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에 “아기가 '하늘 본' 자세라서 제왕 했어요”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아기가 하늘 보는 자세’란 본래 엄마 등을 바라봐야 하는 아기가 엄마 배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의학용어로 'OP 포지션(occiput posterior fetal positon)'이라고 한다. 완전히 앞이 아닌 오른쪽 앞쪽이나 왼쪽 앞쪽을 보고 있는 자세 역시 하늘 본 자세에 해당하며 모두 OP 포지션, P 포지션이라고도 부른다.
왜 'OP 포지션'이 될까? 역아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기가 상대적으로 작을 때(3kg 이하) 그럴 수 있다. ‘아기가 작으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산모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진통이 시작되면 자궁경부는 부드러워지고 얇아지며 서서히 열린다. 이때 아기는 위아래로 고갯짓을 하면서 산도를 타고 내려오는데, 아기가 작으면 여유 공간이 넓어져서 산도를 똑바로 못 내려오고 이리저리 자세가 바뀌기 쉽다.
따라서, 출산 중 산모가 “악”소리를 낼 만큼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면 OP 포지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아기가 얼굴을 완전히 엄마 배 쪽으로 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오른쪽이나 왼쪽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참, 왜 OP 포지션일 때 산모의 허리가 그렇게 아플까? 아기는 산도를 내려올 때 치골을 베개 삼아 고개를 뒤로 젖히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것은 태아의 본능적인 동작이다. 태아는 사실 굉장히 부드럽고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히지만 산모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태아의 이 동작이 산모의 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 아기가 하늘 보고 있다면… '북극곰'과 '다운독'을 기억하세요
아기를 정상위(아기의 얼굴이 엄마 등을 보는 자세)로 돌리려면 산모가 ‘북극곰 자세(머리와 가슴은 바닥에 붙이고, 엉덩이는 높게 들어올린 자세-편집자 주)'나 ‘다운독 자세’를 취하면 된다. 이 두 자세의 특징은 아기의 무게중심을 바꾼다는 것이다. 산모가 엉덩이는 높게, 머리는 낮게 자세를 취함으로써 태아가 자세를 바꿀 수 있게 돕는다. 요가에서 취하는 다운독 자세의 정석은 팔을 쭉 뻗어야 하지만 산모는 그럴 필요 없이 팔을 구부린 채 정수리를 바닥에 기댄 정도만 해도 된다.
한편, 임신 30주까지는 아기가 아직 작으므로 OP 포지션이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36주 이후에도 계속 아기가 OP 포지션이라면 북극곰 자세나 다운독 자세를 적극적으로 취해서 아기 위치를 돌려야 한다. 이와 함께 산모는 평소 앉는 자세를 점검해 볼 필요도 있는데, 특히 그동안 등받이에 너무 기대앉았던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태아가 역아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모가 의자에 앉을 때는 앞으로 약간 숙이듯이 앉는 것이 좋다. 또한 앉아 있는 시간이 30분 이상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짐볼을 이용해 앉는 것도 추천한다.
출산 진행 중 아기가 OP 포지션인 것을 확인했다면 산모는 진통이 없을 때 북극곰 자세를 했다가, 진통이 왔을 때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 된다. 북극곰 자세와 런지 자세를 번갈아 해주면 아기가 자세를 바로잡고 산도를 타고 내려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올 초에 출산했던 산모가 LOP(좌후방 두정위, 아기가 왼쪽 배를 보고 있는 자세-편집자 주)여서 진통은 있는데 진행이 잘 안 됐다. 그때 북극곰 자세와 런지 자세를 번갈아 했더니 30분 만에 아기가 정상위로 돌아와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 수시로 걷고 바른 자세 유지해야 분만할 때 태아 위치도 좋아
한편 아기가 OP 포지션일 때 아기를 정상위로 돌려서 분만하거나 수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연분만에 성공하는 OP 포지션도 아주 드물게 있다. 지난 6월 호주에서 출산한 산모가 그랬다. OP 포지션이라길래 내가 실시간으로 코칭을 해줬는데, 그 상태에서 자연분만한 것이다. 병원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의료진이 몹시 놀랐다고.
하지만 OP 포지션인 경우는 응급 제왕수술을 할 수도 있다. 산모는 고통스러워하고 아기는 안 내려오는 두 가지 상황 때문이다. 산모가 힘들어하면 호흡이 잘 안 되고, 아기에게 산소 전달이 잘 안 되면 아기가 태변을 보거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는 등 여러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산전에는 초음파를 통해 아기가 어떤 상태로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출산 중이라면 출산 동반자(남편 또는 둘라)가 산모를 잘 관찰해야 한다. 산모가 갑자기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면 일단 OP 포지션을 의심해보고 분만실 조산사에게 아기 위치를 살펴봐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아기가 OP 포지션이라면 일단 산모에게 아기의 위치 때문에 허리 통증이 심하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운동하면 아기도 제 자리를 잡고 통증도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서 산모를 안심하게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OP 포지션이라고 너무 겁먹거나 미리 제왕절개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OP 포지션이어도 자연분만하는 경우도 있고, 북극곰 자세를 몇 번 하는 것만으로도 아기가 제자리를 잡기도 한다.
최근 OP 포지션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주로 앉아서 일하는 워킹맘들에게 빈번하다고. 아마 좌식생활 방식에서 비롯한 습관 때문인 듯하다. 평상시 수시로 걷고, 짐볼 타고, 허리를 뒤로 젖히지 말고, 복대를 차고 배가 앞으로 쏠리듯 바르게 서서 걷는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 이 때의 포인트, 몸의 중심이 너무 뒤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칼럼니스트 이하연은 대한민국 출산문화와 인식을 바꾸고자 자연주의 출산뿐만 아니라 자연 분만을 원하는 산모들에게 출산을 알리고 있다. 유튜브 채널 '로지아'에 다양한 출산 관련 영상을 올리며 많은 산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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