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맞았다…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가 맞았다…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9.07.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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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베트남 여성 폭행사건… 가정폭력이 남긴 상처들

한 엄마가 맞았다. 남편에게 흠씬 맞아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갈비뼈가 부러졌단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얼마 전 ‘베트남 여성 폭행’이라는 키워드가 연일 인터넷에 떠돌았다. 한 여성이 머리를 감싸쥐고 앉아 있고,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그 주변을 서성이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 찍힌 또 다른 한 명. 두 살배기 아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빠란 사람은 세 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엄마를 폭행했다. 아이는 “엄마,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었다. 주저앉아 있는 엄마 앞에 서 있던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너무 화가 치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아이, 너무 작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이를 안고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 기억을 모두 지워주고 싶었다. 이 아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장면을 기억하며 살게 될까. 얼마나 오랜 세월 불안함 속을 헤매게 될까.

초등학교 시절, 한밤중에 방문이 쾅 닫히거나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엄마 아빠의 격한 말다툼에 선잠을 자다가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튀어 나가곤 했다. 엄마가 다칠까봐.

무섭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반사적으로 뛰어가면 거실은 엉망이었다. 화분이 깨지고 바닥에는 흙덩이들이 널려 있었다. 간혹 핏방울이 보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엄마 목을 조르는 아빠를 붙들고 악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그 ‘집’이란 곳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싸우는 엄마 아빠가 보이는 듯했다. 어디선가 또 엄마가 맞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결국 엄마가 내 곁을 떠날 것만 같아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옷장부터 열어보곤 했다. 옷이 제대로 걸려있는 걸 보고 안심하곤 했다.

혹시 내가 죽어 없어진다면 이 비극이 끝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내가 칼이라도 맞으면, 창문 아래로 떨어져버리면 그때는 아빠가 그 행동을 멈추고 반성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이 위로가 되던 그런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잊고 싶은 순간들은 더 오래 남는다
잊고 싶은 순간들은 더 오래 남는다 ⓒ김경옥

후유증은 참 오래갔다. 현관에서 들려오는 열쇠 소리에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마라, 아무도 들어오지 마라’ 하면서 현관을 주시하게 되었다. 학교 쉬는 시간,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누군가 문을 쾅 닫으면 그 소리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한동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엎드린 채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자세를 고쳐 앉을 수 있었다.

바보처럼 그런 소리들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누가 싸우는 소리만 들려도 너무 무서워 어디로든 숨고 싶어졌다. 그 소리가 부부 싸움 소리라도 되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소리에 민감한 건 나이 마흔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맞는 엄마 앞에서 ‘엄마’를 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작은 아기는 그 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기억의 잔재들이 아이 안에 어떻게 남을까. 그게 언제까지 아이를 괴롭히게 될까. 한데 이 아이뿐이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집들이 시끄러울 것이다. 누군가는 주먹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죽기 살기로 그것을 막고 있을 것이다. 살아야겠기에. 살려야겠기에.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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