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엄마들의 급식비 인상 ‘투쟁’이 주는 교훈
정치하는엄마들의 급식비 인상 ‘투쟁’이 주는 교훈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9.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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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최저노동과 최저보육을 전제로 한 최저예산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6일 제2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도중 '어린이집 급간식비 기준 인상'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진행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6일 제2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도중 '어린이집 급간식비 기준 인상'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진행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예산을 보면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 숫자는 그 어떤 수사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란 결국 ‘돈과 사람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가’ 하는 것으로 단순화될 수 있다.

지난달 28일 2018년 출산통계(확정)가 발표됐다. 합계출산율 0.98. 역시나 ‘저출생 대책에 10년 동안 100조 원을 쓰고도 출산율은 세계 꼴찌’ 하는 식의 기사들이 여럿 쏟아져 나왔다. ‘10년에 100조’라는 표현은 저출생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유행어처럼 등장하고 있다.

100조 원의 구체적인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저출생 예산이다’ 하는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현령비현령. 그런데, ‘10년에 100조’가 정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게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인가.

10년에 100조 원이라면 1년에 10조 원 꼴. 지난달 29일 공개된 2020년 정부예산안은 1년에 513조 원이다. 국방예산은 1년에 50조 원이다. 동네 미용실 사장님도, 택시 기사님도 저출생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나라에서, 그게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인가.

2019년 아동 1인당 한 달치 정부/지자체 보육료와 2019년 표준보육비용을 연령별로 비교해봤다. 표준보육비용 대비 보육료 부족액은 0세 -7만 8000원, 1세 -5만 원, 2세 -7만 원, 3세 -14만 1000원, 4~5세 -12만 원이다. 어린이집 운영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정부가 조사한 표준보육비용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

3~5세 누리과정 보육료는 올해까지 7년째 동결됐다. 같은 기간 0~2세 보육료 평균 인상률은 3.5%. 2013년, 2014년, 2017년에는 동결됐다. 같은 기간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9.0%를 기록했다.

2018년 보육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보육교사 평균 급여는 213만 원. 기본급이 168만 9000원, 수당이 44만 1000원이다. 1일 평균 근로시간이 9시간 17분이고, 평균 연령은 40.9세인 보육교사들이 그렇다. 2019년 최저임금은 월 174만 5150원이다.

‘아이 한 명당 얼마’ 하는 식으로 보육료가 지원되기 때문에, 법이 정한 교사 대 아동 비율 안에서 최대한 반별 정원을 꽉꽉 채워넣어야 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정원을 채우지 못한 반은 운영을 못해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다. 교사 한 명이 돌봐야 하는 아동의 수가 많아질수록 보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표준보육비용에 못 미치는 ‘최저예산’은, 최저임금으로 대표되는 ‘최저노동’과 과대한 교사 대 아동 비율로 대표되는 ‘최저보육’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보육교사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춰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보육예산을 현실화해야 한다. 교사와 부모 모두 이해당사자다.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주관한 '2020년 보육예산이 말하는 국가 책임보육의 현실 대토론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 오른쪽 세 번째부터 조훈현, 원유철, 김순례 의원.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주관한 '2020년 보육예산이 말하는 국가 책임보육의 현실 대토론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 오른쪽 세 번째부터 조훈현, 원유철, 김순례 의원. 그동안 정치권에 호소하는 방식의 활동만 반복해온 것이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표준보육비용 기준으로 보육료 책정’ 망설이는 이유는 뭔가

20대 국회에는 이미 ‘보육료를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정하자’는 내용의 법안도 여러 차례 제출됐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곤란하다”뿐. 2018년 12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의원들의 잇단 질의에,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아래와 같이 거듭 ‘방어’했다.

“보육료를 여기에서 그(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는 것은, (…) 신중하게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심정은 저희들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복지부가 책임 있는 정책당국자로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데 그 이상으로 한다고 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결국은 채택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신 거지요?) 예, 보육료 비용에 관련되어 그(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은 저희가 곤란하고요.”

“그 부분(보육료를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정하자는 법안)은 저희가 현재로서는 받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결국 돈이 없다는 소리다. 정확히는 “그런 데 먼저 쓸” 돈이 없는 거다. 정말 정부가 돈이 없나. 아니다. 다른 데 먼저 쓰니까 보육에 쓸 돈이 없는 거다. 결국 정부의 의지 문제, 정부가 우선하는 ‘가치’ 문제다.

표준보육비용을 조사하는 것도 정부, 보육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정부다. 최소한 정부가 조사한 기준에 맞춰서 예산을 정하는 것 때문에 정부가 “곤란”해질 이유는 뭘까. 마치 최저임금은 정부가 정하지만 기업에서 임금을 줄 때는 최저임금을 안 지켜도 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보육료를 정하자는 법안은 올해도 김세연, 임이자, 김동철, 인재근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논의는 7월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에서 딱 한 번 ‘언급’됐을 뿐이다.

20대 국회는 약 7개월 남았다. 올해 상반기 갈등에만 골몰한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던 시간이 길었다.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회가 싸움만 한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은 정치인의 본업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어떤 가치를 위해 싸우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본회의 통과까지 책임져야 한다. 어린이집 운영자 단체의 민원 때문에 생색내기 용으로 마지못해 발의한 것이 아니라면, 끝까지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진행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9일 현재 약 1만 3000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갈무리
정치하는엄마들이 진행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9일 현재 약 1만 3000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갈무리

◇ 교사와 부모 역시 이해당사자… 보육현장 ‘신뢰’ 구축 급선무

보육 현장에서는 그동안 보육예산의 현실화과 구조 개선을 위해 해온 활동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동안 어린이집 운영자 위주의 보육예산 관련 활동은 정치권을 압박하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수년째 ‘동결’ 또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현저히 못 미치는 ‘찔끔 인상’.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것은 ‘표’밖에 없다. 실리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보육의 또 다른 주체들인 교사나 부모들과 함께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최저예산’은 ‘최저노동’과 ‘최저보육’을 전제로 한다. 보육예산이 현실화되는 것은 교사와 부모들에게도 모두 유익한 일이다.

“보육료가 인상된다고 해서 호봉을 반영하지 않는 보육교사 인건비가 오르진 않을 것이다. 보육료가 인상되면 결국 원장들의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육현장의 민심은 너무 다르다. 보육료 인상에 대한 한 보육교사 단체 대표자의 의견.(‘문 열수록 손해’… 어린이집 보육료 답 없나 9월 6일 베이비뉴스 권현경·김재희 기자) 어린이집 운영자 집단을 향한 이렇게 ‘강력한’ 불신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3월 베이비뉴스는 1745원에 묶여 있는 영아 급간식비에 대해 연속보도를 했다. 이후에 그 이슈를 가장 열심히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다.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별 급간식비 지원금 현황을 전수조사 했다. 전국 300여 개 공공기관 직장어린이집 급간식비도 전수조사 했다.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해 여러 보도를 이끌어내고, 지금은 청와대 국민청원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앞에서 기습시위까지 했다. 하지만 정치하는엄마들을 설득한 것은 보육인 단체들이 아니었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이 중요하다.

보육예산을 올리면 보육노동의 질이 올라가고 아동보육의 질도 올라간다는 확신이 있어야 교사나 부모들이 함께할 수 있다. 보육현장에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효과적이면서도 올바른,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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