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지만 어둑어둑하니 곧 한차례 비가 쏟아질 것 같다. 하늘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빨래였다. 눅눅한 공기에 빨래를 해도 제대로 마르지도 않을 테고, 냄새도 날테니 오늘 빨래는 패스.
곧 서글퍼 졌다. 잔뜩 구름 낀 하늘을 보고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빨래라니. 살짝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렸다. 예전에 비가 오면 뭘 했더라.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본다. 요새 날 위해 무엇을 했더라. 딱히 가정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는데, 그저 쳇바퀴 돌 듯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잠시 쉬고 나서, 다시 아이들 간식과 저녁을 준비하고, 소소한 집안일까지 마치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생활이 특별히 어렵고 힘들진 않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날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조금씩 소비되는 나는, 속이 비어간다. 생각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다 하기 싫어졌다. 빨래며 설거지, 식사 준비 다 귀찮다. 온전한 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모처럼 예쁘게 화장도 하고,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다소 불편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오전에 어둑했던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빨래 돌리고 나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호기롭게 나오긴 했는데, 어딜 갈까. 결국 카페로 갔다.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먹고, 뭐 아무래도 좋다.
평소 좋아하는 브런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저 신이 났다. 카페의 시원한 공기도, 은은하게 들리는 음악 소리도, 좋아하는 샌드위치도,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도 모든 것이 좋았다. 혼자 브런치를 즐기는,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지금 모든 것이 완벽하니까.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즐긴 뒤 카페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더욱 맑아졌다. '얼른 가서 빨래 돌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났다. 불과 몇시간 전에는 같은 하늘을 보며 빨래 생각했다고 우울했는데, 이제는 빨래 잘 마를 생각에 즐겁다니. 몇 시간의 여유로움이 나를 다시 일상생활로 돌려놨다.
나를 채웠으니 다시 힘내야지. 조금 힘들면 쉬었다 가면 된다. 천천히 가면 어떤가. 앞으로 향하면 되는 거지. 그럼 된거다.
*칼럼니스트 권정필은 현재 사춘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아이들의 방황과 성장을 보며, 함께 방황하며 다시 한 번 성장하고픈 평범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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