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방 한쪽에서 블록을 쌓고 있다. 차곡차곡 올라간 블록 중 한 조각이 톡 떨어져 나갔다.
"아이씨!"
아이의 입에서 낯선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소리는 어쩜 그리도 잘 들리는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던 나는 호들갑스럽게 달려와 아이에게 물었다.
"어머, 지금 뭐라고 그랬어? 응? 누가 그런 말을 해? 누구한테 들은 거야?"
나는 아이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보다 그 말의 출처가 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너는 절대 그런 소리를 할 아이가 아니'라는 듯 말이다. 호들갑 떠는 엄마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아이는 도망 다니며 "아이씨! 아이씨!" 했다.
아이를 앉혀 놓고 물었다.
"누가 '아이씨'라고 그랬어?"
혹시 내가 은연중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답.
"아빠가 '아이씨' 했어."
그 순간 우습게도 '내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 '아이씨'를 하면 엄마의 마음은 철렁한다. 또 무언가를 설명해줘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아이씨'는 좋지 않은 말이야."
"왜?"
"음, 왜냐면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상하거든."
참 희한하게도 나쁜 것은 아이에게 더 빠르게 흡수된다. 운전을 하는 아빠의 입에서 나온 '아이씨'에도, 주변을 지나던 한 중학생이 뱉은 '아이씨'에도 아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곤 바로 따라했다.
나는 아이를 앉혀놓고 다시 말해 주었다.
"'아이씨'라고 하지 않으면 어때?"
"아빠는 '아이씨' 하잖아."
"아빠도 이제 그 말을 하지 않을 거래."
아이는 재미있는 놀이감을 하나 뺏긴 표정이었다.
"'아이씨'라고 말하고 싶을 때 그 말 말고 '아이 참~'이라고 하면 어때?"
아이는 '고놈도 참 재밌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벌려 따라 해봤다.
"아이 참~."
"아니면, 이런 말도 있겠다. '어?', '어머!' 이런 말."
한동안 아이는 새로운 느낌의 말들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리고 혹시 아빠가 '아이씨' 하면 '아빠, 아이씨 하지 말아요' 하고 네가 얘기해드려. 알겠지?"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고, 한동안 사명감을 갖고 임무를 수행했다.
"어? 엄마, 지금 아빠 '아이씨' 했어요!"
"아빠, '아이씨'는 나쁜 말이에요.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 후 아이 입에서는 '아이씨'가 확실히 줄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아이씨'에 더 이상 호들갑 떨지 않는다.
아이 입에서 '아이씨'가 나왔다는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일 것이다. 아이는 크며 점점 더 엄마 마음을 내려앉게 만드는 말들을 내뱉을 것이다. 가끔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험한 말들도 튀어나오겠지.
그 말을 못 하게 하는 것 이전에 그 말이 왜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인지 아이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는 그런 말이 하고 싶을 때 대신할 수 있는 '대체어'를 제시해주면 좋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부모인 우리의 말을 점검하는 것, 말에서 가시를 빼고 조금 더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그것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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