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아맘에게도 ‘문센’이 필요해 
미국 육아맘에게도 ‘문센’이 필요해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11.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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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의 겨울은 길고, 아이와 갈 곳은 없다

아이 둘을 미국에서 키우면서 나는 영유아 프로그램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전에는 내가 수업을 듣거나, 혹은 가르치느라 시간이 없었고, 요즘은 낮에는 독박육아 하고, 밤에 조금씩 시간을 내서 겨우 논문 쓰는 일도 너무 힘들다. 그래서 낮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간다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고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는 미국 북부로 이사해 살게 되면서 자주 답답해하는 둘째에게 점점 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날이 좀 덜 추울 때는 오빠의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거나, 집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11월 들어 빈번히 내리기 시작한 눈과 자주 부는 칼바람 탓에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실내 놀이터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인터넷에서 영유아 놀이수업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어딘가에 외출하면 아이의 무료함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 한국보다 단순하지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의 미국 '문센' 

그러나 한국과 달리 문화센터가 흔하지 않은 미국에서 영유아 관련 클래스를 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미국에서는 교회나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공간을 빌려서 해당 교육을 받은 강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 작은 도시에는 퇴직 교사 출신의 할머니 선생님이 진행하는 유아 음악 교실이 있다. 나는 그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우리 둘째는 첫째가 어렸을 때보다 낯을 더 많이 가리는 편이다. 수업 첫날. 아이는 입술을 앙다물고 조용히 낯선 사람들을 관찰했다. 아직 기관에 보낸 적도 없고, 집에서는 주로 한국어만 사용하니 아이는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더 낯설었을 것이다.

수업은 45분간 진행됐는데, 생각보다 느슨했다. 중간에 2~3분 정도의 쉬는 시간도 있었다. 함께 사용하는 교구(작은 악기들과 잠시 가지고 노는 인형과 보자기 같은 것들)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단순하고 오래 사용해 무척 낡은 편이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엄마와 아기는 8쌍 정도 되었는데,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수업이 이 지역에서는 나름 인기 있는 수업인 것 같았다. 꾸준히 수업을 들어온 사람들도 꽤 됐다. 

수업은 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전주와 비슷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진행됐다. 아이는 조금 적응한 듯 교구를 만져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입술을 앙다물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세 번째 수업도 비교적 느린 템포로 내용이 반복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새로 참여한 아이들이 쉽게 수업에 적응할 수 있었고, 기존에 다니던 아이들도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는 듯했다. 세 번째 수업에 들어간 우리 둘째는 여전히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지만, 익숙한 상황이 반복되자 안심하는 눈치다. 

미국의 '문센'은 한국보다 느리고 단순했지만 자유로우면서도 반복을 통한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수업 중 비눗방울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 ⓒ이은
미국의 '문센'은 한국보다 느리고 단순했지만 자유로우면서도 반복을 통한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수업 중 비눗방울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 ⓒ이은

◇ 11월 말~12월 말 휴강… 문득 한국의 다양한 '문센 강좌'가 그리워진다

수업은 뭔가를 가르치고 체험케 하기보다는 그저 아이들을 ‘음악’이라는 분위기에 드러내는 형태로 진행됐다. 

예컨대 농장과 동물을 주제로 수업했던 이번 달에는 동물들의 울음소리, 농장 트랙터 소리, 그리고 농장과 관련한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거기에 맞춰 자유롭게 걷거나, 뛰거나, 가벼운 율동을 하는 형태로 수업이 이뤄졌다. 

큰아이와 한국에 머물렀을 때 몇 번 참여해봤던 한국의 문화센터 일일 체험 강좌가 짜임새 있고 새로운 체험과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편이라면 내가 요즘 체험하고 있는 미국의 강좌는 조금 더 느슨하고 단조롭지만 자유로우면서도 반복을 통한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점이 다르다.

단순한 교육을 떠나서 문화센터의 강좌는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다른 또래 아이들을 만나고, 또 엄마들에게도 핑계 삼아 바깥 나들이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재미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위해 강좌를 찾기 시작한 것이니까.

안타깝게도 이 강좌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있는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긴긴 겨울, 집안에만 갇혀 답답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한국의 다양한 ‘문센’ 강좌가 조금은 그리워지는, 미국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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