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쟁이도 사교육 하는 시대… "불안에 균열 내야"
돌쟁이도 사교육 하는 시대… "불안에 균열 내야"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9.04.19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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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심해요, 육아!' 출간 기념 영유아 사교육 집담회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4일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에서 영유아 사교육에 깊은 고민을 가진 학부모 3인을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4일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에서 영유아 사교육에 깊은 고민을 가진 학부모 3인을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과외와 학원이 사교육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학습지, 방문과외, 교구교육, 체험학습에 문화센터까지, 사교육의 종류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특히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중·고등학생을 거쳐, 초등학생으로 내려오더니 최근은 유치원 아이들뿐 아니라 돌 전 아이도 사교육으로 길러지는 지경이다. 그 범위도 학과 공부에서 가정교육까지 넓어졌다. 

양육자는 출산을 앞두고부터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부모는 현명한 선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사교육업체에서 내놓은 홍수 같은 정보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 

지난 4일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소책자 ‘안심해요, 육아!’ 발간한 것을 기념해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에서 학부모 3명을 만났다. 세 아이의 부모이자 소책자 제작 실무를 담당한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 초등학생인 두 남매를 키우는 홍보라 씨, 그리고 다섯 살 여자아이와 7개월 남자아이의 부모 권다은 씨에게 자녀 사교육에 얽힌 우여곡절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사교육은 불안에서 출발한다. 양신영 선임연구원은 “아무도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권다은 씨와 홍보라 씨는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는 더욱 그렇다”며 거들었다. 이들은 “부모부터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엄마처럼 '쿨'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권다은 씨는 아이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돕고 싶다고 털어놨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프랑스 엄마처럼 '쿨'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권다은 씨는 아이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돕고 싶다고 털어놨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평소에 아이를 기르면서 ‘이렇게 하고 싶다’ 하는 육아 또는 교육철학이 있으시죠?
 
권다은 “현실 육아에선 ‘쿨’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없더라고요. (일동 웃음) 7년 만에 인공수정으로 낳은 귀한 아이여서 그런 것도 있고요. 지금까지 육아를 뒤돌아보면, 성격 상 여기저기 흔들리면서 왔어요. 이 책 보면 이게 맞는 거 같고, 저 책 보면 저게 맞는 거 같고. 세상에서 말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저는 알잖아요. 본인은 뭘 좋아하는지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 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지,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양신영 “‘아이를 키울 때 영향을 미치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면 제 성장과정을 투영하는 거 같아요. 97년 전후에 서초동에 살았는데, 친구들은 목표하는 대학이 있었고 특목고 준비를 했어요. 엄마들은 헬리콥터맘이 돼 일정을 관리해주고요. 저는 20대를 임용고시에 쏟아부었어요. 준비 5년 째 됐을 때 자살 위험군까지 갔고, 시험을 내려놨죠. 

학교 친구들을 지금 만나면 저를 신기하게 봐요. 그 친구들은 자녀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공기준에 맞춰 자랐으면 해요. 저는 그 경계에서 늘 흔들리면서 다 잡아가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어요.”

홍보라 “요즘 제 육아철학은 ‘너는 너, 나는 나’예요. 저는 제 인생을 고민하고, 아이에게도 본인 인생을 살게 해요. 제가 살아봐야 아이 고민을 도와줄 수 있을 거 같거든요.”

Q. 육아를 하면서 사교육에 대한 고민이 하나 둘 생기시잖아요.

홍보라 “집에만 있으면 괜찮은데, 밖은 전쟁터죠. 문 열면 총알이 날아오는 기분이에요. 사교육을 안 해왔던 양육자들은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가도 안 시킬 수 있어요. 4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곁에서 누가 잡아줄 사람이 없죠. 아이가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가치관과 타협하는 게 쉽지 않아요.”

권다은 “언젠가 아이 때문에 대치동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맞으면서 공부를 한 기억이 있고, 특목고도 다녔거든요. 임신했을 땐 ‘우리 애는 꼴등해도 돼’라고 생각했지만, 낳아놓고 보니까 막상 꼴등했다고 하면 슬플 거 같아요.”

홍보라 씨는
홍보라 씨는 "첫째 때는 '엄마표 교육'으로 완벽하게 키웠지만 둘째부터는 잘 안됐다"며 "엄마가 아이와의 놀이를 숙제처럼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교육업체들은 탄탄한 논리를 내세워 ‘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사교육을 해주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 때가 있었나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권다은 “아이 낳고 1년 동안 줏대 없이 지냈어요. 저희 아이는 말이 빠른데, 대형마트 학습지부스에서 선생님과 상담을 받아보면 ‘아이가 말이 빠르니까 시키면 잘 할 거 같다’고 해요. 처음엔 거절도 못하고 모든 선생님들이 저희 집에 한 번씩은 방문했어요. 다행히 남편이 ‘지금부터 뭘 할 필요 없다’는 기조를 가진 사람이라 도움이 됐죠.”

홍보라 “쉬는 시간마다 학습지 하는 친구가 신기해 보였나봐요. 저희 아이가 ‘나도 풀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안 재미있다’고 대답해줬죠. 아이가 ‘친구는 재미있다고 했다’고까지 말하는데 안 된다고만 하기가 그래서 한 번 시켜봤어요. 한동안 일요일 밤에 온 가족이 잠을 못 잤죠. 아이가 학습지 숙제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서요.”
 
양신영 “남편은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어요. 마음먹으면 아이를 바이링구얼(다중언어 구사자)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죠. 그런데 그 욕심이 커지면 아이와 깊이 있는 소통을 못할 거 같은 거예요. 7세 정도만 되도 사후세계나 철학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 수준의 대화는 어렵죠. 관계 수준도 많이 낮았을 거예요. 놓치는 부분도 많았을 거고요.”

Q. 오랜 제작기간을 거쳐 영유아 사교육을 다룬 소책자 ‘안심해요, 육아’가 공개됐습니다. 책자를 읽어보니 어떠셨나요? 

홍보라 “책 나왔을 때 ‘내가 했던 것과 고민했던 것들이 옳았다’하는 안도감이 컸어요. 고민 많은 부모에게 권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책자가 얇지만 필요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고요.”

권다은 “아이에게 사교육을 해줄까말까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에요. 저는 ‘책 나오면 봐야지’하고 있다가, 지인이 먼저 가제본 파일을 전달해줬어요. 사교육에 긍정적인 의견을 가진 분이었어요. 직장 동료에게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은 ‘아이 사교육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가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했어요. 그러고도 고민 끝에 아이 영어교육을 시작하긴 했지만요. 사회가 다 같이 바뀌지 않는 한, 양육자가 느끼는 불안도 가라앉히기 힘들어요.”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안심해요, 육아!'가 불안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안심해요, 육아!'가 불안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책자는 육아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가지를 제시하고 이를 하나하나 팩트체크하고 있습니다. 12가지 중 인상 깊었던 항목이 있었다면 하나씩 꼽아주세요.

홍보라 “‘2번, 3세 이전에 사람의 뇌 80%가 완성된다면서요?’ 육아책은 ‘만3세’를 많이 강조해요. 말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대요. 아이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아이 3, 4살 때는 애착을 잘 만들어주려고 항상 데리고 다녔어요. 아침에 ‘아, 오늘은 뭐하고 놀아줘야 하지’하며 눈을 떴죠. 아이는 더 잤으면 싶고. 

데리고 있으면서 협박하고 소리 지르는 일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애가 주눅 들고 눈치 보게 되고 더 분리가 안됐어요. 놀이도 부모가 숙제처럼 하면 효과가 없어요.”

권다은 “‘5번, 독서교육의 골든타임은 영유아기라고 하던데요?’ 어떤 부모는 1000권 읽히기가 목표라고도 해요. 책이 아무리 많아도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만 읽어요. 전집을 샀는데 아이가 한 권만 보면 약간 화가 나기도 해요. (일동 웃음) 

전문가는 독서에 ‘분위기와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해요. 학교 다닐 때 독서를 강요받아서 중학교 때부터는 책을 잘 안 읽게 됐어요. 그게 한스럽기도 하죠. 아이는 행복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신영 “‘6번, 요즘 확산되는 놀이교육은 일반적인 교육에 비해 부작용이 덜하다던데요?’ 부모들은 학습을 의도한 놀이를 종종 해요. 이 경우에 목적 없는 놀이를 한 아이들과 비교해 자아탄력성에 차이가 난다고 해요. 부모 의도를 파악한다는 게 신기했어요. 

아이와 관계를 쌓기 위해 놀이를 한다면 어떨까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체육선생님을 모셔다 짧게 노는 게 아니라 하루종일 놀게 했으면 좋겠어요. 선진국처럼 마음껏 뛰놀고 상상할 수 있게 교육도 바뀌었으면 해요.”

Q. 지금도 많은 분들이 사교육을 고려하고 계십니다. 양육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으신가요? 

홍보라 “온라인에서 유명하다는 ‘엄마표 영어’를 충실하게 따랐어요. 한 아이 할 땐 잘 됐는데, 둘이 되니까 잘 안 돼요. 그래서 한 아이만 키워본 ‘엄마표 교육’ 강사는 잘 안 믿게 돼더라고요. (일동 웃음) 둘째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입원을 반복했어요. 때문에 교육보다 건강이 더 큰 목표가 됐죠.”

양신영 “불안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소책자가 한다고 봐요. 소책자 ‘안심해요, 육아!’를 읽고 ‘통념’ 같이 받아들여졌던 내용이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됐으면 해요. 지난달에 초등학교 1학년에게 알림장 쓰기를 시킨다며 교육부에 공문을 보낸 부모님이 계셨어요.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 시정조치도 할 수 있게 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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