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스갯소리로 어떤 회사의 분위기를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표현할 때 가족의 ‘족’에 강세를 둔다. 검색 창에 ‘가족 같은 회사’를 검색해보면 ‘가족 같은 회사는 망한다’, ‘가족 같은 회사? 그런 건 없다’는 등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상욱 시인은 단편 시집 ‘가족 같은 회사’에서 “어쩌다 가족이 이렇게 됐을까”라고 푸념한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목과 실질'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동네 폭력배가 "선생님, 밤길 조심하세요. 워낙 험한 놈들이 많아서 말이죠"라고 말했다 가정해보자. 이 말의 명목상 의미는 요즘 워낙 밤길이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가? "나한테 까불면 죽는다"라는 협박의 말이다.
즉, ‘가족 같은 회사’는 명목상 가족처럼 편안하고, 서로 챙겨주는 곳이라는 의미지만 실질적으로는 ‘입사하면 가족처럼 편하게 부려 먹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렇게 ‘가족’이 비하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가족 같은’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 '가족 같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유대인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가 주장한 5단계 욕구 이론 중 하위 욕구에 ‘안전의 욕구’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위험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안전과 보호를 유지하려 한다. 이 안전의 욕구는 자기를 보전하기 위한 욕구로 이 부분을 충족해야 상위 욕구인 자아실현과 같은 수준 높은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 가족과 집단 모두 마찬가지로 ‘안전’을 느낄 수 없다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오히려 보호를 위해 위축되고, 서로를 경계하게 된다. 즉, ‘안전’은 집단의 화합을 이끄는 특별한 동기라 할 수 있다.
‘안전’은 화학작용이다. 자주 마주치는 시선, 일상적인 스킨십, 짧은 시간 활발한 대화, 타인의 말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 넘치는 유머 등이 구성원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회의 전 나누는 짧은 10분의 잡담에서도 이런 화학작용은 충분히 일어난다. 구글과 디즈니 등 세계적인 기업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정책은 구성원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나아가고 있다.
구글은 2012년부터 2015년 회사의 미래를 위한 실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특별한 성과를 내는 팀은 무엇인 다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팀이 더 높은 성과를 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학자들과 3만 7000명의 직원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것은 바로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이었다.
팀원이 어떠한 의견을 제기해도 벌을 받거나 보복당하지 않은 거라는 믿음이 있는 조직 환경이었다. 픽사에서는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회의를 통해 월 1회 제작 중인 영화를 감상하는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한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감독 크리스 벅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공헌”이라며 브레인 트러스트에 감사를 표한 바 있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이자 심리적 안정감의 권위자인 하버드 대학 에이미 에드먼드슨 교수는 “침묵은 조직의 성과를 갉아 먹는다”고 삼성, SK, KT 등 국내 대기업에서 한 강연에서 말한 바 있다. 그는 심리적으로 안전을 느낄 때 조직이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을 25년간의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 안전의 기원은 '가족'에 있다
우리 가족은 어떨까? ‘안전’한가? 배우자와 아이들이 서로 심리적 안전의 신호를 보내고,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원시시대에서는 집단에 거부되는 순간 ‘죽음’이라는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 실제로 이런 역할을 하는 뇌의 영역이 존재한다.
에드먼드슨 교수의 지적과 같이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리더이다. 아이들이 가족 안에서 ‘안전’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스스럼없이 말할 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부모의 수용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가족 내에서 안전을 느끼지 못하면 소속감은 사라질 것이고, 그것을 외부 집단에서 찾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약하다면 먼저 ‘안전’에 대한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를 향해 뛰어가며 와락 끌어안는다. 그렇게 서로 안긴 품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다. 가족은 ‘안전’ 그 자체이며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전 이런 무의식의 화학작용을 통해 ‘안전’의 신호를 감지해왔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숨을 쉬는 부교감신경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양한 환경이 있다. ‘안전’은 불안에 대한 투쟁이며 때론 우리를 지키고 힘들게 만들지만,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든 우리 부모들은 안전을 위한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갈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를 응원한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고,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