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미안하다, 못 낳겠다
[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미안하다, 못 낳겠다
  • 칼럼니스트 여상미
  • 승인 2019.09.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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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저출산 #출산장려정책 #정부지원 #아동수당 #양육수당 #100조원 #워킹맘 #경단녀

최근에 본격적으로 일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었다. 다만 전처럼 시간이나 장소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고 일하던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로 출근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린이집도 종일반으로 등록돼있으니 무리 없을 것 같았는데 기관에서 아이를 최대한 돌봐줄 수 있는 시간은 저녁 7시까지였다.

시간 맞춤형 어린이집에 다니면 밤 9시까지 아이를 돌봐준다고 하는데 일반 어린이집은 늦어도 6~7시가 되면 하원 하는 분위기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서울 중심가에 몰려 있고, 우리가 사는 곳은 경기도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근무 시간인 아침 9시~저녁 6시 개념을 적용해 봤을 때 저녁 7시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기란 너무 빠듯했다.

더구나, 출퇴근길 교통 상황이란 말 하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한 일. 또 오전 9시 이전에 아이를 맡기기도 어려웠다. 일하는 엄마는 모두 파트타임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모두 좋은 직장에 다녀 출퇴근 시간을 배려받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경단녀'의 삶을 선택했다.

일할 수 있었던 엄마는 다시 '경단녀'의 삶을 선택했단다. ⓒ여상미
일할 수 있었던 엄마는 다시 '경단녀'의 삶을 선택했단다. ⓒ여상미

아이가 내년이면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유치원 종일반은 하원 시간이 더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들은 하원 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공부방이나 학원 같은 사설 기관에 아이를 보낸다고.

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점심 (간식이라도 챙겨 먹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후 저녁까지 뭘 먹지도 못한 채 아이들은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옮겨다니며 부모를 기다린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부모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버텨가며 번 돈은 고스란히 아이를 돌보는 비용으로 들어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삶을 택한 엄마들도 수없이 봤다. 아빠 육아 휴직은 TV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특정 직업이나 직장이 아니면 꿈같은 이야기다.

최근 기사를 보니 그동안 정부가 출산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쏟아부은 예산이 10년에 100조라는데, 어떤 기준으로 나온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헛웃음만 나온다.

10년에 100조라면 1년에 10조 원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작년 기준 약 33만 명 출생했다고 하니 어림잡아 나누어 보아도 아이 한 명당 3천만 원 가까운 예산이 쓰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많은 돈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어린이집을 보내는 대신 양육 수당이 줄어들고, 나라에서 어린이집으로 바로 보내는 보육료는 실체가 없으니 숫자에 불과하다. 어린이집에서는 보육료 외의 행사비, 기타 경비 등의 품목을 매월 현금으로 수령한다. 결국 아동 수당마저 그대로 어린이집에 보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영유아 보육 기관의 문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라가 기관에 보내는 보육료를 그냥 가정에 지급한다면? 그래서 부모가 그 돈으로 양육 방식 혹은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지난 10년 동안 100조 원을 쓴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낮아져 버린 출산율. 이는 결국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에 그쳤다고 한다. OECD 가입국 중 최하위라고.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 한 명도 낳지 않는 나라. 이제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부의 다양한 노력들이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닌지.

사회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서, 가임기 여성의 결혼이 늦어져서, 신혼부부의 집 마련이 어려워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문제 접근 방식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출산의 문제가 단지 '출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일할 수 있던 내가 경단녀가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나라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컸는데도 "동생 생길 때가 됐구나", "둘째 가지는 것은 어때?"라고 묻거나 권하는 사람이 없다. 나도 딱히 둘째 생각은 없지만 어떨 때는 씁쓸하고, 혼자인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이를 키워 온 지난날. 또 부딪혀야 할 많은 날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렇게 미안한 마음만 들게 하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한 명 더 만들지는 말자'라고 말이다. 

참, 가슴 아픈 다짐을 하고 살아간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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