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아이에게 뽀뽀하는 아빠, 당신은 위대하다
아무 때나 아이에게 뽀뽀하는 아빠, 당신은 위대하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10.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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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딸바보' 아빠의 금연 성공기

내가 7살 때 부모님이 집에 남는 방 하나를 사글세로 내놓았다. 우리 집은 곧 성실한 총각 아저씨와 한 지붕 아래 동거를 시작했다. 아저씨는 퇴근길에 나를 만나면 과자도 사주고, 오토바이도 태워줬다. 나와 잘 놀아주기도 해서 나는 그 아저씨를 잘 따랐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아저씨의 방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집 밖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었다. 쾨쾨한 총각 냄새와 함께 신기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물건은 '담배'와 '라이터'였다.

호기심에 이끌려 어른들처럼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뻐끔뻐끔 연기를 뿜으며 TV에 나오는 협객처럼 폼을 잡아봤지만, 콜록콜록 터져 나오는 기침에 폼은 곧 망가지고 말았다. 그 순간 집에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담배를 던져 버리고,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며칠이 지나고 몰래 본 아저씨의 방바닥에는 까맣게 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때의 일은 2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밀이다. 

◇ 흡연자 아빠,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다

나는 흡연자였다. 그때의 나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 깊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고, 샤워했다. 의사처럼 구석구석 손을 씻었고 칫솔이 부러질 정도로 강력하게 양치질을 했다. 딸 서율이의 볼에 뽀뽀하기 위한, 흡연자 아빠의 '의식에 가까운 행위'였다. 이런 행동을 몇 달 씩 반복하다 알아차렸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뽀뽀를 위한 흡연의 합리화'를 해오고 있었음을. 

그 당시 나의 행동을 '취소(undoing)'라는 방어기제로 설명할 수 있겠다. 내가 스스로 용납할 수 없거나 죄책감을 일으키는 행동이나 감정을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무효화시키는 것을 '취소'라고 한다.

즉, 나는 흡연이라는 나의 행동이 서율이에게 미칠 간접흡연의 피해를 무효로 하기 위해 매일 몸을 씻는 의식을 행한 것이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담배를 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목적은 바로 서율이의 볼에 당당하게 '뽀뽀' 할 수 있는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위대한 아빠의 상징이 된 '뽀뽀'. ⓒ문선종
위대한 아빠의 상징이 된 '뽀뽀'. ⓒ문선종

◇ 아빠는 왜 담배를 피우게 됐을까?

내가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담배와 라이터와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알고 불을 붙일 수 있었을까? 그 행동의 이면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나의 아버지는 20년 넘게 담배를 피웠고, 할아버지도 담배를 피웠다. 증조할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과거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고, TV나 대중매체에서도 여과 없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명절 귀향길 버스나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또한 흔한 풍경이었다.

한편 흡연은 또래문화의 통과의례가 되기도 한다. 내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저녁이면 그 친구 집에 모여 담배를 피웠다. 다양한 환경에서 내가 접한 간접흡연과 다양한 요인들을 계산해보면 내가 흡연자가 될 확률은 100%가 넘는다. 이렇기에 나는 흡연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흡연은 세대 간의 전이, 사회문화적 환경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있기에 복잡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담배는 결코 의지만으로 끊을 수 없다. 나는 담배를 끊기 위해 금연보조제도 사용해보고 보건소도 다녀봤다. 하지만 모두 나에게 맞지 않았다. 진단을 통해 단계적으로 받은 금연패치는 오히려 니코틴에 대한 갈급함을 느끼게 했고, 피부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작심삼일을 반복하고, 결국에는 슈퍼에 들러 담배를 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자책하기 일쑤였다. 담배 한 갑을 사서 2~3개비 피우고 버리고, 또 사서 1개비 피우고 버리고….담배회사의 매출을 올려주는 일을 되풀이하다 흡연의 지독한 연결고리를 과감히 끊어버리기 위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에 선 심정으로 2013년 10월 1일부터 독하게 담배를 손에서 놓았다.

금단의 끝단을 향해, 금연 너머의 평온을 찾기 위해 악착같이 참고, 또 참는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 오직, 서율이의 볼에 당당히 뽀뽀하기 위해! 그렇게 딱 6년이 지났다. 나의 의지와 집념으로 오늘에서야 이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 아이를 위해 선택한 일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나도 한때 담배를 피웠었지'에서 '내가 과거에 담배를 피웠었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담배와 질긴 인연을 끊어냈다. 담배를 끊고 나니 쇠사슬같이 무거운 족쇄를 벗은 기분이다.

금연 중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생각은 '그 '족쇄'가 없으면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담배를 끊는 것보다 담배를 못 피우면 어떡하냐는 두려움이 컸다. 담배를 피우며 내려놓을 수 있었던 무거운 감정, 잠시 피할 수 있었던 스트레스, 엉켜있던 복잡한 순간들을 풀어주는 한 모금의 연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반대급부는 오히려 담배보다 대체 가능한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이들의 볼에 당당하게 뽀뽀를 할 수 있는 내 모습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시작했던 아빠는 이제 아이들의 볼에 뽀뽀를 하며 부드럽고, 청량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하는 '뽀뽀'는 위대한 아빠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은 세대 간 흡연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어냈다는 것이다. 나의 이 '업적'이 앞으로 누군가의 부모가 될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로 남길 바라면서, 앞으로도 아빠가 되고 나서 가장 잘한 일은 또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한다.

어떤 아빠든지, 그 일이 크든 작든 아빠가 되고 나서 아이를 위해 잘한 일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을 응원해본다. 누군가의 인생에 위대한 이름으로 새겨질 '아빠'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고,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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