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부터 입시교육 시작… 아이들 ‘번아웃’ 될 수밖에”
“어린이집부터 입시교육 시작… 아이들 ‘번아웃’ 될 수밖에”
  • 김재희·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1.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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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②] 임미령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이사장(下)

【베이비뉴스 김재희·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 (상편) “특별활동 많은 유치원, 전문성 부족… ‘잘 놀 곳’ 택해야”에서 이어집니다.

지난해 9월 23일 서울 한강로1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카페에서 임미령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이사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9월 23일 서울 한강로1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카페에서 임미령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이사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정부는 지난해 7월 ‘2019 개정 누리과정’을 확정·발표했다. 그러면서 누리과정을 ‘유아 중심·놀이 중심’으로 개정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교사 주도 활동을 지양하고, 유아가 충분한 놀이 경험을 통해 몰입과 즐거움 속에서 자율·창의성을 신장하고, 전인적인 발달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따라서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등 기존 교육과정 5개 영역은 유지하되, 369개였던 연령별 세부내용을 연령 통합 59개로 줄였다. 다양한 교육방식이 발현될 수 있도록 유치원과 어린이집 현장의 자율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조치다. 

누리과정 개정안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서 구성 체계를 확립했다’는 특징을 가진다. 기존의 교육과정은 0~2세 표준보육과정과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역할에 그친 것에 반해, 개정 누리과정은 누리과정의 위상을 국가 수준의 공통 교육과정으로 끌어올렸다.

Q. ‘누리과정이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하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부모가 유아기 학습에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라고 하지만 인간 발달에는 각 시기마다 그때마다 적절한 배움의 과제가 있습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과학적인 근거와 여러 분야 전문가 의견을 기반으로 유아기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을 구성합니다. 교육과정 수준이 낮다기보다는 오히려 문서 수준의 교육과정이 담은 내용을 현장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것은 모든 교육과정의 역사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이기도 하죠.”

Q. 기관도 변화해야 한다면, 이 기관에 아이를 보낼 부모도 변화를 요구받을 것 같습니다. 

“사교육 문화의 대부분은 부모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담론이 영향을 줬어요. 그러나 이 속에서도 주관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와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부모의 관리를 받으며 정해진 일정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너무 많이 봤어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언젠가는 인생의 고비에서 넘어지게 돼 있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모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기르며 중요한 건 지금 여기의 시간을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죠. 행복한 기억을 많이 가진 아이들은 부모를 존중하고 자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유아기 학습에 과도한 기대 큰 문제… 시기따라 적절한 배움 있어야"

임 이사장은 누리과정 개정이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할까. 그는 이번 개정으로 ‘영유아’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새롭게 발견하며, 아이들의 권리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존중하는 ‘영유아 존중’ 문화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영유아 교육은 이제 영유아가 만들어가는 교육으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현적 교육과정, 레지오 에밀리아, 발도르프 교육법 등은 유아에게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줘요.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 유아 스스로 선택하고 유아 스스로 책임지는 방식이죠. 선택하고 책임질 기회를 계속해서 거치면서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아이들이 대화하고 의견을 조정해나가는 과정을 기다려줘야 해요.”

교육과정은 기관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즉, 기존의 교육과정 운영 방식에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먼저, 임 이사장은 “실내 놀이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실외 놀이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실외 공간이 부족한 기관은 주변의 다양한 지역 사회 공간을 정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거나, 학습을 위해 배치한 교재교구 대신 자연물을 이용한 놀잇감이나 자유형 놀잇감으로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깥 놀이 공간이 없는 기관은 실내 마루나 실내 공간 한쪽에 물놀이대나 모래놀이대를 설치해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하게 구성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동 참여권을 증진하고자 한 누리과정의 개정 의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협조와 동의도 필요하다. 임 이사장은 “입학 전에 부모들에게 기관의 운영방침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누리과정에 따라 운영하며 아이들의 권리와 놀이를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알리고 놀이중심 교육과정 운영 상 필요한 세부 사항들에 대한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입학 오리엔테이션 시기부터 놀이의 발달적 중요성과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아이들의 권리를 부모교육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임 이사장은 “관련 내용을 담은 가정통신문이나 소책자를 배부하며, 정기적인 독서토론회를 운영하면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결국, 기관은 학부모와의 접점을 더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답은 ‘열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있다.

임미령 이사장은 바뀐 누리과정에 기관과 정부가 '실외 놀이 위주 과정'으로 변화해 줄 것을 여러차례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임미령 이사장은 바뀐 누리과정에 기관과 정부가 '실외 놀이 위주 과정'으로 변화해 줄 것을 여러차례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기관이 학부모 요구로 특별활동을 편성하는 등 가지고 있던 교육철학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기관의 교육철학을 유지하려면, 운영자들은 학부모 요구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학벌 사회가 불러오는 입시 문제 앞에서는 어떤 부모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부모의 상황을 이해함과 동시에, 이 시기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학부모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해야 합니다.

교육과정 운영에 책무성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교육 환경’을 학부모와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무엇보다 놀이중심 교육에 대한 원장의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부모를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Q. 반대로 아이를 이미 기관에 보내고 있는 양육자들은 해당 기관을 아이 친화적인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교사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기관 운영에 관심을 두고 기관과 협력하셔야 합니다. 자녀가 가정에서 보여주는 습관이나 관심, 행동방식 등을 교사와 공유해야 합니다. 부모가 효과를 느꼈던 훈육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요.”

◇ “작은 보육실은 ‘난민 수용소’ 같아… 관리에 초점 맞춘 교육문화 바꿔야”

이번 누리과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 정부의 지원과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어떤 지원이 가장 시급할까. 임 이사장은 “평가 방식의 변화”를 가장 먼저 꼽았다. 현장에 다양성과 자율성을 확대한 것에 발맞추는 동시에,  현장의 다양한 상황에 적합하게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 이사장은 교육과정 운영 지침을 ‘실외 지향’으로 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실내 공간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아이들의 자유를 통제한다”며 “지금까지의 실내 중심 유아교육 문화는 아이들의 특성보다는 관리의 편리성에 맞추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보육·교육환경 개선에 집중해줄 것을 당부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신축할 때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수용하는 방향이 아닌,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바깥 놀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육·교육시설의 협소함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단호함과 함께 슬픔도 느껴졌다.
 
“그 작은 보육실에 아이가 온종일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시기의 발육에 당연히 문제가 생기겠죠. 수동적인 성향을 지속해서 갖게 해요. 특히 점점 더 많은 아이가 점점 더 오랜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그런 기관을 방문하고 온 다음에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혼자 운 적도 많아요. 쇼크였죠. 난민 수용소지, 이게 어떻게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공간입니까.”

다음으로 임 이사장은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를 꼽았다. 그는 “아무리 교육을 잘 받은 교사도 25명의 아이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면서, “물리적으로 기존의 공간을 넓힐 수 없다면 한 공간 안에 있는 아이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은 보육교사 한 명은 0세 반의 경우 영아 3명, 1세 반은 영아 5명, 2세 반은 영아 7명, 3세 반은 15명, 4세 반과 5세 반은 20명으로 정하고 있다. 유치원은 각 시·도 교육청마다 연령별 학급당 유아 수 기준이 다르다. 2016년 육아정책연구소 조사에서 3세 반은 15~18명, 4세 반은 20~30명, 5세 반은 21~30명까지 허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이사장은 “현재의 상태에서 절반 정도까지는 줄어야 제대로 된 돌봄과 놀이 중심 교육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임 이사장은 놀이중심 육아와 교육이 자리 잡으려면 ‘입시 교육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교육은 유치원과 어린이집부터 입시 성공을 위한 교육이 시작됩니다. 학벌 중심의 문화와 대학 서열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국 ‘번아웃’될 수밖에 없어요.

일찍부터 번아웃을 경험한 아이들이 과연 건강하고 행복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권리를 외치고 놀이중심 교육을 한다 한들 아이들의 삶이 바뀔까요? 가장 중심에서 썩어 들어가는 상처를 도려내지 않는데, 어떻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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