그걸로 괜찮을 거다.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가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내 마음을 전해야지. 서로에게 상처가 남지 않도록, 서로를 좀 더 믿을 수 있게.

비온 뒤 땅이 굳듯 딸과도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권정필
비온 뒤 땅이 굳듯 딸과도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 ⓒ권정필

*칼럼니스트 권정필은 현재 사춘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아이들의 방황과 성장을 보며, 함께 방황하며 다시 한 번 성장하고픈 평범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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