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생사를 넘나들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하늘이 노랗게 될 때쯤 끝나있다’는 출산 경험담은 많이 읽었다. 임신은 그에 비해 비밀스럽다. 10개월 동안 여성의 배는 점점 부풀어오르지만, 그 여성은 무슨 일을 겪는지는 공유되지 않는다. ‘입덧’으로 납작하게 요약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음 속으로 아무리 다짐해도 임신을 해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작은 통증에도 '뭐가 잘못된 건 아닐지' 겁부터 난다. 맘카페나 기혼 여성 커뮤니티에서 임신 중 증상을 질문하는 게시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임신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유난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들을 놀라울 정도로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사회가 임신과 출산 당사자들이 내는 목소리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은폐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로.”(「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15쪽)
◇ “속았다” 느낄 때마다 트위터에 적었더니 책이 되었다
“제가 이럴 줄 알았을까요. 속아서 한 임신입니다.”(229쪽) 알고 맞는 매도 아픈데, 모르고 맞는 매는 더 아프다. 30대 여성 송해나 씨에게 임신은 모르고 맞는 매였다. 남편과 수없이 대화하며 계획한 임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 과정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책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문예출판사, 2019년)는 뜨겁고 날 것 그대로인 저자 송해나 씨의 속내를 보여준다. 그동안 얄팍하게 요약돼 왔던 임신기간을 생동감 있고 가감 없는 말들로 채웠다. 저자가 마음 밖을 튀어나왔던 모든 순간들을 트위터에 오롯이 박제해뒀기 때문이다. 그 덕에 쉽게 공감하고 쉽게 읽을 수 있다.
“평생을 ‘걸어 다니는 자궁’ 취급당하며 살아왔지만, 내 자궁에서 무언가 생기고 커가는 일이 이정도로 끔찍할 줄은 몰랐다. 임신호르몬의 노예가 되기 이전에 임신 확인을 기다리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정신이 너덜너덜해진다. 이렇게 힘들면 앞으로 9개월은 어떻다는 거지.”(30쪽)
익명의 트위터 계정 ‘임신일기(@pregdiary_ND)’는 그렇게 등장했다. 계정주는 모르고 맞는 매때문에 아픔을 느낄 때마다 뜨겁고 날 것의 속내를 멘션(mention, 트위터에 남긴 글)으로 남겼다. 임산부 역할에 가려진 여성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 개인을 그대로 박제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임신기간 10개월 동안 써내려간 140자 멘션이 1000개를 넘겼다. 그 기록을 모았더니 책으로 엮을 만큼이 됐다.
◇ 배려를 혜택으로 포장하는 한국… “임신과 출산에 무지한 사회 고발하겠다”
“임신중단권에 관한 해답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임신을 시작하거나 지속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이 나에게 있다. 내 몸이니까,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결정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갖은 근거와 사례를 대며 더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설득해야 할 이유가 없다.”(58쪽)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라는 부제처럼 책 속 저자는 항상 화가 나 있다. 낙태죄가 그동안 그래왔듯, 사회와 국가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편이지, 여성의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임신으로 개인을 납작하게 만들어왔던 서사들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
저자는 여성이 임신기간 내내 겪는 ‘내 편 없는 싸움’을 고발한다.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아파서 병원을 가도 “임신하면 다 아프다”는 의사의 핀잔을 듣는다. 당연한 배려를 임산부 혜택으로 포장하지만, 임신과 출산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실비보험을 받을 수 없다.
저자는 출산 직후 “이 모든 여정이 혼자만의 씨름이었다는 외로움에, 임신과 출산에 무지한 사회를 고발하고,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297쪽)고 다짐한다. 임신 경험으로 깨달은 ‘모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달랐기에 이 같은 기록이 나올 수 있었다.
열 받아 만든 이 기록은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 자신의 역사를 한 겹 두텁게 입히는 데 기여했다. 이제 독자가 이 기록에 서사를 덧붙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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