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방도시 중학생 엄마가 보는 ‘조국 사태’
어느 지방도시 중학생 엄마가 보는 ‘조국 사태’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9.09.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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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을 뛰어넘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진은 2017년 5월 청와대 정무수석 임명 당시. ⓒ청와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진은 2017년 5월 청와대 정무수석 임명 당시. ⓒ청와대

사족이지만 이 글은 한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둘러싸고 정상적인 ‘검증’이 아닌 의도적 ‘정쟁’으로 몰고 가는 ‘그 어떤 세력’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먼저 밝혀둔다.

나는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다. 엊그제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엄마, ○○(우리가 사는 도시)이 전국에서 제일 공부를 못한대.”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얼마 전 아이 진학문제로, 서울에서 입시컨설팅을 하며 먹고사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질까봐, 아이가 좌절할까봐, 그리고 더 밑바닥의 마음은, 아이가 서울에서 나고 자라지 못한 근원인 부모를 원망할까봐 걱정이 됐다.

그에게 아이가 중간고사에서 받은 성적을 보여줬더니, 이 성적으로는 수능으로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가긴 어려울 거라고 했다. 이미 서울 안에 있는 학교들이 원하는 수능점수는 서울 안의 아이들로 채워져 있다고 했다.

중3이면 이미 고등학교 선행학습을 끝내고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반복학습을 3년 동안 하는 아이들이 서울에 산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지금 반에서 상위권에 속하는데도 그 친구가 말해준 현실은 그랬다.

아이가 자기 학교에서 한두 명은 서울로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그게 부럽지는 않다고 했지만, 아이는 이미 이 사회에서 자기가 처한 계급적 지위와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할 거지만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아이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공장에 다니는 나와 남편의 수입으로 고액 학원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학습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공단으로 이루어진 도시, 그것도 대공장 하나 없는, 최저임금 수준의 현실에 놓인 노동자들이 대부분 살아가는 도시에서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부모의 소득, 학력 수준이 대물림된 것을 처연히 보여주는 지표.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었다. 우리는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웃었다. 그것밖에 지금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있지 않았다.

◇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SKY' 학생들의 박탈감이 아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계급문제까지 불러일으켰다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엔 한참 멀었다. 지금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싸움은 그 교육 시스템에 진입해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진입할 수 있는 계급계층적 가능성이 있거나, 적어도 그 교육 시스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아는 사람들 간의 논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적 영역이 교육의 영역으로 성급하게 넘어오면서, 해결책 역시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수시전형은 다 비리니 정시를 100%로 하라'는 말들이 적지 않게 올라오는데, 과연 지금의 문제가 대학 입시제도를 바꾸어서 해결될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 공교육이 강화되고, 지방 아이들도 공교육만으로 원하는 학교 또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까? 오히려 노동자의 아이들, 부모의 수입이 뻔한 아이들, 그래도 학교 수업 열심히 받으면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 열심히 하며 차곡차곡 꿈을 쌓아가는 아이들은 도전할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 똑같지 않을까 나는 두렵다.

어릴적부터 고액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 또는 어릴적부터 부모를 따라 외국을 들락날락하며 차원이 다른 질의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과 경쟁의 기회가 원초적으로 봉쇄당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학력고사 부활을 주장하거나 수능이 공정하지 않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입시의 문 앞에서 있는 중고등학교 아이들, 특히 지방에 사는 보통의 아이들의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 같다.

그들 또한 어느 정도의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서 있는 사람들 같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자식 교육 성공의 3대 선결조건이라는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른 체급 간의 싸움이 될 것이 뻔한 대학입시가 과연 어떻게 시험을 통해 공정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 불평등 문제에 진심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의 박탈감이 아니다. 내 아이가 'SKY'에 갈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할까 분노하는 민심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한 달에 삼사십만 원 하는 학원비도 내지 못해 눈치보며 공부하는 노동자의 아이들이 학교 교육만으로 어떻게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지,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이 어떻게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로 다시 회귀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어떻게 개천을 잘 개선해서 맑은 개울로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둘째 아이의 꿈은 교육부 장관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학원을 다 없애고 싶어서란다.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멀었다. 그리고 처해진 위치는 조금씩 다르나 여전히 어른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봐야 한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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