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왜 했냐고요? 딸 잘 키우려고요
이혼 왜 했냐고요? 딸 잘 키우려고요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5.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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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용기를 낸 '우리'를 응원하며

베이비뉴스에 연재를 시작하고 가끔 개인 메일로 연락이 온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어요. 정말로 이혼하고 싶습니다’

‘저도 이혼해서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기자님 글을 읽고 내 마음 같아서 펑펑 울었습니다’

이런 메일을 받을 때마다 나도 눈물이 난다.

이혼을 결정하던 그 때의 수치, 분노, 억울함, 실패감, 실망, 바닥을 치던 자존감…. 내게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답장을 보낼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라고 쓰곤 했다.

◇ 싸우고 집 나간 남편, 내 수중엔 2만 원뿐…

가끔 ‘그때’를 생각한다. 그때 내가 화 내지 않았더라면, 홧김에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혼하지 않고 살았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혼이 아닌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았을까?

아니다. 그러기엔 그 때의 내 삶은 너무나도 처참했고 매일이 지옥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날은 2014년 8월 24일이었다. 그날 사랑이 아빠와 싸웠고, 그는 집을 나갔다. 3개월 동안 그는 딱 두 번 집에 돌아왔다. 빨래하러 한 번 왔었고, 내가 이혼하러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사랑이와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한 번.

그가 집을 나가있던 3개월 동안 내 통장에는 2만 원이 전부였다. 사랑이 아빠는 생활비도 주지 않은 채 3개월을 나가 있었다. 2만 원도 쉽게 쓰지 못했다. 정말 급한 상황이 올까봐, 그때 돈 쓸 일이 생길까봐 가지고 있었다. 

집 나간 남편 대신 주변 지인들이 사랑이 먹을 것, 사랑이 입을 것을 바리바리 챙겨줬다. 내가 애랑 둘이 집에서 질질 짜고 있을까봐 우리 집에 놀러와 말동무도 해줬다.

◇ '만일 내 딸이 나처럼 산다면?' 이혼을 결심했다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이 한국이었다면 나가서 알바라도 했을 텐데 우리는 그때 미국에 있었다. 차 없인 생활할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두 발이 묶였다. 그때 나와 사랑이는 동네 언니가 마트를 가거나 외출할 때 따라다니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집 나간 남편이 괘씸했지만 나는 매일 그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 선택한 행동이었다. 

그 와중에도 친정엄마와 통화할 땐 가장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했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건 결혼생활이 아니다. 남편은 아이와 아내를 버렸다. 3개월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만일, 내 딸 사랑이가 나처럼 산다면? 만일 사랑이가 커서 남편이 집 나가 말 할 수 없을 만큼 속이 상해있는데도, 내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인다면? 그럼 나는 사랑이에게 대견하다고 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당장 캐리어를 열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인내심도, 옛정도, 의리도, 아이아빠라서 대우해주던 것도 여기까지다. 

‘나는 사랑이 엄마로서, 그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다. 괜찮은 척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남들의 시선에, 부모가 걱정할까봐 견디고 숨 죽였던 시간들 3개월이면 충분하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 딸을 당당히 보란 듯이 키울 수 있다. 그동안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니 못 견딜 일도 없다.’

그 길로 나는 한국에 왔고, 사랑이 아빠와 이혼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때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다. 

나와 사랑이는 아주 잘 지낸다. ⓒ베이비뉴스
나와 사랑이는 아주 잘 지낸다. ⓒ베이비뉴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딸과 잘 살고 있다.

나는 딸과 서로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잠도 편히 잘 잔다. 사랑이에게 아빠의 자리는 언제나 공석이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 마음이 사랑이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인지 우리의 일상은 썩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매 순간 기적이다. ‘잘 산다’의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지금 이 순간이 ‘잘 사는 것’의 기준이다.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혼하지 마세요. 남편은 달라질 거예요. 그러니 조금 참으세요.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라고 말하기엔 나는 지식도, 경험도, 전문성도 없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아이가 봐도 부끄럽지 않은 이혼이라면, 하세요. 나중에 아이에게 부모가 이혼한 이유를 말할 때 아이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것이 있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대신 문제를 피하지 말고 직면하세요.”

불행한 결혼생활만큼 이혼하고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선택을 한 ‘동지’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자신 스스로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용기를 낸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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