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유용 처벌 규정 없는 영유아보육법, 믿어지십니까?
회계 유용 처벌 규정 없는 영유아보육법, 믿어지십니까?
  • 기고=오승은
  • 승인 2019.12.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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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승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
지난달 28일 국회 정문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이크 잡은 이가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28일 국회 정문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이크 잡은 이가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보육교사들의 노동조합인 우리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에 ‘보육교사가 무슨 노동조합을 하느냐’는 날 선 말을 안 들어본 조합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할 보육교사가 어떻게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하느냐는 식의 질타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다. 보육지부 조합원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활동에도 열심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국고지원금과 부모 분담금이 술술 새 나가고 부실한 급식으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역시 자주 호소한다.

이런 현실을 더 참지 못하고 ‘할 말’ 하려는 교사가 보통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린다. 원장에게 찍혔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지 않으려는 방어 차원에서다. 임금을 더 올려 받고 싶어 가입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린이집 운영의 시시비비를 따지려는 보육교사에게 원장이 내밀 수 있는 ‘레드카드’는 많고도 막강하다. 대표적인 게 CCTV이다. 원장실 안에서 몇 주치의 CCTV 영상을 돌려보며 어떻게든 아동학대 혐의를 잡아내는 방식이다. 법정에서 혐의를 벗는 사이 이미 보육교사는 마음을 다치고 지역 ‘블랙리스트’에도 오르게 된다.

어린이집 돈이 잘 쓰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통제하는 게 보육교사의 책임은 아니다. 그 돈을 내주는 국가와 지자체가 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고 원칙이다.

매년 시·군·구 단위로 ‘어린이집 지도점검’이란 게 이뤄지고는 있다. 다만 그게 제대로 된 관리 성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는 게 대부분 보육교사의 목소리다. 전국 4만 개에 달하는 어린이집의 무려 99.8%가 민간 운영자의 운영권 아래 있다 보니 지자체가 회계를 직접 관리는커녕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국공립어린이집도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98%가 민간이 운영한다. 지자체들이 짓기만 하고 운영은 민간에 위탁한 결과다. 운영과 함께 당연히 회계사무도 위탁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어린이집은 민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

◇ 보육교사 91%, 보건복지부 지도점검 ‘신뢰할 수 없다’

제도 환경이 이렇다 보니 매년 면피용의 형식적인 지도점검만 반복된다. 번번이 지도점검 명단이 사전 유출돼도 점검원의 인원‧경력‧전문성 모두 부실하다는 내부진단이 계속 나와도 아무런 개선책 없이 지도점검은 반복되고 그 결과는 취합돼 보건복지부로 올라간다.

그로 인한 결정적 장면이 바로 지난 4월, 회계부정 어린이집이 전국에 13개소밖에 없더라는 보건복지부의 ‘집중점검’ 발표였다. 그마저도 ‘경미한 사항’들이었다며, 평상시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 관리를 잘해왔다는 자화자찬도 덧붙었다.

그러나 곧이어 보육지부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답한 보육교사가 91%, ‘원장의 회계부정 행위를 직접 목격했으나 적발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보육교사가 약 3분의 2였다.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법적 근거부터 따져보자면 놀랍게도 그동안 영유아보육법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보육료 등을 원장이 유용해서는 안 된다는 뚜렷한 금지 규정도, 이를 위반한 원장이 자격정지 처분이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도 없었다는 점이 크다.

그 결과 어린이집 회계에서 원장 가족의 휴대폰 요금이 다달이 인출되어도 원장들은 ‘보육료는 보조금(보조금법에 의해 사용처가 엄격하게 따져짐)이 아닌 바우처 지원금’, ‘그러니 원장의 사유재산’이라는 억지논리로 처벌을 면해왔다.

대법원까지 가서 횡령죄 무죄 판결을 받아낸 한 원장의 사례는 어린이집 원장들의 정책토론회 단골 레퍼토리이자 성공담으로 통한다. 지난해 사립유치원 원장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국고지원금은 원장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이 판례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지난한 상황을 거쳐 지난해 12월에서야 정부는 어린이집 수입의 ‘보육 목적 외 사용’에 대한 금지 원칙과 처분‧처벌 규정을 명시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간 어린이집의 내부고발자이자 공익제보자로 나서왔고 그 결과 원장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보육교사가 이번 개정안을 환영하고 있다.

◇ 보육공공성 키울 수 있는 골든타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해 한유총이 ‘사유재산’ 주장으로 국민적 질타를 받는 동안 숨죽이고 있던 어린이집 원장단체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을 기억해야 한다.

한어총이 이번 개정안의 입법 예고와 규제심사 과정에서 ‘보육료는 사적영역’이니 ‘국가개입을 인정 불가하다’는 의견을 정부에 공식 제출했다는 사실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저 주장은 원장의 보육료 사용에 대해 ‘왜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자, 이번 개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하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잘 알려지진 않은 사실로서 그동안 민간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지금보다 더 느슨한 어린이집 회계규정을 꾸준히 요구해오기도 했다. 이들은 어린이집 회계규칙상 정식 항목인 원장 월급으로는 부족하다는 양, 어린이집으로 쓰이는 자산시설의 ‘부동산 기회비용’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비용까지 보상하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구체적 활동을 해왔다.

시설의 감가상각, 보수공사비, 융자금 이자 등은 이미 보육료의 일정 범위 내에서 지출이 가능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만족 못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때 그 개정안을 발의하고 토론회를 열었던 양승조(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현 충남지사), 이명수(자유한국당,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같은 전·현직 국회의원들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정부의 입법예고 후 규제심사 과정에서부터 이미 수개월간 지체되었다. 지난 10월 간신히 국회로 넘어간 뒤로도 좀처럼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정부가 개정안을 발표한 지 1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소위 상정조차 못 된 상태다.

국회가 사립유치원 비리를 향한 지난 공분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공익성을 생각한다면 이 개정안을 우선순위로 처리해야 마땅하다. 국회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어린이집 운영 투명화’의 원칙을 확인하고 비리 관행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지도점검 제도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개선책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늘려야 한다.

더 이상 어린이집의 운영과 ‘보육 공공성’이라는 기치가 민간에 의해 주도되어서는 안 된다. 법률과 운영구조에서부터 판을 바꾸어야 한다. 보육공공성을 키울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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