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마스크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많이 들었다. 마스크 가격이 3~5배 혹은 그 이상 폭등했다는 이야기도. 그런데 그 뉴스가 나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몇 개월 전에 사 둔 성인용 마스크 한 통이 현관 옆에 있는 걸 얼핏 확인했을 뿐이다. 이거면 되겠지 싶었던 거다. 이유가 있다.
지난 설 연휴 이후 2월까지 장기 휴가를 쓰게 되어 출근하지 않고 있다. 때마침 둘째 아이가 다니던 피아노, 태권도 학원도 일주일간 휴원을 결정해 문밖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나로서는 당장 마스크 부족을 걱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이모에게 이 문자를 받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혹시 마스크 많이 사두었니?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다 품절이란다. 지금 20개 밖에 없는데 다 품절이라고 해서 걱정이네."
그제야 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리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한 사람이라니. 그제야 지역 카페 등에서 '마트에서도, 홈쇼핑 방송에서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며 구매 실패기를 올리는 사람들 글이 눈에 들어왔다.
◇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마스크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다음날 동네 둘레길을 한 바퀴 돌다 집 근처 대형 마트에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스에 나오는 대로 '정말 마스크가 없을까?'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있으면 사두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그랬는데 세상에나. 마트 한편에 줄이 길었다. 이게 무슨 줄인가 물었더니 검은색 마스크를 쓴 중년 여성이 "마스크"라고 딱 잘라 말했다.
'와… 이 줄이 다 마스크 사려는 사람 줄이라고?' 사정을 알아보러 줄 맨 앞으로 가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하는 말. 지금 물건이 풀린 것도 아니고, 언제 풀릴지도 알 수 없으며, 1인 1박스만 살 수 있다는데 한 통에 몇 개가 들어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묻지 마 구매'였다.
내가 매장에 들어온 시간은 7일 오전 11시경. 줄 선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전날에는 100개들이 마스크 한 통을 6만 원대에 팔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100개면 충분하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이날 마트에서는 1인당 1박스로 구매를 제한해 판매한다고 미리 알렸다. 여유 있게 사두려는 마음에 고학년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보였다. 직원들은 수시로 사람 수를 세었다. 앞에서 기다리던 중년 부부는 기다림에 지쳤는지 "전국에 확진자가 23명(작성일 기준)이 전부야.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며 자리를 떴다.
정오가 넘어서야 물건이 들어왔다. 줄이 빠르게 줄어들었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수량이었다. 25개에 2만 7980원. 1개에 1119원꼴. "그래도 이 정도면 지금 싼 거야" 앞에 있던 주부가 말했다. 그분 카트에 실려(?) 핸드폰 게임을 하던 아이들 손에는 1인당 1개 제한으로 팔고 있던 손 세정제가 들려 있었다. 용량은 240mL. 6000원대였다. 이날 마트에서는 대형과 소형 두 가지 종류의 마스크를 판매했는데, 성인용이 월등히 빨리 소진되었다. 아이들이 쓰는 소형 마스크는 매대에 진열해 놓고 팔 수 있을 정도였다.
◇ 텅 빈 마스크 판매대에 울고, 마스크 결제 성공에 웃고
나는 이날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이자 직장 동료에게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 서 있는 사진 한 장을 보냈다. 후배는 이 사진으로 기사를 하나 넣을 것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흔쾌히 그러마 했는데, 나중에는 조금 망설여졌다. 혹시나 사진 한 장이 오히려 불안함을 부추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이모의 말에 불안감이 생겼던 것처럼. 후배는 지금 상황에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진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지금도 그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마트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상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 간판을 보니 무려 마스크 제조 업체였다. 자주 오가는 길이었는데도 전혀 몰랐다. 우리 동네에 마스크 제조 업체가 있었다니! 문은 잠겨 있었고, 안내문이 한 장 붙어 있었다. 품절 안내 문구였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마스크를 팔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엔 안 보이지만 이마저도 공급 부족으로 11일까지만 판매한다는 내용의 안내장도 붙어 있었다.
이날 저녁 뉴스에서도 마스크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마스크 업체에 기자가 직접 나가 마스크를 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기자가 인터뷰 한 공장 직원의 말에 나의 귀가 반응했다.
"공장 출고가는 인상되지 않았어요. 시중에 마스크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사실 굉장히 안타깝거든요. 그래도 저희가 만든 제품이 국민 건강을 지킨다고 하니까 그 부분에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하는 거죠."
24시간이 부족하게 공장은 돌아간다는데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마스크. 지금도 인터넷에는 '마스크 결제하고 이리도 기쁠 일인가요?', '마스크 사는 꿀팁' 등의 글이 뜨고, '지금 OOO 마스크 떴어요' 하는 알림에 사람들 희비가 엇갈린다. 마트마다 텅 빈 마스크 판매대에 한숨짓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도 길게 줄을 늘어선다. "전화를 100통 가까이했는데도 실패했어요"라는 홈쇼핑 마스크 구입 실패기가 줄줄이 올라온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마음이 개운치 않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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