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서 엄마라서… 두 여자의 ‘눈맞춤’
장애인이라서 엄마라서… 두 여자의 ‘눈맞춤’
  • 권현경·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9.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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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엄마 시즌3 ④] 세 살 아이 키우는 ‘뇌졸중’ 엄마 매지오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최규화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3을 연재한다. 미국의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LG)를 찾아, 미국 장애부모들의 양육 현실과 지원 서비스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 기자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시에 있는 조하 라드 매지오(Zoha Raad Mazzeo·37세) 씨의 집을 방문했다. 세 살 아들 대니얼은 취재진이 선물한 토끼 모자를 엄마 매지오 씨에게 씌우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미국 버클리 시에 있는 조하 라드 매지오 씨의 집을 방문했다. 세 살 아들 대니얼이 취재진이 선물한 토끼 모자를 엄마에게 씌우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제 배 한번 만져볼래요? (네?) 출산 예정일이 8월 말이에요. 움직이는 게 느껴지죠?”

미국까지 가서 미국인 임산부의 배를 직접 만져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반갑기도 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시에 있는 조하 라드 매지오(Zoha Raad Mazzeo·37세) 씨의 집을 방문했다. 세 살 아이를 키우는 장애여성인 매지오 씨는 버클리의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인 ‘스루더루킹글래스’(Through The Looking Glass, TLG)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매지오 씨는 이란계 미국인. 미국 유학 중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열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란 테헤란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스물셋이던 2005년 뇌졸중(stroke)이 발병한 뒤 2010년 미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미국 취재 일정 중 첫 가정 방문 인터뷰. 긴장이 됐다. 특히 이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감은 더했다. 인터뷰에 동행하기로 한 TLG 활동가 주디 로저스(Judi Rogers) 씨와 샤론 버그만(Sharon Bergmann) 씨가 차례로 도착했다.

가파른 계단을 스무 개쯤 올라 들어간 매지오 씨의 집 안은 페르시아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집 안쪽에는 기도실까지 마련돼 있었다. 이곳 버클리는 미국에서도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지역. TLG에서 방문 지원 일을 맡고 있는 활동가 버그만(Sharon Bergmann) 씨의 말이 생각났다.

“새 가족과 연결될 때마다 어떤 장애가 있는지, 문화적 배경은 어떤지, 구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등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각기 다른 이해의 조각들을 통해 계획을 더 발전시킬 수 있어요.”

가정방문 때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경험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던 버그만 씨의 말이 이해됐다. 긴장감 속에 집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매지오 씨가 주방에서 체리를 꺼내오며 권했다. 취재진을 경계하던 세 살 대니얼(Daniel)도 취재진이 선물한 토끼 모자를 만져보고 써보면서 금세 친근감을 보였다. 

◇ 같은 장애를 가진 활동가가 가정 방문해 ‘맞춤형’ 지원

매지오 씨는 나이 스물셋이던 2005년 노졸중이 발병해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으로 왔다. 휠체어를 타진 않지만 걷는 게 불편하고 몸의 균형을 잡는 게 어렵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매지오 씨는 나이 스물셋이던 2005년 뇌졸중이 발병해 이란에서 미국으로 왔다. 휠체어를 타진 않지만 걷는 게 불편하고 몸의 균형을 잡는 게 어렵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매지오 씨는 2015년 대니얼을 임신했다. 장애 때문에 걸을 때 균형을 잡기 힘든 그는, 임신한 채로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가 특히 어려웠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지금도 그 점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출산에 대한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대니얼도 9개월 1주일 만에 문제없이 태어났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 출산하는 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진 않았을까. 장애여성이 가족이나 의료진으로부터 임신중절을 권유받는 경우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매지오 씨는 “불편했던 경험은 전혀 없었어요. 여긴 버클리입니다. 버클리는 매우 자유롭고 진보적인 곳이죠”라고 말했다. 1970년대 시작된 장애인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IL) 운동의 고향인 버클리는 장애인들에게 ‘성지’로 여겨진다. 그만큼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적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런데 대니얼을 낳고 나서는 정말 어려웠어요. 미쳐버리는 줄 알았죠.(웃음) 특히 아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갈 수 없어서 결국에는 보모를 고용했고, 지금은 친정엄마가 이란에서 미국으로 와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TLG 활동가 로저스 씨가 “그럼 너는 언제 아이를 돌봐?”라고 장난스레 끼어들었다. TLG가 장애부모에게 지원하는 주요 서비스는 장애유형별 특수장비 지원과 가족 및 아동발달 상담. 로저스 씨는 “한 손으로 기저귀 가는 방법도 알려주고 많이 지원해줬잖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올해 73세인 로저스 씨는 TLG에서 29년째 일하고 있다. 그리고 매지오 씨와 같이 뇌졸중으로 장애를 얻었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같은 장애를 겪은 ‘선배’ 여성이자 엄마로서 로저스 씨는 매지오 씨의 어려움을 잘 이해했다. 인터뷰 도중 두 사람이 웃으며 투닥거리는 모습이 꼭 친정엄마와 딸 같은 느낌도 들었다.

로저스 씨와 같이 전문지식과 장애부모라는 경험,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TLG의 장애부모 당사자 활동가들은 TLG의 활동에 큰 차별성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본인 또는 가족이 직접 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라는 ‘동료모델’(peer model)은 TLG의 역할과 가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다.

◇ 일주일에 한 번 가족상담과 아동 행동발달 치료

대니얼은 처음에는 취재진을 경계했으나 금새 촬영 카메라를 만져보고 자신의 얼굴이 담긴 카메라를 보며 즐거워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대니얼은 처음에는 취재진을 경계했으나 금세 카메라를 만져보고 자신의 얼굴이 담긴 카메라를 보며 즐거워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매지오 씨는 대니얼이 걷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혔다.

“아이가 길에서 뛰어가 버리면 따라갈 수가 없어서 정말 곤란해요. 그런데 대니얼은 주로 남편이 있을 때만 뛰어다닙니다. 남편이 뛸 수 있다는 것과 저는 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대니얼은 제 말을 잘 듣는 편이에요. 장을 보러 가면 바구니를 들어주기도 하고요.”

TLG는 매지오 씨가 대니얼을 양육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가족상담과 대니얼을 위한 행동발달 치료는 물론, 매지오 씨가 이용하기 쉬운 아기침대와 같은 장비들을 제공해주고 이용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줬다. 가장 유용하게 쓴 장비는 모유수유 베개. 엄마의 몸에 고정할 수 있는 벨트가 달려 있어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며 모유를 먹을 수 있다.

대니얼을 낳기 전, 매지오 씨는 TLG에서 제작한 동영상을 통해 한 손으로 기저귀를 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본인의 장애에 맞춰 최적화된 유모차와 카시트를 살 수 있도록 TLG의 장비 전문 활동가가 동행해 물품 구매를 도와줬다.

지금도 TLG 활동가가 매주 집으로 방문해 대니얼의 행동발달도 체크하고 아이와 놀이를 하기도 한다. 매지오 씨가 처음 경험해보는 육아방법을 잘 알려주고 가족상담 치료도 꾸준히 챙기고 있다.

흥미롭게도, 매지오 씨에게 TLG를 소개해준 사람은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보험회사 사무실이 TLG와 같은 건물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그들의 인연은 가볍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농담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본 끝에 우리는 결국 해냈다(We did!)”며 어느 순간 동시에 눈을 맞췄다.

◇ 대학 다니며 꿈 키우는 ‘장애엄마’… “입사 지원할게요”

내년 봄학기부터 UC 버클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분교,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전공은 마침 언론학. 매지오 씨는 “나중에 베이비뉴스에 입사 지원해도 되겠냐”며 웃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매지오 씨는 내년 봄학기부터 UC 버클리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전공은 언론학.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취재 당시 매지오 씨는 8월 말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둘째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데는 TLG의 존재가 고려됐을까. 매지오 씨는 “이미 나는 TLG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둘째 아이 역시 TLG와 함께할 겁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둘째 아이 역시 TLG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이미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둘째가 태어나면 대니얼이 쓰고 반납했던 영유아 침대를 다시 받고 모유수유 베개 등 필요한 장비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장애인 가족에게도 그렇듯이, TLG로부터 받는 서비스는 모두 무료다.

매지오 씨와 TLG는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지원과 참여를 주고받는 ‘양향뱡’ 관계다. TLG를 이용하는 장애인 가족들은 장애유형과 관심사에 따라 자조모임을 갖기도 하고, 자치 위원회를 만들어 TLG의 운영과 프로그램 논의에 참여하기도 한다.

현재 매지오 씨는 TLG 내 자문위원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다른 장애인 가족들, 그리고 TLG 활동가들과 함께 주기적인 모임을 열고 있다. 이들은 TLG 운영의 이모저모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실제로 운영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위해 의견을 나눈다. 

“버클리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행운인 것 같아요. 여기 사람들은 정말 친절합니다. 장애가 있어도 육아는 가능해요.”

인터뷰가 끝나자 매지오 씨는 기자에게 임신 8개월의 배를 보여주고 만져보게도 했다. 대니얼도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담기는 것을 즐거워했다. 취재팀이 선물한 토끼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헤어질 땐 집 밖까지 따라 나와 서운함을 드러냈다. 인터뷰 전 느낀 긴장감은 이미 사라졌다.

매지오 씨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봄학기부터 UC 버클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분교,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전공은 마침 언론학. 매지오 씨는 “나중에 베이비뉴스에 입사 지원해도 되겠냐”며 웃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 대학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운다는 것. 어떤 이들에게는 이 ‘평범한’ 일상이 큰 도전이 되기도 한다. 장애여성으로, 엄마로, 학생으로, 평범함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를 응원한다.

(맨 오른쪽부터)로저스 씨, 매지오 씨, 버그만 씨와 매지오 씨 집에서 함께 찍은 단체사진.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인터뷰 뒤 취재진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맨 오른쪽부터)로저스 씨, 매지오 씨, 버그만 씨, 대니얼.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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