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차고 시작하는 영어 사교육… "부작용이 더 크다"
기저귀 차고 시작하는 영어 사교육… "부작용이 더 크다"
  • 김정아·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06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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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⑦] 김승현 숭실고등학교 영어교사 인터뷰(上)

【베이비뉴스 김정아·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생후 28개월 딸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간 어느 날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매일 활동 사진을 보내주시는데, 요 며칠 딸 아이의 같은 반 친구 하나가 계속 안 보이길래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었다. 원장님한테서 돌아온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저희 원은 그만둔다네요. 누나 따라서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갈 건가 봐요.”

아직 기저귀도 못 떼고 우리말도 이제 떠듬떠듬 조금씩 하기 시작한 아이가 벌써 영어유치원이라니. 놀랐다.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리 나이로 네 살도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닐 수 있는 건가?’ ‘내가 너무 무지몽매한 엄마인가?’ 싶은 생각에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한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는 3세부터 7세까지 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3~5세 반은 ‘영어놀이부’로 운영된다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다섯 살은 돼야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닐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우리 딸아이 친구들도 벌써 다니고 있다는 얘긴데….

# “아기가 지금 세 살이고 딱 두 돌이 지났는데 다들 ‘영어유치원’을 지금부터 알아보더라고요. 그냥 일반 유치원을 보내면서 학원으로 따로 보내야 할지 아니면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 “네 살부터 다닐 수 있는 ‘영어유치원’ 추천 좀 해주세요.”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하다 보니 부모들의 상담 글이 여럿 보인다.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어린이집 원장님의 얘기가 허무맹랑한 얘기가아니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유아 대상 영어학원, 유치원 대체재 아냐… 사교육 규제 시급"

김승현 영어 교사는 현직 영어 교사이자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어사교육포럼 부대표를 맡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김승현 영어 교사는 현직 영어 교사이자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어사교육포럼 부대표를 맡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유치원의 대체재가 아니에요. 영유아 영어 사교육 규제가 시급합니다.”

김승현 숭실고등학교 영어교사를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교사는 영유아 영어 사교육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며,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얘기했다.

김 교사는 1998년부터 22년째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어사교육포럼 부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기획하고 집필한 「아깝다 영어 헛고생」(우리학교, 2014년)의 제작 책임을 맡았고, 「굿바이 영어 사교육」(시사IN북, 2012년)의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 교사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연과 교육 정책 대안을 만드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영유아 영어 사교육 과열 현상은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숫자로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원·교습소 등록현황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의 ‘반일제 이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295곳으로, 1년 새 44곳이 늘어났다.

강남·서초구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87곳으로 전체의 29.5%를 차지했으며, 2017년과 비교했을 때는 21곳이 늘었다. 서울에 새로 생긴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절반 가까이가 이 지역에 문을 연 것이다.

김 교사는 “부모 대다수는 영어교육을 일찍 시작하면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생각하고 있다”며, “그래야만 우리말을 배우듯이 자연스럽게 영어도 ‘습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대개 자녀가 6~7세가 됐을 때 1~2년 정도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

실제로 “강남, 분당 등 사교육 열기가 높은 지역에 가면 자녀 영어교육을 위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각각 어느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일종의 영어 사교육 로드맵이 있다”고 김 교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내 영어를 일찍 접하게 하는 것이 과연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김 교사는 “흙에 씨를 뿌렸는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흩어져버리는 상황”이라는 말로 비유했다. “흔한 말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떨어지는 일이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 김 교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열 곳 생기면 근처에 소아·청소년 대상 정신건강의학과 한 곳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영어 조기교육으로 인한 부작용이 꽤 크다”고 얘기했다.

Q. 영어 조기교육을 경험한 유아들 중에 언어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요, 왜 그런 건가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가면 하루 종일 수업 중에는 영어를 써야 하니까 듣고 말하는 언어의 수준이 3~4세 수준으로 떨어지게 돼요. 즉 모국어 발달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또 다른 언어를 배우면서, 새로 배우는 언어의 낮은 수준에 따라 사고의 수준도 낮아진다는 얘기예요.

또 영유아기 아이들은 뭘 집어넣는다고 해서 집어넣는 대로 크는 게 아니거든요. 햇빛에도 크고 무형의 경험에서도 크는 게 그 시기의 아이들이에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 꽉 짜인 일정으로 영어를 배우면서 놓치는 것이 더 많아요. 영유아기 아이들에게는 영어 조기교육보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해요.

실제로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두 집단을 데리고 창의력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결과가 달랐던 건 물론이거니와, 테스트를 대하는 태도가 정말 달랐어요.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은 테스트도 놀이하듯이 받아들인 반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듯이 테스트를 받아들였어요. 영어 조기교육을 선택한다면,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돼요. 정작 그 시기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놓치게 되는 거죠.”

영유아기 영어 사교육에 뛰어드는 이유는 '불안감'이 큰 요인이라고 김승현 교사는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영유아기 영어 사교육에 뛰어드는 이유는 '불안감'이 큰 요인이라고 김승현 교사는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학원비도 꽤 비싸잖아요? 그 문제도 무시 못 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과연 그 비용만큼 효과가 있느냐 묻는다면, 제 대답은 ‘효과 없다’예요. 가계 부담은 상당한데,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어요. 합리적으로 한번 따져보죠.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1년 다닌다고 해도, 그 시간을 다 모아보면 365일 중 8~9일밖에 안 돼요. 그만큼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미미한 것이죠.

그런데도 한 달에 100만 원씩 돈을 쏟아부어서 조기교육을 시킬 것인지, 부모 역시 자기 삶 없이 자녀 사교육에만 몰입할 것인지 합리적 선택을 하시라는 거예요. 저는 제가 영어교사인데도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또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가면 수업시간 중에는 영어를 쓰게 하는데, 그렇다고 아이들이 온종일 영어로만 말하느냐? 그건 또 아니에요. 쉬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있을 땐 당연히 우리말로 대화해요. 100% 영어로만 말하고 영어로만 생각하고 그랬으면 아마 소아정신과가 더 많이 생겼을 거예요.

몇 년 전 호주에 교사연수를 갔을 때, 방학을 이용해서 한 달짜리 어학연수를 온 초등학생들을 봤어요. 점심시간에 보면,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서 우리말로 신나게 떠드는 걸 흔히 볼 수 있죠.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어른들 욕심과 달리 아이들은 영어 사용을 늘리겠다고 애쓰지 않고, 또래에 맞게 크고 있는 거예요.”

◇ "영어만 써야 하는 유아 영어학원, 오히려 언어 수준 퇴행"

김 교사가 언급한 연구는 우남희 전 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명예교수 연구팀이 2007년 미래유아교육학회지에 발표한 ‘유아의 영어교육 경험과 지능, 창의성과의 관계 연구’를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1년 6개월 이상 다닌 아이와 영어를 접하지 않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의 창의력을 비교한 결과, 언어 창의력 면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은 평균 92점을 받은 반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 아이들은 평균 70점에 그쳤다.

김 교사는 저서 「굿바이 영어 사교육」에서도 “무리하게 영어에 노출시키면 ‘과잉학습장애’와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한마디로 과하면 부작용이 우려되고 적당히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꼽은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은 조기 영어교육의 유형’ 1위에 꼽히기도 했다. 2015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유아 대상 영어학원(60%)은 비디오, 스마트폰 등 영어 영상물(50%)보다 더 해롭다는 견해를 보였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 중 학원비가 가장 비싼 곳은 4년제 대학 연간 등록금 평균의 4배까지 달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 중 학원비가 가장 비싼 곳은 4년제 대학 연간 등록금 평균의 4배까지 달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서울 유아 영어학원 학원비는 월평균 103만 7027원이었고, 학원비가 가장 비싼 곳은 강남구와 서초구에 운영하는 3곳으로 월 224만3000원이었다. 이 영어학원의 1년 치 학원비는 2691만 6000원으로, 지난해 4년제 대학 연간 등록금 평균(670만 6200원)의 4배였다.

김 교사는 ‘영어유치원’이란 잘못된 명칭이 주는 선도효과도 지적했다. 2011년 유아교육법 개정을 통해 ‘영어유치원’이란 명칭은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우리 인식 속에는 ‘영어유치원’이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아서, 마치 ‘유치원’의 대체 개념으로 ‘전일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생각하게 됐다는 것. 

Q.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돈을 들인 만큼 효과를 내기도 어렵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으로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요?

“‘수학이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가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고 해요. 학부모들이 굉장히 공감할 만한 제목이에요. 수학은 대학 입시 이후에는 안 쓰이지만, 영어는 취업, 승진에 있어서도 계속 중요하다고 다들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영유아기에 영어 사교육에 뛰어드는 이유는 좀 달라요. 불안감이 큰 이유죠. 초등학교 이후에는 대입 제도가 사교육 시장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한때는 외국어고등학교 입시가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죠. 공교육 내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문제를 출제해서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들게 했습니다.

지금은 외고 입시가 개선되고 대입에서도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면서 영어 비중이 낮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학부모들 사이에는 사교육 시장에서 만들어놓은 논리가 강해요. ‘영어는 초등학교 때 중학교 수준을 끝내고, 중학교 이후에는 다른 과목을 준비해야 한다’ 뭐 이런 식이죠.

이런 이야기들을 가볍게 여길 수가 없는 게, 학부모들이 국가의 교육 커리큘럼을 버리고 사교육 시장에서 만든 새로운 커리큘럼을 택했다는 뜻이거든요. 대학 입시에서 영어 비중이 작아졌는데도 영어 사교육 시장의 파이는 그대로인 이유가 바로 그거죠.”

☞ (하편) "선행학습은 '반칙'… 반칙한 선수가 경기 이겨선 안 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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