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따로 예산 따로... 표준보육비용 '있으나 마나'
조사 따로 예산 따로... 표준보육비용 '있으나 마나'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9.09.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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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예산 최저보육②] 정부가 계측하는 표준보육비용, 예산에 반영 안 되는 까닭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2013년부터 시작된 전면 무상보육. 하지만 보육 현장에서는 낮은 보육료와 현실에 맞지 않는 지원구조 때문에 운영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보육예산의 적절성과 구조적 문제를 따져보고, 보육예산의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 기자 말

‘적정한 보육료 수준’은 보육계의 오랜 숙제다 ⓒ베이비뉴스
‘적정한 보육료 수준’은 보육계의 오랜 숙제다 ⓒ베이비뉴스

‘적정한 보육료 수준’은 보육계의 오랜 숙제다. 14년 전인 2005년 2월 한국조세연구원이 여성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 '표준보육·교육단가 및 적정부담수준에 관한 연구'에서조차 “영유아 보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 단가는 (중략) 매년 물가상승률만 조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보육과 관련된 실제 비용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부는 2013년부터 국가가 0~5세 보육비용을 모두 책임지는 ‘무상보육’을 도입했다. 보육이 국가 예산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보장하는 수준의 보육료 산정 절차 또한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됐다.

표준보육비용은 “영유아에게 어린이집에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투입비용”. 보육료와 마찬가지로 ▲원장과 보육교사, 보조교사, 영양사 등의 급여,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포함하는 인건비 ▲급간식비 ▲교재교구비 ▲교직원 보수교육, 차량운영 등에 필요한 관리운영비 ▲어린이집 설치, 증·개축 및 개·보수 비용을 포함한 시설비 등 5개 항목으로 구성한다.

지금까지 표준보육비용은 2005년과 2008년, 2013년, 2018년 네 차례 계측됐다. 정부는 지난 7월 2018년 표준보육비용 계측결과를 발표했다. 계측 결과 0세 반 기준 8시간 표준보육비용은 101만 원으로, 2013년 결과가 83만 원인 것과 비교해 22% 인상됐다. 

이번 계측 결과는 보육통합정보시스템에서 2017년 기준 4만 238개소 어린이집 세입·세출 결산자료와 교직원 임면 자료를 분석해 도출했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표준보육비용 계측 이후 보육 제도의 변화를 반영하고, 어린이집 이용시간과 보육비용을 연계해 8시간 보육료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영유아 1인 기준 올해 보육료와 2018년 표준보육비용 간의 차이.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영유아 1인 기준 올해 보육료와 2018년 표준보육비용 간의 차이.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 복지부 “재정당국과 협의 먼저”… 표준보육비용 계측하고도 보육료에 반영 못해

보건복지부는 2013년에 약 2억 5000만 원을, 2018년에는 1억 8000만 원을 투입해 표준보육비용 계측을 진행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 예산을 투입해 표준보육비용을 계측했지만, 표준보육비용은 보육료 산정에 '참고사항'으로 작용할 뿐이라는 점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 정부와 국회가 예산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표준보육비용 이하로 보육료를 책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같은 문제는 보육현장에서 꾸준히 지적돼왔다. 국회도 적정 보육료에 대한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있다. 보육계 출신인 최도자 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2016년 12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표준보육비용 이상 금액으로 보육료 책정하자’는 내용을 담아 발의된 법안이다. 이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017년에 유사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는 쉽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권덕철 당시 보건복지부 차관과 최도자 의원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권 차관은 “보육료 비용에 관련되어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최 의원은 “적정 보육료를 지원해주기 위해서 (표준보육비용) 산정을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적정 보육료를 산정해 놓고도 2년이고 3년이고 지나도 적정 보육료 지원을 못 해서 (일선 어린이집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이런 법을 발의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 의원의 반박에 권 차관은 “예산에 관련된 부분은 재정당국과의 협의가 선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회는 지난해 12월 27일 열린 본회의를 통해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표준보육비용을 3년마다 조사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앙보육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표준보육비용을 결정하며, 표준보육비용 조사에 필요한 사항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발표된 표준보육비용도 지난해 기준으로 계측한 결과다. 따라서 해당 연도 물가 상승률과 인건비 인상률을 반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공감대 형성돼” 법안 통과 낙관하는 국회 vs. ‘예산 부담’ 맞서는 정부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중장기보육 기본계획 2019년도 시행계획 중 '표준보육비용 산정 및 적정 보육료 지원' 추진일정. ⓒ보건복지부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중장기보육 기본계획 2019년도 시행계획 중 '표준보육비용 산정 및 적정 보육료 지원' 추진일정. ⓒ보건복지부

정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복지부는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중장기보육 기본계획 2019년도 시행계획'에서 올해 과제 중 하나로 “표준보육비용 산정 및 적정 보육료 지원”을 꼽고, 추진계획으로 “2020년 예산에 표준보육비용 산정 결과 반영 추진”과 “표준보육비용 제도화를 위한 하위법령 개정안 마련 및 시행” 계획을 밝혔다.

‘보육비를 표준보육비용에 연동하자’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올해만 해도 네 건이 발의됐다.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대표발의자로 나섰다. 이 중 임이자 의원과 김동철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다.

김세연 의원의 안은 “표준보육비용의 공표를 의무화하고, 보육료를 표준보육비용보다 낮게 정할 수 없도록 한다”는 안을 골자로 한다. 임이자 의원의 안은 김 의원 안에서 한 발 더 나가, 보육료를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정하는 것과 동시에 “물가상승률이나 최저임금 상승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반영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들 법안은 지난달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를 거쳐, 상임위 내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병합심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적정 보육료를 보장하기 위해 20대 국회는 개정안을 발의해 표준보육비용을 보육료에 반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매번 무산되고 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표준보육비용을 보육료에 반영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 왼쪽부터 남인순·최도자·인재근·김세연 의원. ⓒ베이비뉴스

내년 4월이면 21대 총선이 열린다. 20대 국회 안에 이들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세연 의원실의 관계자는 베이비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같은 내용의 법안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생각해서 통과 가능성은 높다”고 내다봤다.

인재근 의원실 관계자는 “같은 법안이 4건 나와 있는 상황이라 복지위 소속 다른 의원실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노위 소속 임이자 의원실과 김동철 의원실 모두 보육료 문제를 보육교직원의 인건비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설명하면서, 소속위 안건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김동철 의원실 관계자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은 하지만, 정부 측이 어떻게 해법을 가지고 있는지는 법안소위 때 논의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임이자 의원실 관계자는 베이비뉴스와 통화에서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올라간 상황에서 해당 소위 소속 의원에게 법안 통과를 지속적으로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가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달 12일 복지위 회의 때 남인순 의원이 제출한 ‘누리과정 예산 안정적 확보와 단가 인상 필요성’을 묻는 질의서에 보건복지부는 “보육료, 처우개선비 등 인상을 위해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냈을 뿐이다.

복지위 소속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의 이같은 태도의 배경에 재정당국의 반대가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영유아보육법 논의 중에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가 ‘적정운영비용’과 관련한 의견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부처에서 운영하는 기관도 적정 운영 단가가 있는데 보육료를 올리게 되면 다른 곳도 올려야 하고, 이러면 정부 예산이 감당이 안 된다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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