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사유와 공유 사이에 서다
아빠, 사유와 공유 사이에 서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07.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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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주말의 마지막은 놀이터에서 마무리한다. 해가 저물기 전 두 딸들과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네를 타는 것이다. 이 시간은 늘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오늘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돼 보이는 두 친구가 두 개의 그네를 타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기에 그네에 앉아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서율이는 뒤에 줄을 섰다. "나도 그네 타고 싶은데..."라며 두 언니들에게 들릴 정도로 혼잣말을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쪼르르 뛰어온 서율이는 "아빠 그네 타고 싶어"라고 이야기 한다. '저기 언니들을 물리쳐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개입하지 않는다. "언니들한테 가서 타고 싶다고 이야기해봐"라고 돌려보냈다. 녀석은 언니들의 눈치를 보며 주변을 맴돌 뿐 이야기하지 못했다.     

한 참 후 생각을 고쳤다. 만약 나라면 동네 형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율이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동네언니들의 뒤에서 "우리 언니들 다 탈 때까지 기다려보자"며 그네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렸다. 그제야 두 친구는 '나 타고 있는데'라고 하듯 동시에 그네를 움직였지만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돼있었다. 그네를 사유하는 두 친구들에게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 사유를 먼저 배우는 아이들     

늘 쓰던 와이파이에 주인이 비밀번호를 걸고야 말았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늘 쓰던 와이파이에 주인이 비밀번호를 걸고야 말았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첫 장면에서는 와이파이 공유기에 접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나온다. 공공재인 줄 알았던 윗집의 와이파이였는데 '비밀번호'를 건 것이다. 이 모습에서 최근 일어난 단상이 떠올랐다. 일부 아파트에서 단지 내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외부 아이들의 놀이터 유입을 막은 일 말이다.

아이들은 공유보다는 사유의 개념을 먼저 배운다. 자아가 생기면 '내 꺼'라는 말을 먼저 배운다. 친구의 물건을 빼앗아 ‘내 꺼’라고 해보지만 ‘사유’를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배우게 된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사유를 양보하는 아이로 키워야 할까? 양보보다는 자신의 것을 잘 챙기는 아이로 키워야 할까?  나는 사회사업 현장에서 공동체가 뜻을 모아 만들어 놓은 곳이 그곳에서 활동하는 개인의 인적 네트워크 중심으로 자원을 독식하는 등 좋은 취지의 공유가 사유로 귀결되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했다. 공동체가 있어야 할 곳에는 늘 ‘사유화’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그네를 독식한 두 아이들처럼 말이다.      

 1등보다는 '꼴등' 가르치고 싶다    

나는 그네를 독차지한 아이들에게 정중히 부탁을 했다. “미안하지만 동생이 그네를 너무 타고 싶어 하는데 양보해주면 안 될까요?” 고맙게도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게 서율이는 그네에 앉았지만 그 기다린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할 듯 뒤에 기다리는 친구에게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나와 실랑이를 하고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사유(私有)의 진정한 의미는 잠시 빌리거나 잠시 쓰는 것이 아닐까?  ⓒ문선종
사유(私有)의 진정한 의미는 잠시 빌리거나 잠시 쓰는 것이 아닐까? ⓒ문선종

‘와이파이 비밀번호’와 ‘스크린도어’는 분명한 사유이기에 절대 비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돈독함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사회로 만들도록 아이들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눈 앞의 경제위기, 기후위기 등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협동과 공동체의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체를 가장 크게 파괴하고 있는 아파트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과 그 아파트에 나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2014년 용인 제일초등학교 운동회 이야기를 아직까지 기억한다. 운동회에서 늘 꼴찌만 하는 친구를 위해 손을 잡고 모두 함께 결승선에 온 이야기는 아직도 가슴속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우분투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율이가 놀이터에서 양보와 공동체를 발휘하는 친구로 자라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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