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장애인이면 불행한가요? 당신이 틀렸습니다
엄마가 장애인이면 불행한가요? 당신이 틀렸습니다
  • 권현경·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9.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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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엄마 시즌3 ⑥] 척추장애 사바티노-레나츠 씨 부부 이야기

【베이비뉴스 권현경·최규화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3을 연재한다. 미국의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LG)를 찾아, 미국 장애부모들의 양육 현실과 지원 서비스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 기자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Oakland)시에 사는 재닛 사바티노(Janet Sabatino·45세) 씨와 토머스 레나츠(Thomas Lehnartz·53세) 씨 부부. 이들은 생후 4개월 된 아들 오언(Owen)을 키우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미국 오클랜드에 사는 재닛 사바티노(왼쪽) 씨와 토머스 레나츠 씨 부부. 이들은 생후 4개월 된 아들 오언을 키우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를 갖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우연 또는 목적에 의해서. 그중 목적에 의해 아이를 갖게 된 경우는 매우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아이를 갖길 원한다는 것. 한 명의 좋은 사람을 창조하고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가정을 이루는 근본적인 목적이죠.”(레나츠 씨)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Oakland) 시에 사는 재닛 사바티노(Janet Sabatino·45세) 씨와 토머스 레나츠(Thomas Lehnartz·53세) 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월 24일(현지 시간) 이들의 집을 방문했다. 미국 취재 일정 중 장애인 가족 인터뷰로는 세 번째. 이들은 생후 4개월 된 아들 오언(Owen)을 키우고 있다.

엄마 사바티노 씨는 5년 전 요추 1번에 부상을 입고 장애인이 됐다. 봉을 잡고 올라가는 운동을 하다가 떨어져 계단 모서리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전 레나츠 씨는 소개를 받아 딱 한 번 만난 사이였다. 다시 만나기로 한 첫 데이트를 앞두고 사바티노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가 두 사람의 인연을 막지는 못했다. 2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이제 결혼한 지 만 3년이 됐다. 사바티노 씨는 20년 경력의 간호사다. 40년 동안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인이 된 터라 더 좌절이 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장애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맞섰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임신이 됐어요. 제가 강한 편이라 주변 사람들은 임신한 저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강하다’는 말은 저에게 ‘장애를 가지고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은 저를 ‘장애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엄마’라고 보겠지만요.”(사바티노 씨)

초보 엄마아빠인 사바티노 씨와 레나츠 씨 부부는 이웃 도시인 버클리 시에 있는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인 ‘스루더루킹글래스’(Through The Looking Glass, TLG)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 TLG의 활동가 샤론 버그만(Sharon Bergmann) 씨가 동행했다. 버그만 씨는 장애인 가정을 직접 방문해, 장애유형 등에 따라 최적화된 양육 장비나 가족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 장애인 육아 돕는 맞춤형 장비 지원… “TLG의 직접 방문 큰 도움”

사바티노 씨는 능숙하게 오언이 누워 있는 유아침대의 여닫이문을 열고 자다 깬 오언을 돌봤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사바티노 씨는 오언이 누워 있는 유아침대의 여닫이문을 열고 능숙하게 오언을 돌봤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를 안고 이동시킬 때 가장 힘들어요. 아직 아이가 목을 가누지를 못해서 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해요. 무엇보다 오언이 10파운드(4.5kg)로 굉장히 크게 태어나서 힘든 편이예요(웃음).”(사바티노 씨)

TLG 활동가 버그만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들 가정을 방문한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봐주고 장비 사용에 대해 교육해준다. 이외에도 부부가 오언을 키우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직접 방문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준다.

“슬라이딩 여닫이문이 있는 유아침대가 가장 도움이 됩니다. 제가 일어설 수 없기 때문에 이 침대 없이는 아이를 침대에 눕히거나 돌볼 수 없어요. 안방 침대 옆에 붙어 있는 간이침대도 유용한데요, 매일 밤 아이를 여기 재워요. 밤에 깨서 울면 바로 확인하고 모유를 먹일 수도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죠.”(사바티노 씨)

두 사람은 TLG와 버그만 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사바티노 씨는 “버그만 씨가 없었으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같은 장애라도 사람에 따라 현상이 달라요. 손상된 척추 번호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저는 바닥을 볼 수가 없어요. 오언을 실제로 돌보기 전에 아기 인형으로 연습하는 것도 버그만 씨가 도와줬어요.”(사바티노 씨)

“장비 하나하나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단지 필요한 장비를 요청하고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버그만 씨가 직접 와서 봐줄 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레나츠 씨)

그때 오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낮잠을 자다가 깬 것. 아빠 레나츠 씨가 먼저 오언에게 달려갔다. 사바티노 씨가 취재진에게 같이 아이를 보러 가자며, 앞서 말한 장비들을 직접 보여주겠다고 제안했다.

오언의 방. 사바티노 씨는 능숙하게 오언이 누워 있는 유아침대의 여닫이문을 열고 오언을 들어 품에 안았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기자 바로 울음을 그쳤다. 사바티노 씨는 아이 방에 있는 기저귀 갈이대, 아이를 안정적으로 눕힐 수 있는 특별한 의자 등을 활용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사바티노 씨는 아이 방에 있는 기저귀 갈이대 이용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사바티노 씨는 아이 방에 있는 기저귀갈이대를 이용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 “의료진도 장애여성의 몸 잘 몰라… 내가 병원 최초의 장애여성 산모”

미국도 한국처럼 장애여성이 출산할 때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편이다. 앞서 만난 TLG 활동가이자 뇌성마비 장애인인 주디 로저스(Judi Rogers) 씨는 두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지만, 이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의사들은 대부분 산모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왕절개를 추천합니다. (미국 의사들은) 장애여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제 남편도 의사였고, 제 딸도 현재 의사인데, 지난 40여 년 동안 의료교육기관에서 장애여성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요.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무지함이 여전하죠.”(로저스 씨)

20년 경력의 수간호사 출신인 사바티노 씨 역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오언을 낳았다. 그도 출산할 때 겪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의료진이 장애가 있는 산모에 친숙하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간호사들은 제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잘 몰랐어요. 분명 제가 그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최초의 장애여성 산모였을 겁니다. 저도 지난 20년 동안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사바티노 씨)

다행히 사바티노 씨는 오랜 시간 간호사로 일한 경험 덕분에 의료진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사바티노 씨는 사고 직후부터 일을 쉬고 있다. 사고 1년 반 뒤 직장으로 돌아가려고 몇 번 출근해본 적도 있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쉽게 피곤해진 탓에 그만두고 말았다.

사바티노 씨는 통증 완화를 위해 많은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약물 복용을 멈췄고, 모유수유를 하는 지금까지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정부 차원의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없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2002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주별로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6주간의 유급 육아휴직을 준다. 레나츠 씨 역시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인터뷰 중 또다시 오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레나츠 씨가 달려가자 곧 울음소리가 멈췄다. 그 사이 사바티노 씨는 “남편이 육아를 정말 잘하고, 양육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빠 레나츠 씨는 사바티노 씨가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언을 돌보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아빠 레나츠 씨는 사바티노 씨가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언을 돌봤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 “모든 부모는 저마다 최선의 방법 있어… 장애 있다고 특별할 것 없다”

‘바퀴 달린 엄마’ 기획을 3년째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사회나 미국사회나 장애여성의 출산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잘 키우지도 못할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느냐’, ‘장애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무슨 죄가 있느냐’ 하는 시각이 바로 그것.

“모든 부모는 다 다릅니다. 그들은 저마다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요. 많은 부모들은 ‘얼마나 아이에게 관대하게 대할 수 있을까’, ‘얼마나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고 걱정할 겁니다.

장애가 있는 우리가 걱정했던 것은 ‘어떻게 아이를 차에 태울 수 있을까’였어요. 그냥 다른 거죠. 모든 부모들이 서로 각기 다른 부분에서 걱정을 하는 거지, 장애가 있다고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레나츠 씨)

이들 부부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사바티노 씨는 “아이 스스로 기저귀를 갈게 되면 그때가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웃으면서 말하다 말고, 이내 미소를 거둔 채 대답했다.

“오언이 태어나자마자 호흡에 문제가 있었어요. 아무 소리도 안 나고 울지도 않을 때 너무 무서웠어요. 다시 호흡을 찾기까지 40초 정도 걸렸어요. 남편이 확인하고 괜찮다고 하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 안도감을 느꼈어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사바티노 씨) 

이들은 한국에 있는 같은 처지의 장애부모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아이를 키우는 건 물론 힘들지만,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우리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저는 장애가 있어서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자립심 강한 아이로 자라겠죠. 장애가 오히려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사바티노 씨) 

“세상 사람들은 부모에게 장애가 있으면 그 아이가 불행해질 거라고 쉽게 생각해요. 아니에요. 당신이 아이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아이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겁니다.”(레나츠 씨)

인터뷰가 끝나자 사바티노 씨는 욕실과 침실 등 집 안 곳곳을 더 보여주면서,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아이를 목욕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의자에 앉히고, 잠을 재우는지 시범을 보였다. 침실까지 흔쾌히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 사바티노 씨는 최근 휠체어를 탄 채 오언을 안고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다며 그 모습도 직접 보여줬다. 부부와 아이는 따뜻한 햇볕을 맞으면서 산책을 즐겼다. 특별한 가족의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오후였다.

사바티노 씨는 최근 휠체어를 탄 채 오언을 안고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다며 그 모습도 직접 보여줬다. 부부와 아이는 따뜻한 햇볕을 맞으면서 산책을 즐겼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사바티노 씨는 최근 휠체어를 탄 채 오언을 안고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다며 그 모습도 직접 보여줬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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