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엄마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꼭 엄마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19.12.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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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연구직에선 애엄마가 오래 있을 수 없어”

아들과의 생존기를 쓰기 전, 어쩌다 나는 엄마가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박사 1년 차 때 결혼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빠른 것 같지 않아 보이겠으나, 당시 나이가 25살 겨울이었으니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왜 결혼을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외로웠다고 하자. 결혼을 결심한 시기는 24살인데, 24살의 나는 석사 생활 2년간 더럽게 안 되는 실험을 하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고, 내 손이 마이너스의 손이란 생각과 개만도 못한 건가 싶어 좌절하고 있었다.

그놈의 심신이 지친 덕분에 폐결핵에 걸려 인생무상을 온몸으로 체험 중이었고(논문하고 내 폐를 맞바꿈…), 심지어 혼자 자취 중이었다. '사생팬' 생활을 접어서 집에서 할 일이 없었다. 그래… 심신이 지치고, 외롭고… 뭐 그랬다.

자취방 - 학교 - 연구소, 세 군데를 돌아다니던 생활에 지쳐 있을 때, 남자 친구께서 대리로 승진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당하게 '내가 내년쯤 시간이 여유가 되니 결혼하자' 했다. 내가 그때 정말 돌았나 보다.

대개의 이공계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혹은 늦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또, 내가 결혼하던 당시 연구소 박사님들과 연구실 선배들의 격한 반대가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당시 내가 들은 많은 걱정은 이렇게 요약되었다.

"공부하는 여자, 혹은 아들보다 더 공부한 며느리를 싫어할 시댁.”

“연구직에서는 애엄마가 오래 있을 수 없어.”

어렸던 나는 그 모든 걱정을 '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나만 잘하면 결혼해서 시댁과의 관계도 괜찮을 것이고, 애엄마로 연구직에 있을 수 없다면 딩크족이 되면 된다고.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렸다고 건방을 떨고 결혼을 했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나는 엄마만 되지 않으면 과학자로의 삶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겪어보니 정말 엄마만 아니면 여성과학자의 삶은 그렇게 꺾일 일이 없긴 하다.) 그렇게 지내며 졸업을 앞두고 '포닥'(포스트닥터, 박사후연구원)을 가네 마네 하던 그때! 의도하지 않았던 선물이 찾아왔다.

졸업을 앞두고 '포닥'을 가네 마네 하던 그때! 의도하지 않았던 선물이 찾아왔다 ⓒ윤정인
졸업을 앞두고 '포닥'을 가네 마네 하던 그때! 의도하지 않았던 선물이 찾아왔다 ⓒ윤정인

애가 생겼다….

졸업해야 하는데! 내 꿈의 정점인 포닥이 남아 있었는데! 토익 점수도 만료돼서 토익 봐야 하는데!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고 통보받았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나는 그렇게 지옥행 특급열차에 탑승을 완료해버린 것이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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