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할머니가 남긴 편지 1-2
[전학생은 명탐정] 할머니가 남긴 편지 1-2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7.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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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8장

내 아들, 상구 보거라.

상구야, 요즘 많이 힘들지? 네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온다고 했을 때는 멋모르고 아들이랑 같이 사는 게 그저 좋기만 했는데, 막상 사업에 실패해서 축 처진 네 어깨를 보니 엄마 마음도 참 아프단다. 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들처럼 재산도 못 물려주고, 대학교도 못 보내서 네가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 엄마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작년 말에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늙은 엄마가 너한테 짐만 될까 걱정했는데, 하느님이 고맙게도 내 소원을 들어주셔서 나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가려는가 보다. 엄마는 살 만큼 살았으니 걱정할 것 하나도 없고, 앞으로 상구, 너만 잘 살면 이 엄마는 더 바랄 게 없다.

그나저나 엄마는 이렇게 가면 끝이지만 남은 네가 걱정이구나. 물려줄 것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채인데, 그 허름한 집구석이 몇 푼이나 하겠느냐. 모아놓은 재산도 없이 며느리랑 둘이서 어렵게 살아갈 네 걱정 때문에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이불 깔고 누워도 잠은 안 오고 한숨만 나온다.

네 아버지는 일본 군인들에게 들키면 총에 맞을까 봐 얼른 근처 풀숲에 숨었대. ⓒ베이비뉴스
네 아버지는 일본 군인들에게 들키면 총에 맞을까 봐 얼른 근처 풀숲에 숨었대. ⓒ베이비뉴스

하지만 상구야,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지? 내가 너무 고민하니까 하느님이 불쌍했는지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려주셨단다. 이건 아직 네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시절에 들었던 얘기야. 이 이야기가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다른 방법도 없으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부 얘기해주마.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네 아버지에게 시집 왔던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 쭉 이 집에서 살았다. 그때는 네 아버지가 큰형 집의 농사를 도와주고 쌀이랑 채소 같은 걸 받아와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처지였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네 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했어. 가난한 형편에도 아랑곳없이 맨날 술을 마셔서 엄마가 참 힘들었단다. 어느 날, 아버지는 평소처럼 친구하고 술을 마시다가 생각보다 시간이 늦은 걸 알게 됐지. 그래서 지름길로 질러온다고 우학산 아래를 빙 둘러서 우리 집으로 향했어. 지금으로 따지면 우학초등학교가 있는 자리로 말이야. 

그런데 왜 그 부근에 돌로 만든 사자상이 하나 있잖니. 너도 그 학교를 졸업했으니 아마 알 거야. 그 사자상 부근에 일본 군복을 입고 총까지 멘 두 사람이 서 있더래. 그때는 우학산 정상에 일본 군부대가 머물고 있었거든. 

“타임! 우리나라에 왜 일본 군부대가 머물러 있었어?”

편지를 읽다 말고 내가 물었다. 영지가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화를 냈다. 

“3학년이 그것도 몰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점령했잖아.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제로 일본 말도 배워야 했고, 자원 같은 것도 일본에 다 빼앗겼어.” 

“와, 일본 정말 나빴다! 앞으로 일본이랑 관계있는 건 거들떠도 안 볼 거야!”

“그럼 돈가스도 안 먹을 거야? 일본에서 나온 요리인데?”

잠시 고민하다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돈가스를 못 먹는다는 건 상상만 해도 괴로웠지만 뭐 괜찮다. 돈가스 대신 삼겹살을 먹으면 되니까. 

“그럼 타이탄X도 안 볼 거야? 그거 일본 만화일걸?”

“말도 안 돼! 타이탄X가 우리나라 말을 얼마나 잘하는데!”

“그건 성우들이 일본 말을 빼고 우리나라 말로 다시 녹음한 거지. 너도 텔레비전에서 하는 미국 영화에서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 하는 것 봤지? 그것도 원래는 영어로 말한 건데 우리나라 말로 다시 더빙한 거라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큰아버지가 용수 형한테 대형 타이탄X를 선물해줬을 때(지금은 내 손에 들어왔지만), 분명 일본에서 사왔다고 하셨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타이탄X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자,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편지나 마저 읽자.”

뒷이야기가 궁금해 못 참겠다는 표정의 다겸이 나서는 바람에 살았다. 

네 아버지는 일본 군인들에게 들키면 총에 맞을까 봐 얼른 근처 풀숲에 숨었대. 그러면서 빨리 군인들이 사라지기만을 빌었다고 해. 

다행히 군인들은 아버지를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들 일에만 열중하는 것 같았다지. 그중 한 군인이 사자상의 입에 손을 집어넣어 혓바닥을 세 번 꾹 누르고는 다시 사자의 왼쪽 눈동자와 마지막으로 오른쪽 눈동자를 누르더래. 아버지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대. 

조금 이따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더구나. 글쎄, 멀쩡하던 사자상이 왼쪽을 향해 빙그르르 돌더니 얼마 안 있어서 쿠르릉, 하고 땅이 온통 뒤흔들리는 소리가 나더래. 그러더니 우학산 위의 일본 군부대로 올라가는 계단의 맨 아랫단부터 그 위의 대여섯 계단이 누가 하늘 위에서 잡아끌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고 했어. 

이윽고 계단이 어느 정도 들리자,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구멍이 보였다고 하더구나. 그 뻥 뚫린 구멍 속으로 두 일본 군인이 들어가는 모습을 네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지켜보았대. 도대체 저기가 뭐하는 곳인지 너무 궁금해서 위험한 상황인 것도 잊고 슬쩍 다가가서 구멍 안을 엿보았다더구나. 

들어간 군인 중 하나가 불을 켰는지 구멍 안은 환했는데, 비밀통로 같이 생긴 터널이 10여 미터쯤 이어져 있었다고 해. 터널 끝은 커다란 철문으로 막혀 있었고. 

철문은 무거운 자물쇠로 잠겨 있었는데, 둘 중 한 군인이 다른 군인에게 이렇게 말하더래.

“산고래. 산고래.”

그러자 ‘산고래’라는 말을 들은 군인이 자물쇠를 이리저리 주물렀고, 곧바로 철문이 열렸단다. 상구야, 세상에는 참 신기한 일도 많지?

네 아버지는 그 모든 광경을 넋이 나간 채 지켜보고 있다가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대. 그 소리가 제법 크게 났나 봐. 일본 군인들이 홱 뒤를 돌아보기에 미친 듯이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는구나.

네 아버지는 6.25전쟁 때 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네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이 얘기를 해줬단다.

‘아무래도 일본 군이 우리나라에서 훔친 보물 같은 걸 보관하던 비밀 창고를 발견한 것 같으니 당신이 꼭 찾아내서 상구하고 둘이 살아가는 데 쓰도록 하시오.’

그게 네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듣기에는 너무 황당한 얘기였고, 또 여자 혼자 몸으로 너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어느새 싹 잊고 말았지. 어쩌면 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헛것을 본 건지, 아니면 진짜 보물 창고인지는 엄마도 모르겠구나. 엄마는 그저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이 얘기를 마지막으로 남긴단다.

상구야, 부디 건강하고 행복해라. 저세상에서 엄마와 아들로 다시 만나자꾸나.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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