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들려주는 엄마의 ‘선물’ 이야기
오월에 들려주는 엄마의 ‘선물’ 이야기
  • 칼럼니스트 권정인
  • 승인 2019.05.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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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치료사 엄마가 들려주는 쿵짝쿵짝 육아일상] 오월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달

푸르름과 따스함이 있는 계절에서 오월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이 느껴지는 달이다. 그래서일까? 관계의 행복함을 서로 나누고 감사하도록 기념일이 월초부터 중순까지 연달아 지정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로서의 행복함을 마음껏 누린다는 것 외에 나머지 날들은 그저 형식적인 날들로 간과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엄마이자 자녀, (음악치료)선생님이자 제자가 된 지금의 상황은 행복한 마음을 느끼기보다 일정을 어떻게 맞추고 무엇을 준비할지 바쁜 마음이 더 커져버렸다.

몇 해 동안은 양가 부모님께 짧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도 드려 보고 나름의 서프라이즈 선물도 해드렸는데 일하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그런 여유로움은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해마다 자신들이 받고 싶은 선물이 점점 명확해져서 엄마의 선물 선택 권한이 대폭 줄어들었다. 선물과 현금이 가장 많이 오고가는 오월에 우리의 ‘선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 ‘선물’과 ‘순수함’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폴 빌라드의 단편 ‘이해의 선물’을 기억하는가. 워낙 표현도 아름답고 내용도 감동적이라 대부분의 성인들이 저자와 제목은 몰라도 내용은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학생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이야기에 대한 감동보다 그 사탕가게 안에 묘사되어 있는 다양한 사탕의 맛이 더 궁금하고 먹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캔디와 온갖 종류의 디저트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예전 그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기에 참 상상하기 좋았다. 소설에 나오는 아이의 행동을 보며 귀엽고 순수하기는 하지만 크게 감동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 감동은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서 그러한 순수함을 발견할 때마다 더욱더 커졌다. 순수했던 시절의 순수함은 너무도 당연해서 오히려 감동이 크지 않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순수함이 퇴색될수록 감동이 커지는 것은 역설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고단한 삶에 위안을 받기도 한다.

◇ ‘어버이날’의 선물

형제 계모임에서 함께 준비하는 꽃바구니와 케이크, 식사 외에 우리 가족만의 어버이날 선물은 무엇으로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방이가 장난감 마이크를 들고 율동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을 선생님이 되어 표현하거나 방송 댄스에서 배운 동작을 자신이 아는 노래에 맞추어 흥겹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기도 하고 이제 몇 년 지나면 엄마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핸드폰으로 촬영을 한다. 아이들은 유아기 때 예쁜 행동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한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문득 손주들과 매일 영상통화로 아쉬워하시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혼자 보기엔 아까운데!’

방이가 좋아하는 노래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율동한 것을 어버이날 가족모임에서 보여주는 것을 제안해보았고, 방이는 막상 당일에는 쑥스러워 머뭇거렸지만 가족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손가락 브이와 윙크까지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하며 뿌듯해하는 아이의 표정보다 연신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에 마음이 더 울컥하였다.

내 아이를 닮은 아이의 모습을 칠십이 넘어 다시 보는 그 기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오는 것 같다. 어버이날 자녀들이 준비한 예쁜 꽃과 멋진 옷 선물, 현금 봉투도 모두 감사해하고 좋아하셨지만, 표정과 행동만으로는 단연 손주의 공연이 최고였던 것 같다. 핸드폰으로 촬영도 해가셨으니 당분간 계속 영상을 보며 행복해 하실 모습이 그려진다.

ⓒ베이비뉴스
ⓒ베이비뉴스

◇ ‘어린이날’의 선물

어린이날은 어린이 세상이라고 이해하는 7세 봉이는 어린이답게 자신이 갖고 싶은 장난감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그런 오빠를 따라 자신도 장난감을 사야 한다는 방이에게 엄마는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너희는 어버이날 선물로 뭘 준비했어?”라는 질문을 하였다.

순간 아이들은 당황했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가 가진 장난감 중 하나를 주겠다고 말했다. 장난감은 엄마가 원하는 선물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앞으로 엄마, 아빠 말씀도 잘 듣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냥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그냥 넘기기는 아쉬워 다시 한번 물어보자, 이번 주는 엄마, 아빠 힘들 때 안마도 해드리고 노래도 불러주기로 약속했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고사리 손으로 조물조물 해줄 때면 몸도 간질간질하지만 마음이 더 간질가질 행복한 기분이 든다. 소중한 선물을 미리 받고 나니, 아이들에게는 어린이날 선물로 그냥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어도 좋은지, 준다면 어떤 방식으로 주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본인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선택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봉이는 선택한 장난감이 자신이 갖고 있는 로봇과 이야기의 연관성이 있고 개별로도 합체로도 갖고 놀 수 있어서라고 했다. 방이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동물 인형들을 좋아하는데 강아지, 토끼가 있으니 새로운 동물 친구가 있으면 다 같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에 관련된 이야기를 묻고 또 묻다 보니, 세상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하는 순수한 아이들의 세상에 나도 함께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제 장난감을 선물로 받게 되면 아이들과 함께 열어보며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놀이가 확장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선물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선물을 선택하고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를 함께 기억할 것이다.

◇ 엄마의 ‘선물’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할까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눕히면 눈이 감기던 귀여운 양배추 인형, 생애 첫 노란 우산이, 청소년과 대학 시절에는 카세트 테이프에 정성 가득 녹음된 음악선물, 정말 좋아하는 영화음악의 피아노 악보가, 그리고 결혼 전 남편이 선물한 둘만의 비밀 ‘책’이 떠올랐다.

보석이나 가방, 옷 같은 선물이 없지는 않았는데 왜 그런 것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게 선물이란 갖고 싶은 또는 필요한 물건 자체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선물에 담긴 ‘기억’이 아닐까. 선물을 주는 사람과의 ‘관계’와 ‘의미’에 따라 그 선물은 나중에 멋진 추억으로 기억되어 언제든 꺼내어볼 수 있는 또 다른 ‘선물’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순수함으로 가득한 시절에는 오히려 엄마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선물에 큰 감동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는 분명 아름다운 기억으로 회상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그 보이지 않는 ‘선물’이 인생의 힘든 시기에 따뜻한 온기가 될 것이다.

신기하게도 인간의 뇌는 눈앞에 실체가 없어도 그와 관련되어 경험한 것에 기초하여 자연스럽게 반응이 나타난다. 아주 신맛이 강한 노란 레몬의 사진을 보며 맛을 상상하면 침이 고이는 것처럼 말이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그 무엇만으로도 다시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 아빠! 아이들에게 말해주세요. 느끼도록 해주세요. 눈에 보이는 선물을 줄 때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그려볼 수 있는 선물도 함께 주세요.

아이들이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선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선물에 담긴 엄마, 아빠가 주는 ‘행복한 기억’입니다.

*칼럼니스트 권정인은 학부는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나 석사는 법학과 음악치료학을, 그리고 현재는 운동생리학 박사과정 중인 인문, 자연, 예체능을 의도치 않게 두루 경험하게 된 현직 음악치료사입니다. 6세와 7세 연년생 남매를 양육하며 일어나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엄마이자 음악치료사로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서로는 「리듬게임핸드북」(도서출판 파란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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