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뜻밖의 가정 방문 1-2
[전학생은 명탐정] 뜻밖의 가정 방문 1-2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5.31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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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7장

그렇게 삼총사가 된 우리는 부엉이 아저씨의 집으로 향했다. 영지의 말처럼 부엉이 아저씨의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정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큰길을 10분쯤 따라간 다음에 딱 한 번만 왼쪽으로 꺾고 다시 10분쯤 가면 우학산의 또 다른 등산로가 나온다. 아저씨의 집은 그 등산로의 초입에 있었다.

“여기야.”

우리는 아저씨 집의 검붉게 녹이 슨 대문 앞에 섰다.

“참, 근데 우리들이 다짜고짜 찾아가서 이것저것 물어본다고 아주머니가 다 알려주실까?”

내가 던진 말에 우리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깐 고민하던 영지가 이내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부엉이 아저씨는 그날 밤 쓰러진 용재를 도와줬잖아. 좋은 일을 하신 거니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사를 쓸 예정인데, 그것 때문에 취재하러 왔다면?”

“괜찮겠는데.”

다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영지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암만 힘을 줘서 눌러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장이 난 듯하다. 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가 답답해서인지 다겸이 슬쩍 문을 밀었다. 놀랍게도 스르륵, 문이 열렸다.

“어, 안 잠겨 있었네.”

우리는 아저씨 집의 검붉게 녹이 슨 대문 앞에 섰다. ⓒ베이비뉴스
우리는 아저씨 집의 검붉게 녹이 슨 대문 앞에 섰다. ⓒ베이비뉴스

다겸이 조심스레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갔고, 나와 영지도 뒤따랐다. 곧 작은 마당에 들어선 우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당 안은 온통 고양이 천지였다!

대충 세도 열 마리는 넘을 듯한 고양이가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야옹야옹 울어댔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를 한 곳에서 처음 본 우리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삐걱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마당 구석의 자그마한 별채 문이 열리고 있었다.

“어머, 너희들은 누구니?”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마당으로 나오며 말했다. 얼핏 들여다보인 문 안쪽의 바닥에는 쭈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흰색 변기가 놓여 있었다. 아마 저 별채는 화장실 같았다. 빌라인 우리 집은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데, 이 집에서는 급할 때마다 마당으로 나와야 하니 얼마나 무섭고 불편할까?

“안녕하세요. 저희는 우학초등학교 신문 '우학 뉴스' 기자들이에요.”

영지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을 소개하고는 부엉이 아저씨의 선행을 취재하러 왔다고 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건데, 뭘 취재씩이나.”

말은 이렇게 하시면서도 아주머니는 펄쩍 뛰며 좋아했다.

“집이 누추해서 어떡하지? 자, 어서 들어가자.”

아주머니는 손을 뻗어 마루로 통하는 유리문을 드르륵 열고 우리들을 집 안으로 들였다. 요즘은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대부분 아파트나 빌라라서 이런 단독주택은 오랜만이었다. 누추하다고 한 것도 빈말이 아닌 듯 마루를 비롯해 눈에 보이는 곳곳의 색이 바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낡긴 했어도 텔레비전을 비롯해 장식장이나 소파 같은 가구들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먼지 하나 없어 전혀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깔끔하기만 한 아파트보다 살짝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은 애가 없어서 이렇게 온 집안이 북적이는 건 처음이네.”

오렌지주스를 사람 수대로 따라 가지고 온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올해 초에 이사 왔어. 여기는 시어머니 혼자 사시던 집인데, 참 시어머니라는 말의 뜻은 아니? 아저씨의 엄마.”

영지가 던진 질문에 아주머니는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대답했다. 별것 아닌 말에도 몸동작을 많이 섞는 모습이 좀 호들갑스러운 성격인 듯했다.

“우리 남편은 원래 직업이 수위 아저씨가 아니야. 그전에는 서울에서 큰 고깃집을 했단다. 근데 작년에 장사를 정리하고 집도 팔았어. 당장 잘 곳도 없으니 어쩌겠니? 시어머니 혼자 사시는 이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지. 얼마 안 있어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금은 남편과 둘이서만 살지만…….”

아주머니는 사람이 그리웠는지 취재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를 줄기차게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관심 깊게 들었지만 금세 지겨워졌다. 신문기자가 되면 이런 얘기를 자주 들어야 한다니 참 불쌍하다. 나는 재미없는 얘기를 싫어하니까 신문기자는 못할 것 같다.

얘기도 재미없는데 마당에서는 고양이들이 야옹야옹 나른하게 울어대서 잠이 솔솔 쏟아졌다. 나는 졸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참, 내 정신 좀 봐. 너희들은 아저씨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지? 잠깐만 기다려봐.”

안방으로 들어갔던 아주머니가 앨범과 나무로 된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이번에는 뭐 좀 재미있는 게 나오려나 싶어 살짝 흥미가 동했다. 아저씨가 지금 나보다 어렸던 시절의 흑백사진들과 중학교, 고등학교 때 모습을 몇 장 보았다. 부엉이 아저씨는 어렸을 때도 눈이 크고 툭 튀어나왔다는 것과 옛날에는 왜 그렇게 하나같이 머리를 짧게 깎은 건지 이상하다는 생각 말고는 역시 별다른 재미는 없었다.

“여기 한 번 봐봐.”

아주머니가 나무 상자를 열고 우리에게 아저씨가 군대 시절 받은 상장 같은 걸 보여주었다.

“이게 그이가 젊었을 때 군대에서 받은 거야. 그때도 같이 일하던 동료를 도왔다고 표창장을 받았지. 하여튼 그때나 지금이나 남을 참 잘 도와준다니까. 사업도 괜히 친구 도와준답시고 보증을 서다가…….”

뒷말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상자에는 두 분이서 주고받은 연애편지며 선물 같은 것도 있었다.

“이건 뭐예요?”

다겸은 두툼한 편지봉투 하나를 가리켰다. 속에 편지가 여러 장 들었는지 봉투 안이 불룩했다. 다른 편지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것 같은데, 그것만 편지봉투가 새것같이 깨끗했다. 여태까지 우리가 궁금해 하는 건 다 보여준 아주머니도 그 편지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보여주지 않았다.

“이건 안 돼. 시어머니가 남긴 유서거든. 유서라는 뜻, 아니? 돌아가시기 전에 시어머니가 아저씨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야. 올해 초에 시어머니 유품 정리하다가 찾았는데, 남편만 보라고 적혀 있어서 나도 아직 못 봤단다.”

다겸이 순간적으로 나와 영지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던 다겸이 갑자기 바지춤을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아줌마, 오줌 마려워요. 주스를 너무 많이 마셔서.”

“오, 그래? 아까 바깥에 화장실 봤지?”

“네. 근데 쭈그리고 앉아서 싸는 변기는 처음이라 못 가겠어요.”

“하긴 요즘 애들은 수세식만 알겠구나. 알겠다. 아줌마랑 같이 가자.”

늘 자신만만하고 당찬 다겸이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나는 아주머니의 손을 붙잡고 거실 마루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다겸을 보며 후후 웃었다. 나중에 화장실도 혼자서 못 가는 애라고 엄청 놀릴 작정이었다.

“뭐해, 일 안 하고? 시간 없어!”

나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영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영지는 할머니가 남긴 유서 봉투를 열고 안에 든 편지들을 꺼냈다.

“야, 그건 보지 말랬잖아!”

“다겸이 우리한테 눈짓한 것 못 봤어? 다겸은 이 유서가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하고 아줌마를 유인한 거야. 자기가 아줌마랑 같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이 유서를 챙기라고.”

아하, 다겸의 눈빛에 그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나는 냉큼 유서를 집어 가방에 넣으려 했다.

“유서를 그냥 가져가면 범인이 우리라는 게 뻔히 들통 나잖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우리인데.”

“그런가?”

영지의 말이 맞다. 나는 가방에서 공책과 연필을 주섬주섬 꺼냈다. 영지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또 왜?”

“유서를 못 가져가면 일일이 베끼는 수밖에 없잖아.”

“이 바보야! 아줌마랑 다겸이는 금방 올 텐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그럼 어떻게 해?”

“스마트폰을 쓰면 되지.”

영지는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유서를 한 장, 한 장 찍었다. 연이어 들리는 찰칵찰칵 소리에 아주머니가 금방이라도 눈치채고 돌아올까 봐 숨을 죽였지만 다행히 촬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스마트폰이라는 물건, 정말 환상적이다. 나는 오늘 두 번째로 스마트폰을 가진 영지가 몹시 부러웠다.

무사히 볼일을 마친 다겸과 아주머니가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꽤나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다음에 또 놀러오라고 했다.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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