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이 난 아침, 엄마를 떠올렸다
몸살이 난 아침, 엄마를 떠올렸다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9.08.0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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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육아감옥] 여름 아침, 엄마 생각

아이 낳은 후로 팔이 종종 시리다. 한여름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도 유독 팔에만 오소소 닭살이 돋는다. 시린 감각을 따라 뼈의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관절 인형 마냥 어깨에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몸살 기운에 팔이 시려오자 문득 서글퍼졌다. 다시는 이 감각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살이 심해졌는지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을 움직여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으로 밀다시피 보냈다. 조용한 집에 홀로 남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 추운 기운이 가실까 싶어 컵을 꺼내고 물을 데웠다. 부엌을 느릿느릿 가로지르다 이대로 더 움직였다간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아서 식탁 의자 등받이를 잡고 섰다.

아이들은 내 몸을 통과하면서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다. 늘어진 뱃살이라든지 튼살, 틈만 나면 뻐근해지는 허리, 오늘처럼 시린 팔, 제왕절개 수술 자국을 내려다볼 때면 믿기지 않을 만큼 자라버린 아이들이 내 속에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력서를 쓰듯 몸은 자신이 헤쳐나간 시간을 조용히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꼭 엄마를 닮았다.

아이 낳고 얼마 안 돼 사과를 먹었다는 당신. 사과를 깨물 때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모른 채 일그러지던 시린 얼굴이 생각났다. 애 셋을 낳은 후 여전히 임신부처럼 봉긋하게 부풀어 있는 배와 어느새 눈에 띄게 절뚝거리게 된 다리를 떠올렸다. 가라앉는 방법을 잊은 엄마의 부어오른 무릎이 선명하게 내 앞을 가리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는 나를 낳고 얼마나 몸이 망가졌을까.

따뜻한 물에 볶은 무를 우려내면서 엄마에게 별일 없이 돈을 부쳤다. ‘엄마 맛있는 거 사드세요.’ 겨우 돈을 보내며 이게 최선인가 싶었지만 여기서 저기로 숫자들이 움직이고 나니 슬펐던 마음이 다행히도 조금 가셨다. 그제야 나는 떨구었던 고개를 들었다. 또 다른 내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듯했다. 철이 드는 건 자주 슬퍼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입금 문자를 받았는지 엄마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무이고~ 공돈 생겼나~?" 얼마 되지 않은 용돈에 신이 난 엄마의 문자에 천근만근 무거웠던 아침이 슬며시 가벼워졌다. 엄마의 반응이 예상했던 그대로라서 콧물을 훌쩍거리며 그만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공돈 맞으니까 아끼지 말고 쓰세요."

나와 닮아가는 연이. ⓒ신은률
나와 닮아가는 연이. ⓒ신은률

내가 연이보다 한두 살 더 많았을 때 엄마가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 무거운 집안 공기가 어색하고 무서워서 투정을 부리며 집을 나섰다. 철없는 딸이 현관문을 닫고 나간 텅 빈 집, 엄마도 그때 당신이 하릴없이 닮아가는 외할머니를 떠올렸을까. ‘언젠가 연이도 그런 날이 오겠지’ 애틋해하며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기운을 내어본다. 엄마가 그랬듯, 엄마라는 이름으로.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글을 쓰며 '가정의 주인(主婦)'으로 살고 있다. 여덟 살 연이, 여섯 살 윤이를 키운다. 일 년의 절반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게 육아를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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